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를 달이다 / 홍계숙시인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19/06/05 [19:34]

꽃차를 달이다 / 홍계숙시인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19/06/05 [19:34] | 조회수 : 62

 

▲     © 한국낭송뉴스



꽃차를 달이다

 

 

노란 첫 꽃을 딴다

 

뒷산 생강나무가 가지에 여린 봄을 매달던 날

가파른 산비탈에 생강꽃처럼 매달려 보슬보슬 햇봄을 딴다

 

어린 것 망가질까 조심스레 떼어내다가

놓지 않으려 바짝 끌어안은 가지의 애착을 비틀어 따는 일이 참, 못 할 짓이라고

 

비탈은 날 떼어내려 자꾸만 미끄러진다

 

까슬한 꽃집에 쓸려 손가락 마디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 다 허물어질 때까지

한 열흘 더 지나 꽃 지고 봄도 차츰 말라가고

 

찻잔에 다시 노란 꽃이 핀다

 

말리고 덖은 꽃잎이 뜨겁게 몸을 풀 때 생생히 되살아나는 봄의 빛깔이야

 

생강나무 꽃차를 마시며

뜨거운 향기에 마른 꽃 같은 속이 다 풀리는데 젖은 꽃송이가 웃는다

 

물집 잡힌 어제의 일들 모두 봄의 일이라 말한다

 

 

 

 

 

 

 

 

 

 

반건조의 시간

 

 

바다를 벗고 바람을 입는다

 

삼척 정라항 해변 덕장, 아낙들 손끝이 바다의 배를 가른다 집어등 불빛에 눈먼 오징어들 뭍으로 나와 가장 먼저 두 눈을 버린다 칼날이 수직으로 외피를 가르면 바다는 속을 꺼내 놓는다 투명한 등뼈만은 버릴 수 없다 줄줄이 꼬챙이에 꿰어져 댓가지에 펼쳐진 젖은 발들이 허공에 올라 바람과 맞설 때, 웅크린 바다가 온몸을 활짝 펼친다 먹먹한 귀가 뻥 뚫리고 바람을 듣는 오징어들, 쫄깃한 시간을 향해 물기를 날려보낸다 아낙들 손길이 귀를 뒤집으면 바람은 방향을 바꾸어 꾸덕꾸덕 시간을 빚는다 축축한 시간을 반건조하고 피데기가 되어간다

 

아낙들 젖혀진 귀를 일으켜 세우고 눈먼 바다가 바람을 벗으면 마른 발들이 바다를 건너간다

 

 

 

 

 

 

 

 

 

 

 

 

 

홍계숙 시인

- 강원도 삼척 출생

- 2017 시와반시등단

- 시집 모과의 건축학, 2017, 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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