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2천여 년 전에 예수가 십자가에

사랑이 담기지 않은 부활을 외치는 행동은 예수를 두번 죽이는 일입니다. 신앙인이

송세준기고 | 기사입력시간 : 2019/04/20 [12:24] | 조회수 : 41

 

▲     © 한국낭송뉴스



사랑이 담기지 않은 부활을 외치는 행동은 예수를 두번 죽이는 일입니다. 신앙인이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원수를 만들면 예수의 부활이 무슨의미가 있으리오?. 진정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한다면 적이 어디 있을까요? 올해는 갈등없이 서로 화해하고 타협하는 부활을 맞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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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2천여 년 전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날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오늘부터 금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부쩍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 대한 말씀으로 살자 라고하든지 말씀이라는 의미의 말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예수는 단순히 말을 한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이적을 행하시고 힘든 일을 하는 분을 위로하시고 약자들과 어울리는 일을 했지만 그의 행동의 중심은 너무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원수까지 그렇게 사랑하라고 한 말이 말씀의 시작이요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도 내 몸을 위하여 이웃을 증오하고 자신의 발전에 저해한다고 시샘하지나 않으셨는지요? 교회들도 이웃 교회를 시샘하고 다른 교단을 이단시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미워하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요? 예수의 말씀대로 살자고 하면서 그들의 지도자며 종교단체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희생당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예수와 너무 다른 행동을 그들의 말씀화한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원수까지 사랑한다면 지구촌 어디에 전쟁이 있을 거며 못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신의 이권이 침해된다고 생각하며 원수가 되고 마는 세상이 아니었던가요? 심지어는 친족도 이권으로 원수가 되는 세상이라면 이건 아닙니다.

 

우리는 구하면 준다하고 찾으면 찾을 수 있다는 생각만 전제한 기도를 합니다. 그런 기도와 행동에 사랑이 안 담긴다면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아직도 성령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면서 사랑을 담지 못합니까? 사랑을 담지 못하는 말은 이미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는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 많은 것들 사실 준비된 것도 줄 수 없는 것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요구하는 사람도 줄 사람도 사랑을 담기 시작하면 그 모든 곳에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있더이다.

 

그래요

사랑을 담지 못한 구제 사랑을 담지 못한 도움의 손길 그 일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더이다. 무언가 부족해도 사랑이 담긴 구제며 사랑이 담긴 손길은 실패해도 실패한 것이 아니요 새로운 사랑의 씨앗을 남긴 일입니다.

 

이웃을 위하여 약자들을 위하여 얹어놓은 잔치 상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이들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지 이것도 사랑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가 빚어내어 봅시다.

그것은

사랑의 본체요 말이 아니요 행동이니 말이 말씀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자신의 한 몸을 위하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고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원수를 만드는 일은 삼가는 부활을 맞이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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