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의 안쪽 외 1편 / 홍계숙시인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19/06/05 [19:30]

복숭아의 안쪽 외 1편 / 홍계숙시인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19/06/05 [19:30] | 조회수 : 56

 

▲     © 한국낭송뉴스



복숭아의 안쪽 외 1편 

홍계숙

 

 

 

상자 속 표정이 달다

 

말간 복숭아, 쫄깃한 과일 망에 둘러싸인

낯빛이 환하다

 

깔끄러운 털은 살갗에 덧바른 그녀의 자존심,

 

가지를 떠난 순간 여문 기쁨은 단물로 넘치지만

그 기쁨의 안쪽은 쉽게 짓무른다

 

상처의 건너편은 분홍빛,

 

싱그럽기 위해 바닥을 위쪽으로 돌려놓지만

스친 상처에도 서서히 어두워지는

 

슬픔은 늘 뒤꿈치 근처에서 화끈거린다

 

상처를 도려내면 아직 단맛인 그녀,

변색된 우울을 감출 수 없다

 

뚝뚝 떨어지는 단물

머뭇거리면 금세 물러지는 기쁨이

말랑한 섬유질을 놓아버린다

 

그녀가 뱉어낸 슬픔은 어느 목울대에 걸려있을까

 

물기 가득한 걸음 안쪽, 단단한

복사뼈가 불긋하다

 

 

 

 

쇼핑back

 

홍계숙

 

 

그녀는 싱그러운 풀숲에서 눈이 멀죠

고릴라처럼 덩치가 크고 식욕이 강한,

그녀의 열대우림엔 하루에 두 번 달이 떠요

네 시의 낮달이 하얗게,

어둑한 열한 시에서 또 한 차례

하지만 곧 꺼지고 말죠

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서핑을 해요

보름달을 상향등으로 켜면

풀빛은 환해지고 회전마저 자유롭죠

가격은 장바구니 안에서 부풀어요

백화점 카드는 반액 할인의 모피코트,

쇼핑은 외로움이 할인되고 기쁨은 마일리지로 쌓여요

고릴라의 눈 속에 별이 지면

쇼핑백 속에 납작납작 두께를 상실한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빈 지갑엔 창백한 마이너스들이 울창해요

신용카드와 결별하면 떠나간 사랑이 돌아올까요

우울과 실연이 신상으로 입고되었다는 문자,

환불을 발송할 차례에요

외로운 고릴라, 유턴을 쇼핑백에 담고 싶은 건가요

기다란 팔의 든든한 백허그가 그리운 건가요

 

 

      

 

 

홍계숙

-2017 <시와반시> 등단

-시집 <모과의 건축학>, 2017, 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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