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사각지대 /김동준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20/06/25 [11:00]

기억의 사각지대 /김동준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6/25 [11:00] | 조회수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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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페이지_120ISBN 979-11-86111-79-6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_ 10,000입고 2020. 6. 22

 

 

소박하게 차려진 밥심이 주는 위로의 시편!

 

 

김동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사각지대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늙음, 삶과 자연, 도시 서정 그리고 해학을 기반으로 가족 구성원에 관한 시적 성찰을 보여준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를 포함하는 가족은 최소 단위의 공동체다. 필연과 우연 그리고 숙명으로 얽힌 그들에게서 생겨나는 감성은 범주를 넓혀 더 광범위한 공동체, 사회, 국가, 세계, 우주 삼라만상으로 확산되는 출발점이 된다.

 

 

아랫목 이불 밑으로 꽁꽁 언 발을 밀어넣는다

아버지 주발 발끝에 닿는다

꼭두새벽 별빛 털고 일어나

어슬녘 달빛 짊어진 헛기침이 사립문 열 때까지

일터 차지게 일궈 지은 밥심 절절 끓고 있다

끓는 밥심으로 굽은 허리 펴지고

마른 몸 불꽃이 인다

그 힘으로

아버지는 밥줄 늘리고

아이들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밥줄 끊긴 기간제 근로자 김씨

자갈돌처럼 달궈진 타워 크레인 올라

죽죽 늘어나는 치즈 같은 고공의 나날

벌써 몇 달째 이어가고 있다

어린 눈망울 초롱하게 빛날 때까지

밥심 절절 끓을 때까지

—「밥심전문

 

할아버지가 그러했고 아버지가 이어받았고 지금 우리가 그런 것처럼 밥심은 일상의 질곡, 부담, 무게, 운명 같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특히 지금처럼 시간이 없어 가볍게 끼니를 때우고 혼밥’, ‘혼술이 유행하는 시대와 가족해체, 개인주의 풍조 속 고단을 떨치고 화목으로 이끄는 밥심은 앞으로도 시인의 시적 테마 중 하나다.

 

 

나이테는 아내가 쓰는 울음의 기록이다

서릿바람 불면서 뻑뻑한 자궁이 운다

비릿한 달빛 말라붙고 나서

울고 싶을 때 맞춰 수시로

고인 된 오빠가 울음보 건드린다

울음 간격 촘촘하다

나지막한 울음소리 짙다

아내가 쓰는 기록은 잠결서도 뻔히 읽힌다

괜스레 위로한다고 한마디 거들라치면

애꿎은 시어머니부터 자 붙은 사람들 죄 호출하여

벌써 여러 날 날밤이다

애써 외면하며 어설픈 잠이 등 돌려 눕는다

그것만이 된서리 피하는 상책이다

아내는 벌써 삼 년이나 울음을 기록하고 있다

유난히 혹독한 올겨울

울음의 기록 더욱 선명할 것이다

아내의 나이테는

눈물 내려 빈 자궁 채우려는 가여운 기록이다

—「나이테전문

 

창포꽃 피니

무논에

청개구리 울음 와글하다

 

물꼬를 튼다

두렁 안에 고인 물을 뺀다

대항할 수 없는, 휩쓸려 가는, 세찬

장맛비가 온다

 

물꼬를 튼다

가슴을 비운다

장맛비 같은

그대 심장이 온다

—「심장이 온다전문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가족 구성원과 늙음을 정공법으로 노래하며 일상에서 자연으로, 그 주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자연 현상, 주변 환경 그리고 삶을 둘러싼 여러 징후와 기미에서 인간사의 이런저런 기복, 감정분출, 여러 층위의 각성을 얻는 것은 중요한 미덕이다. 또한 재치 있는 해학으로 시의 묘미를 더하는데 그 저변에는 인간, 인간관계, 세속의 우스꽝스러운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반전과 일탈의 웃음을 제공하고 있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달프고 곤궁한 삶의 압박은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의 위로와 거기서 우러나는 힘으로 해소된다고 믿는다. ‘밥심은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화목했던 가족의 밥상 둘레, 손 뻗으면 닿는 반찬처럼 손닿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위로다.

이 시집은 지난시절 우리 사회 전면에 깔려 있던 밥상의 둘레’, ‘가족의 품이라는 보편 정서를 잊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내 품안의 가족과 세상을 바라보는 넓고 깊은 시선을 다시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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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귓등으로 듣는 가랑비 소리·11

길을 놓고 소요하다·12

해안길서 별빛을 긷다·14

우두커니·16

연대봉서 먼눈팔다·18

발꿈치로 쓴 삶의 기록·19

심포 가는 길·20

윤슬·22

우선멈춤·24

지워진 발자국·25

바람의 경전·26

안개가 읽어주는 문장·27

칠족령 너머 길을 내다·28

바다 감옥·30

 

2

오래된 기억은 늙지 않는다·35

기억의 사각지대·36

나이테·38

나비 브로치·39

경로 관광·40

봄날은 간다·41

그늘 세 평·42

밥심·43

가쁜 숨결 뜸들이다·44

연애편지·45

핏빛으로 계절을 읽다·46

아버지 꽃그늘 밖으로·47

휘파람새가 불러주는 휘파람 소리·48

유통기간·49

 

3

그리움이 걸터앉은 낡은 빈자리·53

도깨비바늘·54

눈물의 경로·56

개기월식·57

심장이 온다·58

함박웃음·59

달빛 감옥·60

백수해안도로가 걸어놓은 풍경·61

통점·62

불꽃축제·63

해묵은 떨림이 물결치다·64

쉼표가 찍혀 있는 계절의 단상·65

소금쟁이 발짝·66

바람의 언덕·67

 

4

외로움 한 짐·71

폭설에 취하다·72

내 간을 맛보다·74

마중물·76

울음의 날목·77

목에 바치는 송시·78

늙은 취객·80

세밑가지·81

연당역 앞에서·82

그믐달을 읽는 법·83

산 그림자·84

억새·85

사시장춘·86

부전자전·88

단오풍정·90

바이러스·91

처용가·92

질료의 해석·93

비밀번호 그리고 열쇠·94

바람의 경작·96

 

해설이규식·97

시인의 말·119

 

시집 속의 시 한 편

 

 

행복요양원 담장 밑으로

꼬마전구처럼 환하게 밝힌 벚꽃

살랑대는 남실바람에 가볍게 흩어진다

흡사 어머니 기억처럼

사각지대는 잊어버린 공간이다

또록또록한 넋이 꽃잎처럼 흩어져

조각만 남은 공간

어머니 기억은 닳고 닳아

이승에서 아리도록 잊힌

단단한 이름들이 아프다

되새기는 정겨운 이름으로

산탄처럼 흩어지는 기억을 겨우 부축하며

희뿌연 사각지대 오늘도 닦는다

빵 조각 입에 물릴 때마다

화석된 자리마다 차지한

천진한 어머니 웃음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현듯 한 생각이 스쳐 간다

어쩌면 이승에서 가장 큰 벌은

돌배기로 되돌아간 해진 기억이라고

―「기억의 사각지대전문

 

시인의 말

 

거친 삶의 물결 속에

시를 쓰는 시간은 쉼표다

내 쉼표 속으로 기꺼이 스며들어

기억의 자리마다 채색한

아버지, 어머니, 아내

그리고 슬거운 그림자 하나

가슴속 살갑게 담아본다

 

2020년 초여름

김동준

 

4(약평)

 

문학이 그 시대가 감당하는 무게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에 게으른 사회는 불안하다. 그러므로 청년 시인이든 노년 시인이든 자신의 감성 영역이 닿는 범위에서 공동의 고민과 현안에 심미적인 탐구를 경주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중요해 보인다. 김동준 시인은 그런 의미에서 늙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본질과 속성을 규명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시도를 시로 표현하는 일에 성실하다. 시인으로서 이런 현안에 대하여 제시할 수 있는 생각이나 대안은 본질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문학과 시에서 그 시대의 고민과 과제를 끌어안고 함께 궁리해보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가족 구성원의 일상적 행동으로 조망해보는 늙음의 문제는 그래서 실물감을 높인다. 이렇다 할 효과적인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정황을 상정하며 더불어 공감하는 일 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_이규식(문학평론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김동준

대전에서 태어나 1998오늘의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줄기산행, 우기의 숲, 물의 집, 공양젖 한 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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