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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의 ‘정 추기경 추모’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21/04/30 [18:33]

신달자 시인의 ‘정 추기경 추모’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1/04/30 [18:33] | 조회수 : 36

 

  © 한국공정문화타임즈



신달자 시인의 ‘정 추기경 추모’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나’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신 모습에 다시 울컥 목이 멥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손이 떨립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암담한 제 마음이 저립니다. 누구에게나 오는 순연한 결과이지만 추기경님이 이미 이 지상의 분이 아니라는 생각은 제 온몸을 아리게 합니다. 물론 예수님 곁으로 가셨으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원한 안식보다 부족한 저희들로부터 먼 곳에 계신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것은 아무래도 믿음이 미숙한 제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그리워지는 분입니다. 누구보다 의연하셨지만 누구보다 외로우셨을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추기경님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히 자신을 바쳐 예수님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꾸준히 세심하게 쉬지 않고 해 오신 분입니다. 누구보다 청빈하며 몸을 낮추고 가톨릭 정신과 예수님을 성스럽게 가르친 분이셨습니다.

죽음은 그 사람의 삶에 불을 밝히는 일입니다. 평상시 보았는데도 안 본 것처럼 스쳐 지나간 작은 일까지, 그가 눈을 감으면 그 일이 중심에 불을 켜는 것같이 밝아집니다. 추기경님을 처음 뵌 것은 2008년 11월 평화방송의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에서였습니다. 모든 이에게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수평적 분위기를 만들려 매우 노력하셨지요. 어려운 분이 분위기가 기울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지난해 7월 교계 신문의 주교 수품 50주년 인터뷰를 위해 서울 혜화동에서 뵈었습니다. 6·25전쟁 때 옆 사람들이 죽고 추기경님만 살아남았다고 하셨죠. 추기경님은 “그때 왜 자신을 살렸는가”를 철저히 삶을 통해 답하셨던 충실한 하느님의 제자였습니다. 깊고 넓고 따뜻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쉴 새 없이 일해 온 ‘영혼의 농부’였습니다. 영혼을 밭갈이하며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농부, 그 험난한 신앙의 박토를 일구신 농부, 예수님의 말씀을 땅으로 삼으신 농부였습니다. 동시대에 함께 살았던 것은 제게 큰 선물이었습니다. 이 생각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겠습니다.

추기경님은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는 우리에게 최종 목적지와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성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추기경님이야말로 우리에겐 그 길잡이며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등대지기셨습니다.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늘 불을 켜고, 바닷가에 외롭고 당당하게 서 있는 등대.

추기경님! 저는 추기경님이 너무나 먼 하늘 어디로 떠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 부산처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저희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계실 것을 확신합니다. 저희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 고귀한 흔적은 성경처럼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르셨는데 음정·박자가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추기경님이 가신 곳은 우리 다 알고 있지요. 빛나는 곳이라는 것을요. 사제로 태어나 사제로 떠나신 분, 정진석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가시는 길에 성모님이 마중하시는 그림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간절히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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