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해 / 김도경시인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19/06/05 [06:57] | 조회수 : 39

 

▲     © 한국낭송뉴스

 

 

 

견해

 

 

극적인 우연에 시나리오는 없다

주인공 노파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고

인파 속에서 행인으로 등장하는 나는

걸음 멈추고 노파를 주시한다

 

이런 날에는 우연히

태풍이 몰아치거나 한파가 기승을 부리거나

지금은 세밑, 동물병원 앞 보도블록

 

잦은 기침을 하는 노파가

냉기 위에 열쇠고리 꾸러미를 진열한다

 

극적인 우연에서

행인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지나친다

설맞이 장사에는 떡국 재료가 어울린다는 듯

노파가 맞이할 설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듯

네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쿨럭쿨럭 잦은 기침은 쉴 새 없고

곱은 손, 굽은 등 뒤로 보이는

 

'노견 전문 병원'

 

통유리에 붙은 글씨가 유독 환하다

 

노파와 노견 사이에서 서성이는데

해가 저문다

 

 

*플란다스의 개주인공 이름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요, 글쎄

 

 

배추 농사를 짓기로 했어요 좋은 씨와 흙 좋은 밭이 필요했어요 사실 배추 농사가 처음은 아니에요 텃밭에 심어본 적 있거든요 씨와 밭을 구하는 데 조언을 구했어요 믿음이 가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언니에게요. 좋아하면 믿음도 따라 생기니까요 믿음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요 언니의 도움으로 씨를 골랐어요 밭도 빌렸어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씨를 심었어요 땀을 많이 흘리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사람들은 나중에 할 말을 만들기 위해 고생을 사서 하기도 하죠 어느새 싹이 돋아났어요 그리고 속이 꽉 찬 김장배추로 거듭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태풍이 몰아쳤어요 하필 여름 다 지난가을에요 배추 농사는 소설과 달라서 절정에서 위기가 와요 배추밭에 물이 들었어요 흙탕물에 잠긴 배춧잎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말했어요

 

"난 농사 지으라고 한 적 없어. 결정은 네가 한 거야!"

 

태풍이 계절을 잊지 말았어야 해요 제철 모르는 날씨 때문에 소설과 현실을 혼동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요 허구에서 가능한 표현을 현실에서 했어요 배추 농사 다시 지을 거냐고요? 생각 중이에요 오만 원 권 지폐가 발행되면서부터 배추 이파리가 한물갔잖아요 마음 밭의 농사가 급하긴 한데요 선근종자를 어떻게 구해야 하나요?

 

 

 

 

 

 

약력 :

전남 영광 출생. 2010년 문예운동 신인상.

청하문학회 회원. 제주문인협회 회원.

시집 서랍에서 치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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