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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김륭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1/03/05 [14:29]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김륭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1/03/05 [14:29] | 조회수 : 250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김륭 시인   

 

문단소식〕“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김륭 시인과의 인터뷰

 

 

가끔씩 귀를 자르고 싶어, 내 몸을 돌던 피가 / 네모반듯하게 누울 수 있도록 // 우리 집 고양이는 온통 벽을 긁어놓겠지만 혀를 붓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의 뱃속에 내 숨소리를 그려 넣을 수 있을 테고 가만히 첫눈이 온다고 속삭이는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심장을 꺼내 뭇 사내들의 무릎을 베기도 한다더군요 // 그러니까 나는 눈사람을 서방으로 둔 어머니 배꼽 위에 놓인 / 신발 한 짝이었음을 기억해냅니다

                                      - 시인의 시「달의 귀」중에서

 

 

 

 

 

 시인과의 첫 대면은 초인종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현관 앞에 놓여 진 묵직한 택배 박스, 그 속에 시인은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풀 먹인 듯 꼿꼿한 시인의 자세에서 앞으로의 항해가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인의 꼭꼭 여민 정갈한 풀빛 셔츠가 답답하여 열고자 하였으나, 내 여력으로는 그의 작은 단추 하나 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시인과 나는 그렇게 만났다. 2014년 지리산 문학상을 수상하고 2020년 제5회 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그를 따라가며 나는 한참을 멈추어서있기도 하였고 길을 잃기도 하였으며 자주 뒤돌아보며 한 땀 한 땀 시인의 퍼즐을 맞추어 보았다.

 

 

 

비의 왼쪽 목소리

   

당신도 그래라

 

 

비 맞은 닭처럼, 머리 꽁꽁 묶어

달걀 부르는 소리

 

새의 몸을 얻지 못한 비가

노랑 손지갑처럼 꺼내는

왼쪽 목소리

 

낮은 지붕 위로 후드득

날아오르기도 하고 가만히

내려앉기도 하고

 

반바지 입고 훌쩍훌쩍

우는 것도 보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내가 그러니 당신도 그래라

 

사랑한다, 사랑한다

목숨 갸웃거릴 줄은 알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정작

모르고 살았으니,

 

오른쪽 목소리를 놓친

왼쪽 목소리처럼

 

당신도 그래라 그냥

마음 좀 아파라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대표시》

달의 귀

 

  가끔씩 귀를 자르고 싶어, 내 몸을 돌던 피가

  네모반듯하게 누울 수 있도록

 

 

  우리 집 고양이는 온통 벽을 긁어놓겠지만 혀를 붓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의 뱃속에 내 숨소리를 그려 넣을 수 있을 테고 가만히 첫눈이 온다고 속삭이는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심장을 꺼내 뭇 사내들의 무릎을 베기도 한다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눈사람을 서방으로 둔 어머니 배꼽 위에 놓인

  신발 한 짝이었음을 기억해냅니다

 

  달의 귀를 잘라 마르지 않는 그녀의 우물은 누군가의 손목을 베개로 삼아야 들을 수 있는 노래, 아무리 울어도 나무가 될 수 없는 나는 삐걱거리는 밤의 옆구리에 망치질을 해대면서 달팽이와 춤이나 출 수밖에,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쩌죠? 귀를 잘라버린 무덤은 허공에 입을 그려 넣고

  그녀는 밤새 눈사람에게 마른 젖퉁이를 물리지만

  더 이상 무릎은 벨 수 없다더군요

 

  어머니, 나뭇잎 좀 그만 떨어뜨리세요

 

  뱃속에서 우는 아이의 심장을 가만히 꺼내

  늙은 고양이를 만드는 그녀를 위해

  밤은 가끔씩 종이가 됩니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쌀 씻는 남자

 

  쌀을 씻다가 달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밤을 밥으로 잘못 읽은 모양입니다 달은, 아무래도 몰락한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변기통 같습니다

 

  아내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습니다 속이 시커멓게 탄 사내에게 고독이란 밥으로 더럽힐 수 없는 쌀의 언어입니다 문득 살이 운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밤을 밥이라 썼다 지우고, 쌀을 살이라고 썼다가 지우는 사내의 입이 문밖 나뭇가지에 걸립니다

 

  사락사락 밤을 함께 지새울 여자가 있다면 처녀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불보다 물이 부족한 밥입니다 고물 전기밥통 가득 살이 타는 밤입니다

 

 

  달이 생쌀 씹는 소리가 들립니다

 

                     - 시집『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중에서

 

 

 

식물K

 

  머릿속에 살던 짐승들이 염소를 따라 가슴까지 내려와 죽었습니다

 

  손에 숨을 쥐고 그러니까 꽃 대신 뱀을 쥐고 나는

  지금 누워있다, 는 문장으로 수습(收拾)된 사람    

 

  당신은 내게서 꺼낼 수 있는 짐승들이 몇 마리나 남았을까 궁금해 하지만 그것은 내 죽은 숨들을 발밑에 심는 일, 봄이다 내 피가 내 몸을 돌아다니다 흙을 묻히듯 그렇게 봄은 까마득히 무덤 위에 올려놓은 뗏장처럼 간신히 숨만 붙은 노동이 되고 종교가 되고

 

  삐걱거리는 침대는 나를 비루하고 지루하게 살아낸 몇 마리 짐승들의 딱딱한 기억, 입 안의 울음들이 그랬듯이, 갔어요, 방금 출발했다니까요 퉁퉁 면이 불어터진 우리 동네 중국집 주인장 말씀을 따라

 

  마침내 나는, 나를 떠나 나를 끓어오르려는 숨의 임계 너머로 두 발을 녹일 수 있게 된다 너무 일찍 출발했거나 너무 늦게 도착했거나 목숨이란 게 슬그머니 문밖에 내다놓은 자장면 빈 그릇 같아서

 

  집으로 가자, 고 말하지 않는 식물들 사이

  숨이 자꾸 흘러 흙이 붙은 뿌리째 떠낸 비곗덩어리처럼 나는, 내 몸을

  따로 흘러 내가 없고 아내도 없고, 하늘을 흘러내린 썩은 동아줄에

  딸 하나 가만히 묶여있고

 

  누워있다, 는 단 하나의 문장 위로 바람 간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의자와 염소가 하늘을 뒤집어 입는 저녁

  바지가 가슴까지 올라가 죽었습니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반갑습니다. 시인님. 시인님의 시 중에서 모자에 관한 시를 인상 깊게 읽었었는데요.

 오늘도 모자를 쓰고 나오셨네요.(웃음) 근황을 여쭙습니다.  

 

: 코로나, 19, 바이러스 등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과 차라리 반창고를 붙이는 게 낫겠다 싶은 마스크 덕분에 통통 살만 쪘어요. 근데 앞의 단어들보다 근황이란 말이 좀 더 어색한 것 같아요. 코로나 전이나 후나 게으름(?)과 밀착된 생활이 한결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에요.(웃음) 사는 게 뭐, 별 거 있겠어요. 모자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심지어 하늘과 땅마저 그렇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아무래도 책보다 잠이 더 좋은 게을러빠진 천성 때문일 거예요.

 

 

 

당신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래서 이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아무 것도 아니어서 이다. 역설적인 표현 같아요.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시인님이 생각하고 있는 과 제가 읽은 은 분명 다를 것을 압니다만, 차차 풀어나가기로 하겠습니다.

 

 : 아무 것도 아닌 게 세상에 전부일 수 있잖아요. 곰곰 뒤돌아보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듯이. 전 그렇게 생각해요. 종교가 없는 탓일 수도 있겠죠. 소유라는 개념만 지우면 이란 단어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면 읽을 수는 있지만 쓸 수는 없는 단어? 제게 은 그래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당신」, 이라는 시는 선생님 말씀처럼 역설이 담겨있어요. 근데 그 역설이 사실은 역설이 아니잖아요. 그런 게 인생이잖아요.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사랑할 땐 모든 게 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하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

 

 

 

 :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습니다. 시인님의 습작시절은 어떠하였는지요?

 

 

: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힘들었어요. 아니, 좀 덜 힘들었다고 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말이에요.(웃음) 지리산 골짜기에서 읽고 썼어요. 학연도 지연도 없는 시골촌놈이어서 오로지 신춘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누군가 시는 이런 거다, 이건 시가 아니다 등등의 가벼운 조언이나 충고라도 해줬으면 좀 덜 외로웠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고라니

 

  두 발로 올 때가 있고 네 발로 올 때도 있다, 비는

 

  나는 비를 그렇게 구부린다 가만히 엎드려 지켜본다 오늘은 두발이다

 

  온다, 비가, 새끼고라니처럼 온다고 써 놓고 운다고 읽는다

 

  두 개의 발이 더 필요한 지점에서 심장은 이불보다 착하게 만져지지만 슬픔은 끝내 목줄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빗소리는 그렇게 질기다 두 발로 왔다가 네 발로 돌아간 이 있고, 내가 나를 애완용으로 키우지 못한 것은 사후의 일이다 함부로 들어 올렸던 앞발이 가죽나무 잎사귀 위에 몇 개의 빗방울과 함께 떨어져 있다 어미를 찾는 새끼고라니의 눈망울을 두드려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비는 오고 이미 죽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에 섬이 있고 손님 온다

 

  온다, 사람은 사람으로 부족해 가늘게 눈 뜬 도둑고양이를 사용하거나 개나 염소에게 끌려다니기도 한다 참 다행이다, 오늘은 두 발이고 뿔이 없다 나는, 죽은 척 지켜본다

 

  우산들은 좀 앉으시지, 늙은 몸 가만히 두고

 

  하늘을 기어오르는 구부러진 송곳니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녹턴

 

함께 살지 않고도 살을 섞을 수 있게 된다

 

이불 홑청처럼 그림자 뜯어내면, 그러니까

 

내게 온 모든 세계는 반 토막

주로 관상용이다

 

베란다에는 팔손이, 침실에는 형형색색의 호접난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의 그녀와 나는 서로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척 손만 잡고,

 

죽음을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화분에 물을 주듯 그렇게 서로의 그림자로

피를 닦아 주며 울 수 있게 된다

 

과 싸우던 단 한명의 인간이*

두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아름다운 시들이어서 “가만히 엎드려” 몇 번이고 읽어 보았습니다. 시인들의 시에는 “고라니”가 자주 등장합니다. 많은 동물 중에서 특별히 고라니를 인용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신은 어머니일수도 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시인님의 인간을 대하는 자세와 사랑이 느껴지고 향이 느껴지는 시라는 생각입니다. 시인님의 신은 누구일까,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시「녹턴」에서 “과 싸우던 단 한 명의 인간이 두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에 이르러 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창조하신 조물주, 혹은 갖은 악덕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세계를 창조하신 신과 우리들은 일치단결하여 싸워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갖은 만행을 저지르며 부와 성공을 움켜쥔 신의 탈을 쓴 인간들과도 싸워야 하겠죠. 그 싸움의 과정, 그 기록이 시인님의 시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잘 읽어주신 것 같아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제게 신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제가 사랑하는「모든 것」이에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처럼 어머니이고 세상의 모든 ‘사랑’이에요. 제가 쓴 졸작이지만 저도 개인적으로「녹턴」이라는 시를 좋아하는데, 선생님께서 너무 거창하게 읽어주신 것 같아요. 마지막 연에서 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창조하신 조물주, 혹은 악덕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놓은 건 아니에요. 좀 재미있게 말씀드리면 한 인간이 싸우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대단하지 않은 것도 아니에요. 여기서 신과 인간의 거리, 생각과 생각 혹은 관점과 관점의 차이가 생긴다고 봐요.「녹턴」이라는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외로움이에요. 너무 진부하고 추상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진짜 힘든 싸움은 나와의 싸움이잖아요. 제가 생각할 때 신은 이때 외엔 등장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바꿔 말하면 이때는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결론을 짧게 말씀드리면 「고라니」라는 시에 등장하는 고라니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다 더 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제 시에서 고라니가 얼마나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별로 없는 것 같은데(웃음), 많이 등장한다면 그냥 그 눈망울만큼이나 어감이 좋아서 그래요.

 

 

 

 

대부분의 연애류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행여 아는 사람이 될까 봐 나는, 나랑

좀 멀리 떨어져 앉아서

 

트렁크를 개처럼 끌고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다리를 오도독 뜯어먹었다

 

참 멀리도 왔다는 기분

이런 날의 연애는 방아깨비처럼

나이는 늘 먹던 걸로,

 

해외여행을 조르는 애인 두 빰 사이에

- 코를 풀던 손바닥 한 장 끼워 넣는 동안

 

모가지 빳빳하게 세운 뱀 한 마리 지나갔고

소설에게 차였다는 소설가 녀석이

말복을 데리고 왔다

 

어쩜 아는 것들은 하나같이 교양이 없는 걸까

 

내가 나를 피해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어 올려야 할 때가 있다

 

 

오줌 누는 멍멍이 털을 벗겨

애인에게 입혀 주고 싶었다

 

너무 멀리도 왔다는 기분, 그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 같아서

 

볼펜 꼭지를 똑딱거리며 나는 슬슬

우리 집이 모르는 곳으로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 그렇군요. 며칠 전 읽은 다른 시인분의 시집에서도 “고라니”를 보았어요. 그래서 드린 질문이었어요.(웃음) 저도 모르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행여 아는 사람이 될까 봐” 저는 슈퍼도 며칠 간격으로 옮겨 다녔으며 한 번 갔던 미용실은 다시 가지 않았죠. 항상 익명으로 떠다니고 싶었어요. 위의 시에서 “너무 멀리도 왔다는 기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묘하게도 졸작이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시편들을 고르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연애류」도 마찬가지에요. 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그냥 시로 옮긴 거예요. 연애란 게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연애 잘하는(?) 독자들과 질문을 공유하고 싶었고요. 너무 늦었지만 행여 연애를 할 수 있다면, 먼저 내가 나에게 설렐 수 있는 시간들 그런 나날들을 확인한 다음 당신으로 옮겨가는 그런 연애가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청혼

    -이름 없는 이름

 

  가끔씩 생각한다 나는 죽었군 그리고 그녀에게 가 버린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비가 온다 이름 없는 이름처럼 피가 몰려오고 나는 한 번 더 생각한다

  나는 죽었군 나는 우산을 그녀에게 건네주고 돌아와 버린다 그제야 내 사랑, 그녀가 나를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부른다 좋다, 좋다

 

  죽었더니 좋더군

 

  왼쪽 뺨을 오른쪽 뺨과 바꾸면 바나나 혹은 원숭이가 끌고 다닐 슬리퍼에 반바지

  나는 또 생각한다 나는 죽었군 그런데도 손님이 온다 반갑지 않은 손님만 와서 웃는다 나는 또 생각한다 이제 울지도 못하는군 나는 모르는 척 그녀를 돌아서서 숨을 파닥, 내쉰다

  죽어서도 할 수 있는 게 있군

 

  오른쪽 뺨을 왼쪽 뺨과 바꾸면 원숭이 혹은 바나나가 입고 다닐 웨딩드레스에 고무장갑

  호주머니를 뒤적뒤적 껍질이 벗겨져 있는 그녀 길쭉한 발을 꺼낸다 원숭이도 바나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죽었군, 죽었어 바나나는 원숭이 입에 매달려 잘살고 있는데

  나는 죽어서야 청혼을 하는군

 

  비가 온다 곧바로 피가 몰려온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가버린다

  언젠가 한번은 원숭이와 바나나는 결혼할 테지만

  나는 죽었군 이름도 없이 좋다, 좋다

  참 좋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머플러

 

들릴 듯 말 듯 하다 당신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개소리에

목을 물리는가 하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 눌려

희미해지고, 나는 샤워를 한다

 

배처럼 머리를 빳빳하게 세운 샤워기가 내 몸에 끼얹는 건

물이 아니라 말, 나는 물에 씻기지 않는 사람이어서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또한 비눗물이 나이라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 그러니까 나는 이미

당신의 말에 녹아 버린

 

사람

 

몸이 없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샤워를 하고 바지에 두 발을 꿰고 컬러풀한 와이셔츠에

검은 외투를 걸치고 외출을 한다

살아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로 목을 감싸고

목이 없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잘 살아요 우리, 죽은 듯 살아요

 

그래서 걸었다, 당신의 말을 목에 두르고

죽어서는 따뜻하게 잘살 수 있겠다고

목이 없는 사람이 키우다 버린

한 마리 개처럼

 

나는 이미

죽은 사람임을 들키기 위해

갈 데까지 가 보는

사람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나는 죽었군”(「청혼」), “나는 이미 죽은 사람임을 들키기 위해”(「머플러」) 이렇듯 시인님의 시에는 죽음 이미지가 많습니다. 이것은 “잘 살아요 우리, 죽은 듯 살아요”(「머플러」)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어야 살아낼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도 될까요? 이미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살고 있기 때문에 시인님은 살았으되 죽은 사람이고요.

 

 : 먼저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어야 살아낼 수 있다는 ‘절대’(?) 의미는 아니에요. 제 시에서 죽음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이미지화 된 죽음일 경우가 많아요. 삶과 죽음이 곧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많아서 선생님이 읽은 것과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납작 엎드려 산다는 건 좀?(웃음) 두 편의 시는 다 오리지널(?) 연애 시편이에요.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게 죽음보다 더 아플 수 있잖아요. 쓸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죽음보다 더 아픈 게 있어서 사랑 아닌가, 그렇게 날 위로했거나 울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너무 의미심장하게 읽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네요.(웃음)

 

 

 

 

118 페이지

 

  여기서 세상의 모든 당신은 예언된다.

 

  낮과 밤 사이의 여백이 바로 당신, 흰자위와 검은자위 사이 가파른 숨을 옮겨다 놓는 한순간보다 완벽한 절벽이 있을까?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싶거나 피하고 싶은 당신들과 달리 나는 왜 싸우고 싶은 걸까? 그래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페이지, 여기선 모든 게 절망이어서 정말이다.

  118페이지, 하늘과 땅 사이로 밑줄을 긋지 못한 울음이 뺑소니차 번호판처럼 눌러앉은 여기서 당신은 의 오만과 편견으로 가지런해진 기도의 자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느 날 문득 사라진 누군가를 찾아 헤매다 돌아왔거나, 홀연히 사라질 누군가를 붙잡다가 우산을 놓쳤거나 이건 정말이다. 절망은 그런 것이다. 여기서는 하나같이 삼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드는 생각; 구름도 옷 벗을 힘은 있겠지요?

 

  누구에겐 첫 페이지가 될 테고 도 누군가에겐

  마지막 페이지가 될 것이다. 손가락에 침을 잔뜩 발라

  118페이지를 넘기려는 한순간, 당신은

 

  당신의 퉁퉁 불어 터진 그림자를

  우산처럼 들고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는

  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누군가 인디언 소녀 같은 얼굴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이네,

  또 비가 오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시인님의 시에서는 또 비가 오는군요. 비는 어떤 장치이며 또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118페이지일까요?

 

 : ‘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 그냥 그래요. 특별한 이유도 계기도 이야기도 없는데 그냥 태어날 때부터(?) 비가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비가 오는 날엔 술을 마시고 싶고요. 그냥 그 어떤 일에도 너그러워질 것 같고 용서가 될 것 같고요. 그러니까 어떤 장치나 상징 없이 그냥 나의 전부 같은 것? 118페이지는 다른 페이지로 바뀌어도 이미지나 서사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언되는 ‘당신’이 특정 페이지로 묶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백야(白夜)

-공장주의자들의

 

  인간들 품에 한 번이라도 안겼던 인형들은 점점 고약해지기 시작하는데(정신적으로)

 

  그는 인형공장에서 쏟아진 인형 가운데 조물주가 있다고 생각한다(나사가 풀린 듯)

 

  그가 조립하는 레고는 세상을 떠도는 온갖 영혼들과 외계인마저 무릎 꿇게 만드는 완벽한 인격체, 공주인형까지 공장을 나와 서둘러 예를 갖추기 시작한다(겁먹은 얼굴로)

 

  거 봐, 내가 말했잖아 인형들도 가끔씩 동물원에 놀러온다고, 그가 말했다(냉장고 문을 열었다 쾅 닫으며)

 

  곰인형이나 원숭이인형도 올까요? 공주인형이 말했다(애가 타는 눈빛으로)

 

  처키인형이라도 와야 할걸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요

 

  아기는 아기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지금부터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치의가 말했다(송곳니를 드러내며)

 

 

  처키인형이라면 몰라도 조물주가 엄마라고 부르는 건 싫은데, 그의 아내가 말했다(신경질적으로)

 

  엄마가 아니라 딸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동물원에서는 어미와 새끼가 낮과 밤처럼 뒤섞여 있잖아요 간호사가 말했다(엉덩이를 흔들며)

 

  그는 모처럼 조물주와 낮술이나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한다(콧노래를 부르며)

 

  아직도 인간을 조상으로 섬기는 곰과 발이 작은 여인 몇을 데리고 술집으로 가던 그가 인형뽑기방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한다(나사를 조이듯)

 

  그는 생각한다 조물주가 먼저 자신에게 술잔을 건네야 한다고,(훗훗!)

 

  그는, 훗훗!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부제가 달린 시들이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제목만으로는 시를 다 말할 수 없다는 조바심이 부제를 달게 했을까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함일까요?

 

 : 두 가지 다 이유가 되겠네요. 굳이 둘 중 비중이 높은 쪽은 후자? 전체 이미지를 함축해 제목을 놓을 경우 주제를 끌고 가는 서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부제를 놓은 경우가 많아요. 부제에 놓인 ‘공장주의자’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이즈음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인간군상에 대한 주체의 느낌을 옮긴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낭만주의자들의 경우

 

대개 뿔이 뭉툭한 짐승들의 목소리를 사용한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생각은 기어서 다니고

그러다 힘들면 걸어서 다니고

 

흰 뺨에서 검은 뺨으로, 검은 뺨에서 흰 뺨으로

 

생각 또 생각, 뿔을 지팡이 삼은

생각은 모래시계를 뒤집듯 사랑을 꺼내고

심심하면 시체를 꺼내고

 

발 달린 구름처럼, 녹는 물고기*처럼

밤이 낮을 데리고 지나가고

 

마침내 종이 위에 풀을 심어 말처럼 달리고 달리다

뿔 대신 시인들의 바지를 잉크에 찍어

연애에 사용하기도 한다

미쳤군 또 미쳤어

 

길 잃은 짐승들을 잡아와 밥할 줄도 모르는

남의 집 여자들과 나눠 먹기도 하면서

 

당신에게 간 내 그림자는 어디까지가 손님일까?

 

이윽고 방죽처럼 어둑어둑해진 생각에

낡은 모자와 반바지를 내어 주고

미쳤군 사이좋게

 

끝내 갈라서지 않는 두 뺨을

술집 아가씨 볼기짝처럼

꼬집으며,

 

* 앙드레 브르통,「녹는 물고기」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시가 제게 왔으니 저는 제 방식으로 읽을 뿐이예요.(웃음) “당신에게 간 내 그림자는 어디까지가 손님일까?우리들은 절실하게 사랑하는 경우조차도 상대에게는 영원한 손님인 것 같아요. 당신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온전히 합일하는 것은 낭만주의자들의 경우에도 불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영원한 타인이며 우리들 모두는 개별자, 단독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은 인간의 숙명인거죠.

 

: 적확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낭만주의에서 허우적거리는 입장에서 아주 편하게 쓴 작품인데, 까맣게 잊고 있다 선생님을 통해 다시 읽으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요즘은 다른 사람을 통해 이걸 내가 썼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의 참 묘한 기분을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수영장을 공장이라고 말하는 金아무개 의 경우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어리석음이나 게으름 또한

수영 무료 강습에서 배울 수 있는 영법의 하나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글쎄요 인생을 건너가기엔

개구리헤엄이 최고라는데 공장에서

생산되는 영법이라죠

 

술을 마시다 보면 하늘에 발이 닿습니다

목욕탕 가는 옆집 아줌마를 수영장 간다고 웃고

수영장에 가는 딸을 공장에 간다고 우기는

金아무개 의 심오한 견해는

타이어공장 시커먼 굴뚝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는 겁니다

 

 

출근 중인 올챙이와 퇴근 중인 개구리 중에서

수영은 누가 더 잘할까?

 

밥 먹듯이 하는 야근에도 바짝 긴장하며

별 볼일 없는 생각으로 골똘한

金아무개 나이는 쉰, 그 누구보다 열심히

팔다리 휘둘러 초등학교 1학년 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죠

 

그러니까 소름 끼치게도 인간적인

金아무개 의 수영 실력은

땅 짚고 헤엄치는 자들이 지은 공장에서

생산된 겁니다

 

,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金아무개 머릿속의 생각이

金아무개 의 팔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놀랍고 흥미로운 시입니다. 저도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규격의 벽돌들요. 인간적인 따뜻함이 사라진, 차가운 물성의 벽돌들요. “출근 중인 올챙이와 퇴근 중인 개구리 중에서 / 수영은” 단연코 영악한 올챙이들이 더 잘하겠죠?

 

: 앞에 놓인 ‘백야’란 시와 연관이 되는 작품이죠. 실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으로 기억하고요. 일상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거나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제목을 놓고 그냥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는 아이가 일기를 쓰듯 그렇게 편하게 썼어요.

 

 

             

물고기와의 뜨거운 하룻밤

 

  나는 아무래도 눈물 한 토막을 전생에 두고 온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펄쩍, 어항 속을 뛰쳐나와 바닥을 팔딱거리는 금붕어에게 눈이 멀 까닭이 없다 화장을 지우는 당신 입안 깊숙이 나는 아직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달의 속곳이라도 훔쳐 입은 듯 달달해진 그림자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바람이 발라낸 당신의 살이 만져지는 밤, 텅 빈 어항 하나로 떠오른 나는 아무래도 눈물에 길을 가로막힌 것 같다

 

  내일쯤 눈꺼풀을 잘라 내기로 했다 푸드덕 머리를 열고 날아오르는 새들보다 먼저 태양을 필사한 금붕어 배를 갈라야겠다

 

  스르륵 바지부터 벗어던지는 혓바닥이 너무 달콤하고 뜨겁다

 

  그러니까 내게 눈물이란 까마득히 밑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솟구치다 딱 두 눈을 마주친 물고기의 전생, 아무래도 내 몸은 영혼을 헛디뎠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둥둥 강을 거슬러 오르다 죽은 연어가 떠오른다

 

  사랑해, 라고 속삭이는 당신의 거짓말로 살기엔 가시가 너무 많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시인들은 모두 참 눈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해, 라고 속삭이는 당신의 거짓말로 살기엔 가시가 너무 많다” 시인님의 가시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지요? 젊었을 때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여행을 떠나려는 아들에게 영화 속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얘야, 총을 가져가거라.” 였습니다.

 

 : 슬픔이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눈물은 가시로 치환될 수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주는 동시에서도 선인장에게 가시는 눈물이라고 쓴 적이 있어요.(웃음) 전 딸이 하나예요. 말은 잘 못해서 안 하는 편인데, 그냥 일이든 사랑이든 네가 행복할 수 있으면 된다? 영화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총보단 “얘야, 눈물을 가져가거라” 하고 말하겠네요.(웃음)

 

 

 

의자가 왔다

 

  그때 그는 누워 있었다. 의자는 누군가를 데리러 왔지만 그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의자가 왔다. 그가 의자와 엽서를 주고받은 것은 아버지가 엄마를 버렸을 때부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의자가 그에게 보낸 짐승들은 쉰 두 마리. 친애하는 염소에게, 친애하는 돼지에게, 친애하는 두더지에게, 급기야 친애하는 마담에게까지. 의자가 왔다. 누워 있는 그를 빈정대며 의자가 말했다. ‘이보시오. 여긴 당신 집이 아니오.’ 의자는 누워 있는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친애하는 두더지와 염소는 그런 의자의 행동에 놀란 기색이었지만 돼지가 꼬리를 자를 만큼 친애할 수 없는 일은 생기진 않았다. 의자가 왔다. 네 개의 발로 하나의 엉덩이를 받들어야 하는 사랑의 자세가 그랬다. 의자가 왔다. 그는 의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누워 있었다. 그는 의자가 망가질 때까지 누워 의자를 기다릴 것이다. 의자가 왔다.

 

  의자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의자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애하는 염소와 친애하는 돼지와 친애하는 두더쥐와 친애해서는 안 될 마담만 사랑했다. 의자가 왔다. 그는 누군가의 유언처럼 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고 친애하는 염소는 옥수수를 삶고 있었다. 의자가 왔다. 친애해서는 안 되는 마담은 친애할 수 없는 남자의 아랫도리를 벗기고 있었다. 의자가 왔다. 친애하는 돼지가 식탁 위의 꽃병을 치우고 음식을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친애하는 두더지는 그가 누워 있는 바닥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의자가 왔다. 기도하는 자세로, 개 같군! 의자가 말했다. 그는 배신당한 유언*처럼 어디에도 꽂힐 수가 없었다. 의자가 왔다. 그의 죽음 뒤에도 남아 앞발을 모으고 있을 어미 개처럼, 그때 그는 납작 엎드려 있었다. 친애하는 염소는 삶은 옥수수수염을 뽑고 있었고, 그는 친애할 수 없는 아버지가 난생처음으로 보고 싶었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매혹적인 시편이에요. 의자는 누구일까요?

 

 : 몇 편 되지 않는 아버지에 관한 작품이에요. 돌아가신지 십 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살아계실 때 별로 친하지 않아서 그런지 요즘은 가끔씩 생각이 나요. 아무래도 제가 종교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의자는 그냥 ‘사랑’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한 인간이 가진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화시킨 상관물이니까요. 독자들은 제각기 다른 단어 하나를 떠올려 의자 대신 놓고 읽어도 서사는 읽힐 거라고 봐요.  

 

 

 

 

  개처럼 목줄 묶어 아침 산책이라도 나가면 세계 각국에서 보낸 도둑고양이들의 관광엽서가 발밑에 쌓였다. 그때마다 나는 히잡을 쓴 무슬림이 주인으로 있는 여인숙을 떠올렸고 거기서 내가 처음 울었다는 말을 생각해냈다.

 

  옥수수 밭을 지나 어미 쥐의 꼬리를 잘라 먹는 아기 쥐처럼 그렇게 나는 나를 숭배했지만, 두 번 다시 내게 오지 않을 말을 물어 나르며 세상에 저항했지만, 하나의 목숨으로는 받아 낼 수 없는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죽음은 너무 오래된 거짓말, 모종의 숨구멍을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던 두 마리의 쥐가 기념 조형물로 변했다. 도둑고양이들의 조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다시 발이 귀보다 작은 묘족들의 동장(洞藏)*을 떠올렸고 거기서 내가 죽었다는 말을 생각해 냈다.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내게 세상의 모든 말들이 쥐똥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까지

 

  내 왼쪽 귀는 수컷이고, 오른쪽 귀는 암컷이다.

 

* 동장(洞藏) : 죽은 사람을 절벽 속에 묻는 묘족의 풍습. 한족을 비롯한 다른 부족의 침입에 맞서 조상의 묘를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묘책이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내게 세상의 모든 말들이 쥐똥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까지 // 내 왼쪽 귀는 수컷이고, 오른쪽 귀는 암컷이다. 자웅동체로서의 완벽한 귀, 세상의 말을 보다 더 잘 듣고 시로 받아 적기 위해서 자웅동체의 구분이 없는 완벽한 자아를 꿈꾸시는 것일까요? 시의 제목은 왜「쥐」일까요?

 

 : 그냥 아주 편하게 귀에 대한 이미지를 ‘쥐’로 놓은 거예요. 내가 듣는 나의 이야기, 내가 읽고 쓰는 나의 이야기(이 이야기 속엔 내가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이야기도 포함되겠죠.)를 담은 거예요.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이 두 마리의 쥐를 키우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금방 이해가 되겠죠. 아닌가?(웃음)  

 

 

 

()

 

비파나무 이파리 위에 발을 하나로 올려놓는

는개처럼, 여기서부터 또 잠이다 당신을 가늘게

오르내리던 숨을 따라 걸어 본다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다

 

내 몸을 내가 나르는 일마저, 끝내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한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물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왜 머리가 없는 걸까 도대체 왜

내 삶은 엉덩이뿐일까

 

흘러간 물의 얼굴을 찾아내서

눈을 감겨 주고 싶었다 여기서부터 또 잠이다

 

당신의 안일까 밖일까? 나는, 나를

가만히 울어 본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아직도

나에게 알리지 못했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 “왜 머리가 없는 걸까 도대체 왜 / 내 삶은 엉덩이뿐일까”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처럼 시인님의 삶 또한 한 권의 소설이겠지요. 풀어놓으실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 이 작품도 사랑이 주제랍니다. 사랑이 그렇듯 잠도 내가 내 몸을 나르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혼자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6연을 떠올리고 쓴 작품인데,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꿈꾸는 일이잖아요. 그때 꿈은 사랑하는 대상인 당신의 안일까 바깥일까 하고 잠을 통해 묻고 싶었어요. 에구, 제가 생각해봐도 좀 난해(?)하네요.(웃음)

                   

 

                             

 : 시집의 제목인『원숭이의 원숭이』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숭이의 원숭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어느 날 문득 난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워낙 못난 인간이어서, 분명 원숭이보다는 위에 있는데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웃음). 그때 함께 시 공부를 하던 지인이 원숭이의 원숭이, 하고 말했어요. 머리가 번쩍, 했죠. 암튼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원숭이의 원숭이’일 수밖에 없잖아요.

 

 

너구리

-너무 오래

 

  팔순 노모가 지어 준 밥, 일인분씩 먹기 좋게 나눠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밥, 전자레인지에 한 번만 돌리면 갓 지은 밥이나 마찬가지니깐 굶지 말고 꼭 챙겨 먹으라는 밥, 꽁꽁 얼어붙은 밥 덩어리 앞에서 또 궁금해진다 어떻게 혼자 살면서도 외롭게 살았을까? 아무래도 나는 나를 너무 오래 오해했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밥을 아무리 맛있게 먹더라도 나는 결코 인간이 되지 않을 거야, 너구리가 인간이 될 수 없듯이 어떻게 홀아비로 살면서도 외롭지 않게 살았을까? 그러나 아무리 쉬쉬해도 세상은 인간이 엉망이란 걸 알게 된다

 

                              - 시집『원숭이의 원숭이』중에서

 

 

지옥과 음악이 한 풀무에서 나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슬픔과 냉소가 서로를 부양한다. 슬픔은 거리의 소멸이고 냉소는 거리로 섭생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시집은 배덕자의 독백이라기보다 독신자(瀆神者)의 냉소적 저항으로, 그리고 이를 환원하여 독신자의 방어적 사랑으로 읽는 게 옳다. 세계가 주관 안에서 모두 소화되지 않고 언제나 잔여물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원숭이의 원숭이』해설 중에서, 문학평론가 조강석)

 

                     

 : 5회 동주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 과분한 사랑을 받은 셈이죠. 수상자 선정방식이 시집이나 시인을 선정해주는 상에서 공모형식으로 바뀐다는 계간 『시산맥』의 사고를 보고 꼭 받고 싶은 상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만들면서(설마 제가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무지 절망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부끄럽지만 좀 더 써도 된다는 위로이자 격려이니까요.

 

 

 

부리가 샛노란 말똥가리 두어 마리 데리고

 

  내일의 날씨가 우산을 들고 뛰어올 때까지

  빗소리를 심었다 화분 가득

 

  끓는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말이 있어서, 누구십니까? 나는, 내가 만들지 않은 사람 나는, 끝이 난 다음에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시작되지도 않고 끝이 나는 이야기 나는, 빗방울처럼 움켜쥔 배꼽으로 세상을 내려쳐보는 이야기여서, 그렇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천변 어딘가에 그림자를 숨긴 새들은 인간의 노래에서 도망 나온 글자들을 쪼아댔다

 

  벌레보다 못한 말, 서서 잘 수 없는 말로 꿴 책이라니

 

  엄마, 엄마는 왜 벌써부터

  누워있는 거야

 

  부리가 샛노란 말똥가리 두어 마리 데리고  

  죽은 듯 가만히 누워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떠내려 오거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내려가다 보면

 

  내가 가진 내 얼굴을 울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니

 

 

  그래서 갑니다 이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당신에게

  이번엔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다음번엔 자기라고 불러도 될까, 하고  

  벚꽃고양이처럼 한쪽 귀 접어서

 

  마지막 햇볕을 쬐는 듯 오늘의 기분이 우산을 들고

  내일로 뛰어가 두 번 다시 오지 말라고, 나는

  나 없어도 울지 마, 라는 책에 몸을

  비끄러매는 것이다

 

* 메리 올리버

 

   - 5회 동주문학상 수상작품,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5회 동주문학상 수상작품 중의 한 편입니다. “마지막 햇볕을 쬐는 듯 오늘의 기분이 우산을 들고 / 내일로 뛰어가 두 번 다시 오지 말라고, 나는 / 나 없어도 울지 마, 라는 책에 몸을 / 비끄러매는 것이다” 저도 “울지 마, 라는 책”이 있다면 그 책에 “몸을 비끄러매”고 싶습니다. 과연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나을까요?

 

 : 퇴고를 좀 많이 한 작품이에요.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에 관한 시편인데, 어느 날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고 있는데 “나 없어도 울지 마” 하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저녁 집에 와서 초고를 써놓고 이게 시가 되려나, 하고 한참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참을 묵혀두었는데 ‘메리 올리버’의 산문을 읽다가 꽂힌 문장이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였어요. 결국 초고에서 나 없어도 울지 마, 라는 책은 어머니로 설정되어있었고, 그 책 속에서 내가 읽어내야 할 문장을 메리 올리버가 써준 거죠. 선생님의 질문엔 찢어져야 마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찢어지지 않는 마음엔 깃들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 김문주 평론가께서는 “김륭의 시는 말의 길, 길에 이르는 경로經路가 아닌 다양한 해찰의 방식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매우 자주 말을 넘나드는 유희의 방식으로, 때때로 말의 길과 무관해보이는 엉뚱한 문장들로, 그리고 결합할 수 없는 언어의 배합과 무심無心해 보이는 표현들로서 나타나지만, 여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닿을 수 없음, 그 미달未達과 결락缺落을 형상한다. 하여 김륭의 시는 정서적 자질로는 넘치도록 서정적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는 실험적인 것처럼 보인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김문주 평론가님의 말씀대로 시인님의 시가 조금은 난해하고 실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매혹적이기도 하고요. 동의하시는지요?

 

 : 시도 그렇고 동시도 그렇고 난해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 것 같아요. 물론 읽기에 따라 그럴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답을 굳이 드리자면 난해하지도 실험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아주 통속적인 연애시? 내가 상상하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불러온 언어를 좀 다른 방식으로 부리고 싶을 뿐이에요. 김문주 평론가의 말처럼 말의 길, 길에 이르는 경로가 다 같을 수는 없잖아요. 그건 사람과 사람의 길, 사랑과 사랑의 길 또한 다 다를 거란 생각을 해요. 저는 부족하지만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뿐이랍니다.(웃음)

 

 

하쿠나 마타타

 

                     모자는 죽일 수 없다 그러니까 죽음을 수행 중이어서

모자 속으로 발자국을 가지고 갈 수 없다

모자와 무덤은 같은 장르다

2020831일 동네마트에 가다가)

 

  컵라면 사러 가는데도 따라온다, 모자

 

  시작부터 끝까지 반바지에 슬리퍼나 끌고 다니는 소설 속 망나니 주인공의 이름을 바꾸는 일보다 즉흥적이라고 쓴다, 내 코앞의 내 인생을 바꾸는 일 내가 눌러쓴 모자와 내가 들어갈 무덤은 늘 같은 방향이어서

 

  아 근데 뭔가 말이 안되는 게* 죄송합니다 나는, 내 얼굴을 못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입이 부끄러워질 때마다 머리 위에 똥을 싸곤 했던 나는 오늘도 떠난다 지그시 눈을 감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떠나는 나를 나는 잡지 않는다 한쪽 손을 들고 건널목을 건너던 아이가 놓친 풍선처럼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풍선 어때? 머리 대신

  (급 모자 속에서 툭, 떨어진 머리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꼭 연락 바람)

 

  재활용쓰레기를 비우러 가는데도 따라온다, 모자 빌어먹을 모자, 모자, 모자...... 인간이 떨어뜨린 모자를 하늘로 올려놓기 위해 새는 연습이 더 필요할 테고, 나는 어둠을 훔치기 위해 밤을 기다리는 도둑 여러분들처럼 본능적으로

 

 

  모자 안에는 머리가 있죠 그렇다고 시작은 아닙니다 모자 안에는 꼬리도 있죠 그렇다고 끝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모자는, 갑자기 흥분해서 사실 자기는 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고(아 근데 뭔가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게)

 

  머리에 눌러 앉힌 모자로 먹고사는 거리의 꽃들은 머지않아 내가 미치리라 예언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나보다 먼저 미쳐있는 세상, 나는 미친 모자를 보지 않으려고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무연고 무덤을 찾아가듯 오늘도 면도를 하며 모자의 기분을 살핀다

  그런데 언제 죽었을까 나는,

 

  갑자기?

 

* 사뮈엘 베케트,『그게 어떤지/영상』에서.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모자가 상징하는 것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모자는 죽일 수 없다” 모자는 때로는 권위와 그 사람의 지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모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시인님은 청교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세상의 단맛을 알아버린 자이기에 이미 죽었다는 말씀일까요?

 

 : 제 작품이지만 어렵네요.(웃음) 제가 쓴 모자는 권위나 어떤 사람의 지위나 명예는 절대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관습적인 모자니까요. 이 작품도 ‘의자가 왔다’라는 작품속의 의자처럼, 그냥 사랑 같은 내가 가지고 있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단어로 치환해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누구나 그렇잖아요. 안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을 아무렇게나 꺼내 보거나 만질 수 없잖아요. 너무나 통속적인 감정이지만 그 통속이 신비로움으로 만져질 때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사람은 죽일 수 있어도 사랑은 죽일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나온 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자는 죽일 수 없다는 문장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무슨 주문처럼 괜찮아, 괜찮아, 하고 올렸고요.

 

 

 

 

던니스(doneness)

 

지옥과 지옥 사이에 천국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방풍나물 같은 채소나 심고 살면 되겠다고 나는 가금류처럼 좋아라했지만

거기서 살지 못했다

 

양의 소문은 양고기, 송아지의 소문은 송아지고기

 

그러니까 소문은 소문일 뿐, 애인에게 줬다 뺏은 거짓말처럼

천국과 천국 사이에 지옥이 있다고 썼다

나는 거기서 살았다

 

내가 좋은 세상은 볼만큼 봤으니, 이젠

그녀가 좋은 세상을 볼 겁니다

 

    - 5회 동주문학상 수상작품,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내가 좋은 세상은 볼 만큼 봤으니, 이젠 / 그녀가 좋은 세상을 볼 겁니다” 그녀는 누구일까요?

 

 : 죽도록, 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사랑의 주체? 돌이켜보면 전 참 이기적으로 산 것 같아요. 사랑도 그렇게 한 것 같고요. 그래서 다 망한 것 같고. 그래서 자아비판의 시. 너무 솔직해서 죄송하네요.(웃음)

 

 

 

영원

어느 날 밤

그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자신의 탁자 앞에 앉아

자신이 일어나서 떠나는 모습을 본다

- 사뮈엘 베케트「떨림」에서

 

눈사람의 심장을 꺼내기 위해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진솔한 답변들에 감사드립니다. “눈사람의 심장을 꺼내기 위해 /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을 창조하신 일까요? 부조리한 세상일까요? 창작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 고백컨대 전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진 않아요. 그냥 좀 편하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어요. 선생님께서 과분할 정도로 그럴듯하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서 자꾸 죄송하네요.(웃음) 이 작품에서 굳이 을 말하자면 사람이에요. 눈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렇잖아요. 이 작품도 연애 시편인데 우리가 입에 달고 살지만 ‘사랑’이란 너무나 복합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를 ‘심장을 가진 눈사람’으로 치환하면 간단해요. ‘사뮈엘 베게트’의 문장을 관문으로 놓은 것은 봄이 오면 눈사람이 떠나듯이, 내가 나를 떠나는 모습(죽음)과 사랑이 사랑을 떠나는 모습의 이미지를 2행뿐인 짧은 시행 사이의 여백에 끼워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두부

 

밤의 입술로 흘러들지 못한

몇 가닥 전선 위에 잠과 애인을

올려두었다

 

굴뚝새 둥우리에 알을 맡긴 두견이처럼

울진 않았지만 참 나쁜 이야기 같은 것이다

잠과 애인은 오지 않으면 바짝

신경이 곤두선다

 

오늘은 또 얼마나 호주머니가 두둑한

꽃나무 이불 속에 다리를 뻗고 있는지, 나는

머리를 베개처럼 집어 던질 수밖에

 

 

아무리 나쁜 이야기 속이라도

죽지 않았으면 했다 자꾸 무덤이 되려는

살에 못을 박는다

 

몇 가닥의 전선 위에 올려놓았던

잠과 애인이 두부로 변했다 흰 두부가 있다면

검은 두부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날에는 밤이 두부로 배를 채워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 밤이 달에게 그랬듯이

나 또한 당신만을 생각할 것이라고

 

살을 따듯하게 데운 나는

검은 두부가 흰 두부가 될 때까지

못을 다시 박는다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살을 따듯하게 데운 나는 / 검은 두부가 흰 두부가 될 때까지 / 못을 다시 박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릅니다.

 

 : 선생님 말씀처럼 뭔가 심오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하얗고 무르고 따뜻한 두부 이미지로 식은 혹은 죽은 사랑에 대한 의지를 담아보고 싶었어요. 잠에 대한 이미지도 함께 떠올려보면 재미있게 읽힐 작품이에요.(웃음)

 

         

집에 두고 온 복숭아를 보러 가던 여자가 말했다, 꼭 같이 보러 가요

 

 

과일들은 참 착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래요 우리도 그럴 것 같아요

 

좌판에 올라앉은 복숭아나 바나나, 그리고 수박처럼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어쨌든 우리 함께

 

원숭이처럼 사는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

복숭아처럼 잘 생각해봐요 지금 우린 남겨진 걸까요

버려진 걸까요

 

단 하나뿐인 심장에게 단 한번이라도 봉사한 적이 없는

그래서 다정하게 우리 함께

 

오늘 하루쯤은 미침, 완전한 결말을 기대하며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의 머리를 베고 꼬리를 자른 다음

내일은 마침, 오렌지처럼 상큼하게

 

더 이상 사랑이 아니거나 이별이 아닐 때까지

부엌칼이라도 좀 빌렸으면 싶었지만,

여자가 말했다

 

그건 어제의 일이잖아, 알아? 당신

입술 다음엔 심장 그 다음엔 얼음이라는 거

 

오늘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내일이 획- 지나갈 것 같은  

이럴 날엔 이런 말밖에, 나도 나를 한번쯤은

죽여보고 싶다고

 

비라도 왔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그립거나 외로울 것

찢어진 우산과는 무관하게

 

여기까지 온 것만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혼자 죽지 않을 만큼 애쓴 거라고

 

꼭 같이 가요

잔털 북슬북슬해진 심장이 쓰는 이야기의 끝을

보러가요

                   

 - 5회 동주문학상 수상작품,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여기까지 온 것만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혼자 죽지 않을 만큼 애쓴 거라고/ 꼭 같이 가요 / 잔털 북슬북슬해진 심장이 쓰는 이야기의 끝을 보러가요” 시인님의 심장이 쓰는 이야기의 끝이 궁금합니다.

 : “혼자 죽지 않을 만큼 애쓴 거라고”, 하는 상투적인 구절이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삶 너머 죽음까지도 시의 영역이라면 끝이 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게 시든 사랑이든 삶이든. 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나마 가질 수 있으니까요.

 

 

: 공식 질문입니다. 시인님에게 시란 무엇인가요?

 

 : 삶이에요. 시적으로 말하자면 ‘시간을 지배하는 유일한 힘’(?) 이건 사랑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시 = 사랑, 이란 등식이 성립되는데 삶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발화지점이 아닐까, 싶네요.

 

 

 

돼지서문

 

  엄마 팔순을 맞이해 남해안 아름다운 바닷가에 펜션을 잡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합니다 혹시 일박을 할 수 없는 분은 밥만 드시고 가셔도 됩니다 저녁은 자연산 회와 매운탕으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반대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어렵겠지만,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일박을 할 수 없는 분은 밥만 먹고 가셔도 됩니다

 

                                     - 막내딸 배상(拜上)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시의 제목이 상징하는 것을 여쭙습니다. 먹을 것만 있으면 만사형통인 돼지에 인간을 빗댄 것일까요?

 

 

 : . 돼지를 비하한 것 같아 돼지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웃음) 실상은 인간이 돼지보다 훨씬 더 돼지 같은데 말이죠. 이 작품은 제가 잘 가는 ‘8월의 크리스마스’란 북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옆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엽서 형식의 이미지로 그려놓은 거예요.

 

 

 

곰이 눈사람과 싸운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사람은 갈 곳이

있지요 죽은 사람도 갈 곳이

있지요 그런데도 갈 곳이

없다는 사람이 있지요

너무 걱정 말아요

나는 나를, 당신은 당신을 곧

찾아낼 거라고 누군가는

믿고 있을 거예요

그래요 찾아낼 수 없다면

유령처럼 나타날 거예요

물론 그때 내가 나를

당신이 당신을 알아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뭐 행여

못 알아본다고 한들

괜찮아요

 

모든 사람은 갈 곳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유령이

있는 거니까요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

당신이 있다면

곰과 눈사람이 싸운다고

생각해봐요

 

입 닥쳐, 란 말을

누가 먼저 꺼낼지 그따위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시길, 둘 다 갈 곳이

있으니까요

비록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라도

사랑하니까요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우리들의 삶 자체가 애초에 허무맹랑한 것이며, 우리 인간은 종국엔 그것도 허무하게 금세 녹아내리는 눈사람이라는 것일까요?                  

 

 : 마지막 3행을 주목해서 읽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하고 싶은 말이 다 있으니까요. “비록 기다리는 사람은 / 아무도 없을지라도 / 사랑하니까요”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을 한데 묶어 아주 쉽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가정법의 제목은 동화적 상상을 차용한 거고요.

 

 

 

봉투 같은 걸 들고

 

첫눈은 계속 내리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아

 

여름에도 눈사람을 줍는 사람이 있어 봉투 같은 걸 들고

흰 봉투인지 검은 봉투인지는 몰라도 돼 어차피

 

살아가는 자와 죽어가는 자의 이야기로

세상은 돌고 돌아

 

애도가 사교가 되는 장례식장, 모르는 사내 둘이 마주보고 앉아

국밥을 먹는데 참 먹먹해 보여 그래서 좋아

 

밥은 계속 먹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아 다정하게

 

둘 중 하나가 죽었으면 너무 다정해져서 울지도 못할 거야

 

이름 없는 씨앗을 받을 것도 아닌데 봉투 같은 걸 들고

 

물소리가 물고기를, 물고기가 물소리를 잡으러 가듯

 

눈사람은 좀 더 누워있게 내버려두는 게 어때

첫눈은 계속 내리도록 그냥 국밥이나 먹자

 

또 오겠지 도망이라도 오겠지

 

봉투 같은 걸 들고

 

 - 5회 동주문학상 수상작품,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검은 기린

 

 

       “이 육체 속에서 우리는 무얼 한단 말인가.

내 옆 침대에서 누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안토니오 타부키『인도 야상곡』

 

 

영혼을 다 써버린 후 검은 연기처럼,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어떻게 지내는지

당신이 지새는 밤과 어떻게 섞이는지 보려고

 

내가 없는 내 죽음도 보일지 몰라 하얀 침대시트를 함께

말았던 당신의 죽음 또한

 

그러나 지금은 자는 게 좋겠다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130g 햇반처럼 납작해지는

, 하얀, 검게 그을리기 좋은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 또한 돌아왔다고

나는 다 써버리지 못한 울음으로 가만히

두 눈을 꺼트릴 것이다

 

 

없는 아름다움도 막 팔아먹을 만큼 우린 참

식물적으로 아팠지, 이런 문장 하나쯤은 서로의 입에

넣어줄 수 없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듯

검게 부러져가는 서로의 목을

베개처럼 껴안고

 

엄마, 엄마

 

나는 왜 자꾸 눈사람 머릿속이

검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 5회 동주문학상 수상작품,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 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의 제목은 어떻게 정해졌을까요?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는 어떤 시일까요?

 

 : 여기서 애인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모든 사람들이에요. 주고 싶지만 주면 그 의미가 무엇이든 받는 사람이 아플 것 같아서 뺐어야 하는, 그런 시(?) 원래 시집 제목은 다른 거였는데 출간 거의 막바지에 바꾼 거예요. 지금은 좀 후회스럽긴 한데 그땐 그랬어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그랬어요.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청소년을 위한 시집『사랑이 으르렁』은 어떤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지요? 청소년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요?

 

 : 이즈음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어요. 한창 사랑하고 뭔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인데 오로지 공부밖에 없잖아요. 지나고 보면 별 쓸모없는 것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아주 이기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중독….(?) 그래서 좀 엉뚱하게 좀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반적인 평가는 역시 좀 어렵다는?(웃음) 하지만 언젠가는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받을 거라고 믿어요.(웃음)

 

 

: 많은 동시집을 출간하셨습니다. 동시집 『엄마의 법칙』은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동시를 쓰게 된 계기를 여쭙습니다. 동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동시를 쓰실 때 고심하는 부분은 어떤 점일까요? 쓰신 동시 중 가장 호응이 좋았거나 혹은 가장 애착이 가는 동시 한 편 소개를 부탁합니다.

 

 : 시 습작을 하면서 동시를 함께 썼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이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미지나 서사를 동시로 옮겼어요. 시보다는 동시가 더 어려워요. 알기 쉽게 문장으로 놓으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는 쓰기는 쉽지만 읽기는 어렵고, 동시는 읽기는 쉬운데 쓰기가 어렵다. 요즘은 시와 동시를 같이 쓰는 시인들이 많아서 좀 덜 외로운 것 같아요.(웃음) 그냥 호응이 좋았거나 애착이 가는 동시는 아니고요. 아까 눈사람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눈사람」이란 동시를 한 편 인용하는 걸로 하죠.

 

 

눈사람

 

 

나는 손이 없어 나를 꼭 껴안아 줄 수는 없지만

새로 태어날 수는 있습니다.

 

추운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나는 발이 없지만 걸어서 왔습니다.

 

하늘을 꼭꼭 밟고 왔습니다.

 

―『엄마의 법칙』(문학동네)

 

 

 : 시인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문학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실까요?

 

 

 : 사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좀 구체화시켜서 하고 싶어요. 부족한 제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 없을 것 같고, 그냥 사랑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좀 하고 싶어요. 삶이 곧 와 같은 장르잖아요. ‘사뮈엘 베케트’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내가 언제 죽었는지 더 이상 모르겠다” 이 문장을 따라 좀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사는 이야기가 있고 아름다움이란 단어도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시인의 시를 읽는 내내 나는 내게 온 시인의 시를 뺏길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하였다. 시인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주고 싶지만 주면 그 의미가 무엇이든 받는 사람이 아플 것 같아서 뺐어야” 했던 그 시를 시인의 지극한 마음과 상관없이 그저 뺏고 싶어 안달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렇다면, 나는 시인의 시를 뺏었는가. 분명한 건 나만의 방식으로 나는 시인의 시를 일정부분 소유하고 함께 아파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시인의 시는 영원히 순결한 시인의 것이다. 나는 흐느끼는 나비 같은, 녹지 않는 눈사람 같은, 사랑의 “떨림”으로, 달의 울음으로 시인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인용한 ‘사뮈엘 베케트’ 의 문장(“내가 언제 죽었는지 더 이상 모르겠다” )을 오래도록 되 뇌일 것이다. 살고 싶어서, 시인처럼 사랑으로 살고 싶어서......

 

떨림

 

울음이 울음을 밀고 있다

 

이미 죽었는데 아직 죽고 있다는 듯이

 

그때마다 눈송이, 이제 막 눈 뜬 늙은 눈송이 하나

땅에 발 내려 뭉쳐지려다 또 뿔뿔이 흩어지는

눈송이, 눈송이 뒤집어쓴 나는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눈사람을

녹이는 사람

 

열려라 밤, 닫히면 또 어때 중심을 잃은 내가

나를 걸어보는 이야기

 

 

말 위에 말을, 글 위에 글을, 숨을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

 

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눈사람 검은 머릿속 가득 고인 피로 밤을 끓이듯

살 떨리는 필치로

기어코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먼저 죽은 사람

 

사람을 다 잡아먹은 공기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달에 숨을 붙이러 가는

울음이 있다

 

                      -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중에서

 

 시를 사는 자를 시인이라고 한다면, 김륭은 그야말로 시인이다. 그는 시에서, 비로소 생각하고 말하는 자이다. 때로 ‘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심을 잃은 내가 나를 걸어보는 이야기” 라고 자신의 시에 관해 그는 말하지만, 중심을 잃고 쓴 시는 없을 터이다. 어찌 중심을 잃고 시를 쓰랴.

 “말 위에” 더해진 말, “글 위에” 얹혀진 글들 사이에 출몰하는 그,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의 고독과 사랑과 욕망의 그림자를 본다. 지독하게 자신을 앓고 있는 그의 지극한 ‘서정’ 은 여간한 인내 없이는 잘 감수되지 않는다. ‘흰 눈사람의 검은 머릿속’ 이야기,   “울음이 울음을 밀고 있”는 저 생의 풍경이 어찌 내부에 쉽게 사람을 들이겠는가(문학평론가 김문주)

 

 

《김륭 시인》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2014년 제9회 지리산문학상

2019년 제30회 경남아동문학상

2020년 제5회 동주문학상

2012년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2018년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2020년 시집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2019년 청소년시집 『사랑이 으르렁』

2009년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2012년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2014년 동시집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2014년 동시집 『엄마의 법칙』

2016년 이야기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2018년 동시집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2020년 동시집 『앵무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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