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와 경쟁 시키기보다 개인의 독특한 특성을

아무리 부족하고 약한 사람이라도 그의 생은 교육과 삶의 기초를 찾는 사색 나의 친구여 송세준

한명희시인 | 기사입력시간 : 2019/01/09 [01:21] | 조회수 : 60

 

▲     © 한명희



▲     ©한명희

 

누가 누구와 경쟁 시키기보다 개인의 독특한 특성을 살린다면 개인도 인류도 또 하나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은 그가 원하는대로 다듬고 보살피는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누구나 우열이며 가감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 삶의 기초를 찾는 사색

아무리 부족하고 약한 사람이라도 그의 생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 독특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무엇이 더 낫고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우열을 평가한다. 이는

 

 

당치 않은 인간의 오류이다.

 

 

이 평가에 더 나은 인간군으로 나서게 하려고 사람을 평가하고 그 평가에 뒤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입시경쟁도 시키고 교육을 시키면서 사람의 줄을 세운다. 이런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한 일을 잘못하지만 출세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든지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좋은 조건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사람들도 본다. 그 우위에 든 사람은 그 평가기준에 적합하다는 것만으로 공평하다고 한다. 이 기준이 바른 것일까?

 

사람이란 생명체에는 사실 우열관계가 없이 존엄한 것이다. 그 존엄의 우열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가장 큰 범죄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람다움의 의미를 다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사는 구조를 다시 설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떤 질서에 적합하다고 우수한 인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실패가 바로 성공의 열쇠였고 어떤 분은 성공이 바로 실패의 중간인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됨을 다시 살펴야 한다.

사실 더 나은 상태의 답은 본인의 정답이지 모두의 오답일 수 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수인자가 다수이고 열성인자가 소수 일 경우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수하다는 이들이 전혀 볼 수 없는 세계를 부족한 사람이 보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경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더 고급이라는 일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자기 결정대로 교육을 받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우수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수익이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의 가치를 동등하게 보는 방법을 찾는다면 세상은 또 다시 비약하게 되고 곧 인간에게 신성이 부여 될 것이다.

 

바로 인간은 스스로의 제 눈으로 판단하여 유일한 짝을 찾는다 그런데 이를 제 3의 눈으로 평가하기보다 그 스스로 판단하면 제일 행복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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