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버지의 외투 / 황보익 전경기대원 교수

백우기자 | 기사입력 2020/01/13 [21:46]

<산문> 아버지의 외투 / 황보익 전경기대원 교수

백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1/13 [21:46] | 조회수 : 15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산문>

                      아버지의 외투



내가 아버지를 아는 건, 
당신이 아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반항하는 아들 앞에서 고개를 떨 군 모습에서 발견한 이기!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다시 되돌리기 힘든 ~)

당연시 되던 큰소리 대신 두 어깨를 늘어뜨린 그 나약한 모습은 전에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지만,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보다 더 큰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들뜨게 했습니다. (아, 훗날에야 알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나를 품에서 놓아버렸다는 사실을... 아니. 그렇게 해서 제가 아버지에게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져버렸다는 것을~ )

나는 그날부터 당당해졌고,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강해질수록 아버지는 말이 없어졌고, 나는 이제야 정상이 회복되었다는 생각으로 만족했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나의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나의 거침없는 무례함에도 침묵했습니다. 
갈수록 아버지의 설교도 충고도 변명도 사라졌고, 나의 아버지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당신이 뿌린 씨를 거두며 당신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말과 태도로 아버지를 의식할 뿐, 실상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내 아버지니까 내가 잘 안다고 믿을 뿐입니다. 

내 기억속의 잔재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즐기듯,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인내를 강요”해온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온화한 얼굴로 친절을 베풀면서 가족들에게는 혹독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지 않고 가슴 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나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당신과 멀어지게 했습니다.
더우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빚어낸 나는 갈 길이 바쁜 아들이기에 - 내 눈에 비친 초라한 아버지의 고민, 世波(세파)에 직면할 아들을 가르쳐야하는 아버지의 책임감 같은 것에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