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 / 이경림시인

벽솔시인 | 기사입력시간 : 2019/02/20 [22:08] | 조회수 : 60

 

▲     © 한국낭송뉴스



새재

 

이경림

 

 

칠흑의 새재를 넘어 보고야 알았다

 

한 재가 얼마나 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지

골짜기들은 또 얼마나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지

새들도 넘지 못한다는 재를 칭칭 감으며 낡은 승용차가

위태롭게 내려갈 때

골골의 어둠이 노랗게 언 달을 밀어 올리고

한 치 앞의 벼랑이 시간을 자꾸 헛바퀴 돌릴 때

우리는 생사의 경계 위에 선 아버지를 보았다

온 산에 슬픔이 달빛처럼 번지고 있었다

 

누구였는지 문득 넋 없는 사람처럼

재 아래 어른거리는 어린 날을 끄집어냈다

바람나 재 넘어간 옥자 얘기 구랑리에서 떼죽음 당한

어느 一家의 얘기,

육이오 때, 목숨 걸고 재를 넘겨준 가복의 애기며

난리통에 관문 속 어느 골짜기에 묻히신 증조부 얘기를

두서없이 중얼댔지만

두려움보다 재는 높고 슬픔보다 길이 더 휘어

끝내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러나 누군들 몰랐으리

그 모두 한 재가 토해낸 한숨이라는걸

그 숨으로 깊어진 골짜기라는걸

그것이 밀어올린 봉우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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