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했길래 죽고 싶어하는가? 아직도 자신만 보이는가?

함께하는 사회 송 세준

송세준칼럼 | 기사입력시간 : 2019/05/12 [20:48] | 조회수 : 6

▲     © 한국낭송뉴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살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다. 비록 그가 성자였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도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이 피해가길 원했고 함께 죽음을 맞이한 십자가상의 정치범들도 자신의 죽음을 부탁했던 것이다.

 

비록 필부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운명 앞에서 죽음이 필연이라도 자신의 생명을 흔적이라도 다음 세대에 남겨주길 원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된 것인지 자살자들도 계속 늘고 결혼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느는 것을 보게 된다. 40대를 넘긴 처녀 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60을 넘긴 이들도 있고 이혼한 사람들도 느는 형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더 살기 싫었을까? 왜 결혼이 하기 싫었을까? 그 무엇이 문제되기보다 구조적인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경제난을 핑계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고학력난이 더 심각하다. 인륜보다 더 문제되는 것이 배움의 오류이다. 교육의 기본은 학문이나 기교 기술이 아니라 사람됨의 문제인데 사람됨이라는 과제는 놓치고 성숙하면 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흔히 교육의 는 배움을 말하는 와 종교의 를 의미하는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배움이 학문으로만 가면 그 속에 담길 전통인 관습이 빠지면 사람됨에 한쪽 측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의 난국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적인 구조를 형성하는데 전자는 고려되지만 후자의 교는 없는 그런 세상이니 자신도 쉽게 버리는 자살이나 결혼을 회피하여 자녀를 갖기를 주저하는 것이리라.

 

현재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라는 존재는 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부모와 그 윗선의 조상들의 전통들이 유전으로 내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자신의 DNA에 그 조상의 인자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므로 내가 죽는다는 것은 그 조상을 함께 죽게 하는 것이고 결혼을 안 하고 자손을 못 만드는 것은 나만 아니라 내 조상의 핏줄도 끊어 놓게 되는 불경의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은 자신이 낳은 자식이라고 자녀와 함께 가족이 자살하는 사건도 나오고 있다. 이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자살하면서 살인자까지 되는 경우는 더욱 아니다. 그 자녀가 자라서 얼마든지 잘 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데 자신의 잘 못된 판단으로 실수하는 경우는 없었으면 한다.

 

현재 살아 있는 몸은 나만의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갖게 되면 어려운 일을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자살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웃은 조상이 어느 선에서 같은 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인류는 하나이지만 적게는 내 마을이며 내 고장이며 내 나라며 그 위에서 서로 나누며  어울려 살면 되는 데 홀로 성공하려니 더 힘든  꼴이다. 그래 풍토가 다른 곳에서 산 사람들도 서로 돕는 인류애가 어울림에 시작하는 단순한 가족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그리 순탄하고 편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외로워 찾아오는 이들이 당한 사회적인 피해 그리고 실직 이혼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은 그 어려우보다 먼저 말을 나눌 이들이 없는 경우가 다수이다. 그런데도 혼자 살며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부터 중, 노년까지 분들의 하소연을 하면서도 가족을 갖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본다

그래 다른 해결 방법이나 약이 없는 것린데 어쩌랴 말은 못 했지만 중매를 해서 가정을 갖게 하고 싶은 경우도 늘어지만 쉽게 잘 안 되는 것이 사람이 사는 것 같다. 이제 서로 어울림의 바른 길을 찾아 보자

 

그래 가정을 가지고 안정을 찾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귀띔을 해주고 자신을 바르게 알려주면 짝을 찾아 줄 생각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