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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김박은경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1/02/18 [22:45]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김박은경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1/02/18 [22:45] | 조회수 : 40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문단소식〕“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김박은경 시인과의 인터뷰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없는 거야 알려주고 싶지 않아 주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고통일 거야 내일에게도, 가장 안쪽에 먼저 죽은 것이 있다 죽은 것으로 가득해 빈틈이 없다 더이상 살 수 있는 것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이 없다 구멍마다 외눈박이 아이들 서글픈 꿈들 믿을 수 없을 만치 작고 동그란 어깨의 형태 그럼에도 속절없이 다녀가다니 좁은 방 벽에 늘어가는 못 자국처럼 기웃기웃 안부라도 전하는 건가 빛을 향하는 것이 목숨을 거는 일이라 천지간 꽃향에 취해 걷다보면 널브러진 꽃가지들이 수습 못한 팔다리 같아

                                - 시인의 시「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중에서

 

 

 

 

 

 

 김박은경, 독특한 이름의 시인이다. 나는 시인의 이름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있다. 너무 시적인 이름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김박은경, 아마 부모님의 성을 따온 이름이 아닐까 싶은, ! 신선하고 좋은데, 이런 느낌이었다. 왠지 삼박한 시를 쓸 것만 같은 시인, 시인은 숙명여대, 홍익대 산미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시와 반시》로 등단했다. 짧은 보브컷 헤어가 잘 어울리는 귀염성 있는 용모의 시인, 시인은 시「신라여관」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신라여관

   

잊어버리고 사라지고 달아나고 키스하고 안고 웃고 드디어 처음 바라보는 우연한 연인들은 어때 얼마나 빛나는 유리창이든 부서지고 깨지고 떨어지는 머리통을 잡아 흔들며 끝나는 건 어때 깨져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끝이 나서 깨지는 것도 아니지만 네가 고른 그 노래는 끝났다, 사랑 얘기 좀 그만해 파탄은 불행처럼 흔적을 남기지 적어도 불행은 아니라는 거야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시가 있다 그때 그 시를 써서 좋았지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시가 있다는 시를 지금 써야지 이 시도 다시는 쓸 수 없겠지 다시 쓸 수 없는 시는 모든 시는 모두 이미 쓴 시 같아 후회도 고백도 사랑도 아, 그런 이야기 안 하기로 했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뭐니 그게 악몽이 될 거야 자꾸 웃고 떠드는 건 두렵기 때문 달리고 따라가며 가지 마, 그런 말을 하는 건 돌아오기 때문 징글징글 소란스럽게 운명이 찾아오기 때문 절대 말없이 사라지지 마, 말하면 그 일을 너는 기어이 하겠지 벌어지고 버려지다니 어디선가 언젠가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미 되었고

 

이 도시에는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차갑게 굳은 그날의 손처럼 부끄러워도 가릴 수 없는 날이 올 텐데 가능한 다음이 없어서 눈을 감는 걸까, 머리와 두 팔이 없는 자를 보았지 머리는 목과 이어지니까 목은 어깨와 이어지니까 어깨는 두 팔과 이어지니까 그렇게 이어지다 보면 반가(半跏)를 지나 다섯 발가락을 지나 연꽃까지 사유하게 될 텐데 찾지 않으니 잃지 않았다는 건가 절절한 부재를 향해 절을 하다니 무엇을 무엇에게 어떻게 간신히 닿는다 해도 차곡차곡, 무덤 밑의 일이 되겠지

 

어디든 주목이 닿는 곳에 화마와 악귀를 막는 짐승들을 그려 넣는다 자꾸 더 그려야 한다 점점 더 검은 이마와 검은 눈과 검은 입술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을 믿어 볼까 그게 당신을 믿는 것보다 쉬울 텐데 주어가 사라진 곡비처럼 살기 위해 울고불고 이런 악착은 무엇으로 재우나 채우나 여기저기 부산한 신은 어째서 인간의 형상일까 아니 인간은 어째서 신의 형상인가 더듬더듬 아무 것도 없는데 형상이라는 말을 써도 되나

 

안고 놀던 개가 사내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사내는 품을 파고들고 사내를 떼어내는데 개가 나가떨어지는데 물고 놓지 않는 개의 머리는 내 것 같았지 이음매도 없이 맞춤하다니 원래 그 개의 것이었나 알 수 없어서 슬픈데 지겨운 것처럼 보이겠지 무서운데 화난 것처럼 보이겠지 지쳤는데 겸손한 것처럼 보이겠지 보이고 싶지 않아 숨으면 더욱 잘 보이게 되겠지 기어코 헤집고 뒤집고 다시 또다시 들어 올리겠지

 

못을 쓰지 않고 지은 집을 보았다 격자와 요철로 저마다 단단히 안고 있었는데 둥근 유해처럼 정확히 이 목과 저 팔이 이 목덜미와 저 어깨가 이 입술과 저 뺨이 한 채를 이루었는데 영원을 위해 영혼을 위해 숨이 필요해 들이쉬고 내쉬고 순서를 지켜야 하는데 내쉬며 나왔으니 들이쉬며 나가려고 숨이 자꾸 터지는데 서로의 귀목(鬼目)을 알아볼 때 끝은 가까워진다는 건데 믿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건데

 

석조 안에 고인 물 위에 고인 햇살을 바라보며 그늘진 글자들을 짚을 때 그날의 돌덩이 그날의 빗물 그날의 햇살 그러나 언제나 더 오래된 그날이 있어서 이렇게 쓰다듬는 시간은 더 오래된 시간을 쓰다듬어서 우리는 계단처럼 이어지며 휘어지며 까마득해 허공에 누각을 띄우며 어제를 향해 내일을 되풀이하는데

 

살구, 살구가 떨어진다 드디어 내 몸은 살구밭이 되겠구나 돌무더기 위로 흙무더기 위로 연분홍 꽃이 피겠지 주황의 속살이 차오르겠지 살구씨 속으로 살구씨들이 어김없이 이어지겠지 다닥다닥 살구를 매단 두 팔이 무거워 이마를 가려주는 그늘은 좁고 뾰족한 이파리들은 아아, 부끄러워서 손을 아주 많이 만들겠지 어느 손은 머리 없는 불상의 목걸이를 쥐어뜯겠지 날뛰는 개를 쓰다듬겠지 미친 사내를 안아주겠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살구 위로 쏟아지는 볕 아래로 살구나무는 묵묵부답 다만 행인(杏仁)에 독이 있어 개를 죽인다 하여 살구(殺狗)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허기진 개가 몹시 짖겠지

 

 

                                        - 2021, 신작시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시가 있다 그때 그 시를 써서 좋았지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시가 있다는 시를 지금 써야지 이 시도 다시는 쓸 수 없겠지 다시 쓸 수 없는 시는 모든 시는 모두 이미 쓴 시 같”. “어디선가 언젠가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미 되었고” 나도 그랬다. 시인처럼 언제나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마침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주어가 사라진 곡비처럼 살기 위해 울고불고 이런 악착은 무엇으로 재우나 채우나 여기저기 부산한 신은 어째서 인간의 형상일까 아니 인간은 어째서 신의 형상인가 더듬더듬 아무 것도 없는데 형상이라는 말을 써도 되나” 시인의 시에서처럼 “주어가 사라진 곡비처럼 살기 위해 울고불고” , “계단처럼 이어지며 휘어지며 까마득해 허공에 누각을 띄우며 어제를 향해 내일을 되풀이하는” 시인의 행보를 낱낱이 따라가 보기로 한다.

 

 

 

《대표시》

우주 마루

 

비틀스가 쏘아 올린

Across the Universe

듣다 생각하다 잠든 밤,

이 떨림이 북극성까지 닿으려면

431광년이나 걸린다는데

 

아이 옆에서 쪽잠든 채 가위 눌릴 때  

별들이 내달리는 소릴 낼 때

시커먼 별의 죽음 속으로 뛰어들 때  

괜찮아요 괜찮아, 놀라 깬 아이가

내 손을 잡아 주는데

이건 오래 전의 엄마가

마루를 건너와 해 주던 말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해도

 

가 닿을 수 없는 경계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 친다 해도

가 닿을 수밖에 없는 경계

 

어떤 마루는 북극성보다 더 먼데

아이는 어쩌면 이리도 푸르고 무성할까

 

아이의 고른 숨소리와 없는 엄마가 함께 하는

괜찮아요 괜찮아,

이 따스한

 

                    - 시집『 중독 』중에서

 

 

시태양시(視太陽時)

 

상가(喪家)에서 돌아오는 아침은 모두 햇것

이상하게 밝은 빛에 눈도 못 감고 뜨거워

너무 커서 듣지 못했던 태양의 울음소리

터지고 싶지만 끝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일생의 열감에 아찔하여 젖이 홀로 부풀 때

 

말갛고 미지근한 얼룩으로 지어지는 얼굴

낯설어 낯익은 입술에 젖을 물릴 때

다시 또 가팔라지는 울음

누가 더 가까운지 아까운지 슬픈지 대 보며

각자의 조각들로 마지막을 그릴 때

 

시간은 시간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눈이 밝은 짐승은 밝은 채로

눈이 어두운 짐승은 어두운 채로

옳다 그래도 결구가 텅 비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무섭기 때문

 

한 입 가득 젖을 물고 한 손으로 맞은 편 젖을 움켜쥔

아이의 잇몸 가득 솟아오르는 단단한 이()

흰 뺨 가득 차오르는 푸른 수염이

태양의 두개(頭蓋)였으니

 

뜨거워라, 놀란 숨이 툭 터질 때

 

이상하다 뿌연 이 안은 어디지

지금은 대체 언제지

 

                     - 시집『 중독 』중에서

 

 

황홀은 그 다음

 

 압화가 있다 얇다 작다 길다 검다 희다 언뜻언뜻 붉은 씨방이 보인다 씨앗들이 보인다 기억은 만개의 순간을 놓지 않는다 저 꽃가지쯤에 앉았겠지 피어나기 시작한 새와 어지러이 날아가는 꽃송이라니 황홀이라고 바로 지금이라고 더욱 눈 감지 않고 날지 않으며 허기도 연명도 없다고 충분히 높고 깊어 더 이상 향할 곳이 없다고 완벽이라고 최후를 울었겠지 그대로 영원이 되었을 텐데,

 

 여기 한 송이 길조가 피어 무구한 낙화들을 예언할 때 오월은 다음을 향해 저녁은 다음을 향해 사라지는 것은 더욱 사라지고 유한은 무한은 서로의 다음이 된다 새였던 것이 꽃이었던 것이 그것이었던 것이 아닌 것이 된다 희박해진다 대기는 온갖 것들로 가득해 온 사방 그것이 아닌 것이 없어 나는 새 나는 꽃 나는 불 나는 밤 나는 날고 나는 피어나고 나는 뜨겁고 나는 어둡다

 

 나를 위해 죽고 싶은 사람을 위해 죽고 싶어 당신도 같다면 우리는 한통속, 분별이 없어 똑같은 고백과 이별이 되풀이된다 한다 실수와 실패를 되풀이한다 능동과 피동을 뒤섞는다 뒤섞인다 어지러워 서둘러 다음이 되고 싶어 가능의 불가능의 그 다음이 되고 싶어 이상한 결론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 더 멀리 있는 별이 더 빨리 사라진다고 했지 우리는 그것을 재촉하고 어디서든 새는 최선을 울고 황홀은

 

                                -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중에서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진에서 보았던 대로 미인이세요.(웃음) 2002년《시와 반시》「감전」으로 등단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혹독한 습작시절을 통과하여 문단에 데뷔를 합니다. 시인님의 습작시절은 어떠하였을까요? 시인으로의 마중물은 무엇이었을까요?

 

김박 : 안녕하세요! 떨리는데 안 떨리는 척 하려니 더 떨리네요. 그냥 떨며 더듬거려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어도 아니고 인터뷰이라니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오래 전의 등단도 잘 믿겨지지 않아요. 뭣도 모르는 채 당선이 되었는데 어쩌면 뭣도 몰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도 같습니다.

 

 마중물이라면 그냥 그 시간의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비혼주의자였으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고,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회사는 그만두어야 했고, 아는 사람도 없는 지방에 살게 되었어요. 원치 않던 삶에, 아니 예상치 못했던 삶에 절망하며 울며 지내다가 일기를 쓰다가 시를 쓰게 되었어요.  

 등단작이었던 시 「감전」도 제 친척 분에게 일어난 사건을 썼어요. 지금 다시 보니 첫 시집의 시들은 제 자신과 주변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네요. 혼자 아프다고 하고 혼자 힘들다고 하고 혼자 울고불고 그랬으니까요. 누군가 너 시 안 썼으면 그 마음들을 다 어떻게 풀었을까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시가 제게 약이었고 상담 선생님이었고 돌아가신 엄마가 아니었을까요? 습작은 등단 후부터 시작되었고요. 사실 지금도 습작 중입니다.

 

 

 

감전    

 

목련은 이상하지요  

봄 빛 속 바람에 슬쩍 손을 흔들다가  

햇살을 조근 조근 씹듯 삼키다가  

반갑다 봄에 흰 손 내밀어 악수 나누다가                 

손가락까지 뚜욱 뚝 떨구는데요  

온 손가락들 분주히 낙화하는 사이  

다보록하게 초록 새 뼈대가 수()인사 청하는데요  

이제 마흔 불혹일 김 씨는 이상하지요                 

봄 허공에 덤덤할 만도 할 텐데  

전신주 위에서 아찔하였다지요                 

봄의 극광을 잠시 보곤 찬란히 담금질  

두 손이 봄 빛 속으로 떨어지는 사이                 

재봉 돌리는 아내는 진 재킷 청청한 밑단을 눌러 박으며                 

다음 달 임대 아파트 이삿날에 흥겨워 좋다 좋아                 

전동 재봉을 타고 달렸는데요

갑자기 바늘 부러지고 달려간 병원서는

그 남자 두 팔을 마름질하고 재단하느라 분주 하였다지요                 

새로 짓는 남편의 옷은 몸통만 기우뚱  

텅 빈 두 소매 속 봄은 이미 파장이었는데요  

왕겨로 가득 채운 보상금 봉투 속  

꽃도 없이 전지 당한 가지가 비릿한데요  

잠시 눈 먼 봄의 아슬 한 유혹치고는

발광할 만하지 않겠어요  

초록 뼈대조차 솟아오르지 않는 걸요

 

                       - 2002년《시와 반시》등단작품

 

 

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당신 생각을 또 했지 당신이 점점 커졌지 방문을 열 수 없었지 팔꿈치가 문에 걸릴까 봐 정수리가 전등에 닿을까 봐 창을 열 수 없었지 누군가 알아 챌까 봐 그 틈에 창밖으로 당신 발가락이라도 빠져 나갈까 봐 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지 당신은 자꾸 커졌지 갑갑하게 숨을 쉬기 시작했지 그만 커지라고 소리쳤지만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았지 내 손짓도 보이지 않았지

 

  지금 누가 이 생각을 하는 걸까 당신 생각은 절대 않겠다는 내 속의 무엇이 생각을 하게 하는 걸까 왜 날개에 올빼미 눈 모양을 그리고 뭔가 보는 척 어딘가로 날아갈 수 있는 척하고 있는 걸까 마음은 침봉에 꽂힌 것처럼 옴짝달싹도 못하면서 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이러다가는 모든 게 다 끝장일 거라는 생각 속에 당신을 또 집어넣고 있는 걸까

 

  식물 조각가 스다 요시히로는 스스로에게 물었지 목련나무를 깎아 나팔꽃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목련인가 나팔꽃인가 당신을 내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당신일까 나일까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 “식물 조각가 스다 요시히로는 스스로에게 물었지 목련나무를 깎아 나팔꽃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목련인가 나팔꽃인가 당신을 내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당신일까 나일까”

시를 읽으면서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듯한 아픔과 젊은 날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잠 못이루며 설레였던 짝사랑의 한때, 모든 당신은 내 마음으로 만든 당신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쉬 실망하고 상처받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지금의 세계는 결국 우리가 만든 것이므로 세계의 온갖 모순 또한 세계의 잘못만은 아니겠지요. 그러므로 세계가 곧 나이고 나의 갖은 모순이 세계이겠지요.

 

김박 : ‘세계가 곧 나이고 나의 갖은 모순이 세계!’ 정말 그러네요. 이 시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거짓말까지는 아니지만 A를 말하는 방식으로 B를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랑을 말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되풀이 되는 상념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인과가 뒤집히는 일상의 고리에 대해서요. 사랑 운운 하면서 달콤하게 느끼도록 의도한 부분은 당의정이라고 보심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처럼 의도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시는 독자의 몫이니까요. 요즘은 인과가 다른 것 같아요. 뒤집힌다는 개념이 없는 현실 같아요. 리버서블 코트처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느껴요. 모순이 당연이라고나 할까요. 목련나무도 나팔꽃도 모두 그것이다, 하고 싶어요. 내 마음도 당신도 모두 그것이다, 하고 싶어요. 이런 식으로 저는 또 다른 생각 속에 갇히는 중인지도 모르겠어요.

 

 

 

 

롤리 팝 롤리 팝, 마미

       

  신발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있었던 것, 다 똑같은가 봐 가버리니 있었다는 것 기억하잖아 내가 정신이 없나요? 그럼 그게 있었다는 말이네 내 정신을 봤어요? 그 사람은 봤어요? 왜 꽃을 두고 간 사람 있잖아 마미 내가 사랑하는

  - 꽃을 샀으면 꽃값을 내야지 꽃을 두고 간다는 게 말이 돼?

 

  바람이 부나요? 뺨에 바람이 묻어 있어 마미, 금빛 사자 봤어요? 마지막엔 꼭 그게 보여요 등 뒤에 서서 나를 내려다봐요 롤리 팝 롤리 팝 노랫소리 들려요 금빛 수염이 휘날리죠  금방 내 차례예요 알 수 있어요, 롤리 팝 하나만 사주세요 그걸 먹으면 뭔가 기옥날 것만 같아

  - 안 돼 그런 건 먹일 수 없다 넌 무공해 마리아, 순결한 네 혀를 더럽힐 수는 없어

 

 그가 나를 얼마나 달콤하게 핥는지 마미는 모르는가 봐 내 입술과 눈이 귀와 콧잔등이 얼마나 달콤한 줄 모르는가 봐 롤리 팝처럼 달콤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분홍색 운동화가 사라졌어 신주머니는 텅 비었어요 실내화 신고 찾으러 다녔어요 바람 부는 학교 앞에서 운동화 본 적 있어요? 혼자 굴러다니는 운동화 본 적 있어요?

  - 세상을 구원하는 거야 너는 세상의 소금이지 설탕, 다른 건 꿈꿀 필요도 없다

 

  오늘은 신발을 꼭 찾고 싶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신발만 찾아갖고 올게 다른 데는 가지 않을게 금빛 사자가 노래를 불러도 따라 가지 않을게요 그러니 롤리 팝 하나만 사주세요 바람 부는 학교를 찾아야 해요 그 앞이었거든, 손잡고 걷던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지는 해에는 금빛 갈기가 달려 있어요 내 손은 롤리 팝 녹아 찐득한데 바람이 자꾸 불어요 나는 점점 더 졸립고 노래는 길어요 롤리 팝 롤리 팝 같은 가사만 되풀이해요 롤리 팝은 분홍 운동화의 색 운동화는 딸기 맛 롤리 팝의 색, 집으로 가는 길이 보이질 않아요 졸려요 마미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검은 새를 냉장고에 넣는다

 

  검은 새를 냉장고에 넣는다 새는 이 속에 있다 문의 저쪽에 있는 새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아무것도 그것을 해치지 않는다 길들게 될 것이다 -길들게 될까? 문 닫으며 새를 잊는다 잊기 위해 잠시 새를 생각한다 새의 날개 씹는 상상 그것은 온통 검다 잇새에 검은 깃털 목구멍에도 검은 깃털, 기침 터진다 기침은 진실하다 새가 있었다는 사실을 내 일부는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 아직은 그렇다는 것 그래도 문을 열지 않는다 내 일부는 벌써 새를 잊기 시작한다 -냉장고 속에 새가 있을 리가 하지만 진짜로 그렇다면 새는 냉장고 속을 가득 채우겠지 그 속은 새의 절대 영역, 무엇으로 새는 허공에 표식을 할까 -새 따위가 있을 리가 하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그 새는 지루할지도, 지루해진 새는 뭘 할까 보이지 않는 날개로 묘기를 부릴지도 걸을지도 앉을지도 누워볼지도 쓰러져볼지도, 모른다 끝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새 따위 이 속에 있을 게 뭐람 지금 이 속에 새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문을 열지 않는 한 새는 깜깜하고 싱싱하겠지 내가 혼돈으로 문을 연다면 새는 순간 환하게 뭉크러지기 시작하겠지 -그런데 이 속에 새가 들어 있기는 할까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 “검은 새를 냉장고에 넣는다”는 의미는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서 상하기 쉬운 이상과 꿈을 냉장고에 보관한다는 의미로 읽어도 될까요? 그런데 왜 검은 새일까요?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불온이 되는 절망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새는 파랑이나 초록이 아니라 검은 사제복을 입은 것일까요?

 

김박 :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상과 꿈을 냉장고처럼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곳에 품고 있어요. 불안하고 두려워서 의심하면서 바로 뭘 해볼 엄두조차 못 내는 거죠. 하지만 뭔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 것 같아요. 뭔가를 바로 ‘하는’ 사람이라야 뭔가를 해내는 사람이 되겠지요. 상하고 망가지더라도 저지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일 텐데 그 말도 맞아요.

 검은 새는, 제가 검정색을 좋아해서요.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새가, 온갖 색이 가득한 자연 속의 새가 검정색이라는 게 너무 매혹적이지 않은가요. 출근하며 보면 까치들이 나무 한 그루씩 선점하고 앉아서 울어요. 그게 ‘트리 폴링’이라고, 이 나무가 내 것이다, 하는 선언이라지요. 까마귀와 까치들이 자리싸움을 하는 장면도 많이 봅니다. 한 마리 까마귀를 향해 여러 마리의 까치들이 달려들기도 해요. 크기로 보면 까마귀가 훨씬 큰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서로를 상하게 할 정도로 싸우지는 않고 날개를 한껏 펼쳐서 퍼덕대면서 겁을 줍니다.  그러는 와중에 깃털들이 하늘하늘 떨어지기도 하고요. 그걸 바라보다가 시간이 후딱 지나버려서 뛰어가곤 합니다.

 이 시의 시작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왔어요. 왜 슈뢰딩거가 했다는 사고 실험 있잖아요. 상자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독극물이 든 유리병도 있다. 유리병 앞에는 망치가 있다, 방사성 원소가 담긴 병도 있다. 이 원소가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면 그걸 감지한 장치가 스위치를 작동시켜서 망치가 유리병을 깨뜨리면 독극물이 퍼져서 고양이가 죽는다. 그런데 방사성 원소가 한 시간 안에 붕괴할 확률은 50%. 그렇다면 한 시간이 지났을 때 고양이는 살아 있을 것인가, 죽어 있을 것인가. 이것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고안한 것이라고 해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존재로 보는 거죠.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자꾸 궁금해져요. 물리학, 역사, 우주, 식물학, 언어학, 그런 것들이 재미있습니다. 잡학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기름진 화요일

 

마침내의 일당을 받는 손은 파들거리고

앞발톱으론 봉투를 움켜쥐고 남은 발톱은 구두를 쥐어뜯고

정육점 문 닫기 전 오늘치 먹이를 구한 그는

웃는 척을 지운 채 송곳니로 검은 봉지를 찢고

상해가는 살점을 급히 삼키고

혀로 입가의 핏물을 핥고

전신을 뒤덮은 털들은

모낭 깊숙한 치욕을 양분 삼아 또 자라고

더러운 창에 걸린 둥근 달을 보며 우우우

어둠을 악물은 창틀도 우우우

물탱크 위의 노란 코끼리

보일러실의 시커먼 하마

머리에 조화를 꽂은 인형들의 대 합창

언덕마다 떠있는 얼룩진 달들의 그림자

백천 만억 개 음성들의 우우우

그런데 너는,

사자가 아니었니?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 자본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우리는 “우우우” 얼룩진 달을 보며 속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원래의 야성을 잃어버린 잘 길들여진 인간으로서 살아남았고 우리의 야성은 늑대인간처럼 보름달이 뜨면 가끔 영화처럼 발현될 뿐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시인님의 첫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의 시들은 다양한 의미로 읽을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되어 있어서 독자들에게는 좋은 텍스트의, 충분히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월요일도 아니고 수요일도 아니고 왜 화요일일까요?

 

 

김박 : 덕분에 첫 시집을 돌아보네요. 고맙습니다. 시집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의 것처럼 느껴져요.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것일까요. 하하. 이 시의 화요일은 ‘재의 수요일’ 전야로 생각했어요.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 날이요. 가톨릭 등에서 수요일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의식을 행한다는 글을 읽었어요.

 그리고 월요일은 시작하는 날이잖아요. 화요일은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는 날이지요. 주말까지는 머니까 힘든 시간이 더 많이 남아있고요. 프리랜서로 일하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 지불 날짜를 자꾸 미룰 때 화가 났던 감정을 담아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받기는 받지만 마음은 다치고, 화도 나고 그러는 거죠. 먹고 산다는 게 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아주 부자가 되고 싶지만 부자가 되면 시가 공중에 붕 뜰 것도 같네요. 시와 부자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부자 보다는 시가 좋은데, 이거 아직 정신 못 차린 것도 같네요.

 제가 사는 곳이 인천인데요. 인천에 오면 많이들 가시는 차이나타운이 있어요. 청일조계지도 있고,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도 있고, 구락부도 있고 짜장면 박물관도 있는데요. 시공간이 뒤섞인 매혹적인 장소여서 좋아해요. 거길 몇 번 가다 보니 그 시대 작가들의 글이나, 그 시대 사람들의 사진을 찾아보게 되지요. 그들도 지금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다들 힘들고, 힘든 사람들은 더 힘들게 되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자본을 독식하고 배를 불리지요.

 불합리함은 모든 시대 사람들의 디폴트값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글 쓰는 사람들은 그걸로 위로를 받으니 다행이지요. 악기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뭔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 꼭 필요합니다. 구급약처럼요.

 

 

 

 

꿈속에서 꿈을 품고

꿈속의 사람이 또 남에게 꿈꾼 바를 풀이하니

거듭거듭 꿈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환인 줄 모르거니

- 김소행, <삼한습유>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 24

 

사형집행인의 임무는 사형

세일즈맨의 임무는 세일즈

그녀의 임무는 매춘

 

 

그가 잘해야 하는 일은 사형

그는 세일즈

그녀는 매춘

 

그가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은 사형

그는 세일즈

그녀는 매춘

 

그걸 하고 돌아오면 침대 밖으로 떨어진 손이 사체의 그것 같다

그걸 하고 돌아오면 벗은 아내가 팔아야 할 상품 같다

그걸 하고 돌아오면 수저를 들 때마다 다리가 자꾸 벌어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그걸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전부를 걸고 또 기를 써야 한다

문이 닫힌다, 열두 시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시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지상에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들은 저마다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감당해야 할 무게를 이처럼 담담하게 그러나 처연하게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습니다. 많은 직업 중에서 사형집행인과 세일즈맨과 창녀를 지목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김박 :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중 베스트가 아닐까 싶었어요. 물론 원해서 잘하는 세일즈맨 분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을 생각했고요. 시작은 서대문형무소 갔다가 떠올렸던 것 같아요. 형장 앞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었어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남쪽 구석에 있는 그 나무는 독립투사들의 마지막 생을 묵묵히 지켜보았다고 해요. 1923년 일제가 형무소에 사형장을 지을 때 심었다고 하고요. 태풍에 쓰러졌다는 기사를 작년 말에 보았어요.

 그 미루나무는 원래 두 그루가 담장의 안과 밖에 같은 날 나란히 심어졌는데 쓰러진 나무는 바깥쪽 나무였고, 안쪽 나무는 이미 2017년에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안쪽 나무가 바깥 나무에 비해 높이가 절반도 되지 않고 초라했다는데 그 이유가 사형장에서 억울하게 숨진 독립투사들의 한이 서려 있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었어요. 왜 아니겠어요. 그렇게 곁에 있는 나무도 힘이 드는 일을 사람이 한다는 게 참담하게 느껴졌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사형 집행의 일을 했겠지요. 몸을 파는 일도 물건을 파는 일도 스스로를 탕진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모두가 스스로를 탕진하기는 하지만 덜 처참하고 더 처참한 차이는 극명히 있으니까요.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먹다

 

일념이다. 분주히 걸음을 옮긴다. 창공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다. 날개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다. 이곳에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애인을 버리는 일도, 신념을 버리는 일도, 조국을 버리는 일도 그 때문이다.

 

오체투지의 자세로, 아니 사체투지의 자세로 머리를 낮게 숙인다. 먹는다. 붉은 두 눈이 더 붉어지도록 먹는다. 먹는다. 단단한 아스팔트에 구멍 뚫리도록 먹는다. 먹는다. 속을 채우려면 멀었다. 언제나 배고프다. 점점 더 고프다.

 

                          - 시인의 사진 산문집 『홀림증』중에서

 

 

 

붉은 흙 검은 나무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마세요 굶주려 죽을 지경이 되면 어미 가까이 오게 하세요 젖 냄새를 맡은 그것이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칠 때 갈급으로 헐거워진 엄지를 자르세요 공포의 임계가 제 속을 욱여서 만드는 부적이라면 무엇이든 빌 수 있다잖아요 보세요 그 손가락을 만들기 위해 부들부들 벌레처럼 누워 떨며 두 다리로 원망을 앙 물고 있는 자들의 공포, 보세요 나뭇가지 위로 잘린 엄지들 능금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있잖아요 그걸 따먹으려고 새들이 새까많게 몰려 오잖아요 새에 가려지는 해는 보이지도 않잖아요 빈 소매 끝으로 붉은 예언들 뚝뚝 떨어지고 부푼 젖은 옷섶을 다 적시고 죽은 아이들은 틈새마다 쌓여가잖아요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 첫 시집 도처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직한 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첫 시집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가 “아기”의 등장인데요.‎ 인용한 위의 시에서 아기와 엄지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김박 : 실제로 저런 부적을 만들고 선호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런 나라, 그런 사람, 그런 물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무서운 일이지요. 왜 행운을 준다고 달고 다니는 토끼 꼬리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걸 위해 죽어갔을 짐승들을 생각하면...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 맞아요.

 아이는 미래 그 자체일 텐데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뿐이라면, 그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면 어떻게 하지요? 다 잘 될 거다, 결국에는 괜찮아질 거다, 그런 소리가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원할 수는 없는 일 같은데 제가 할 수 없다고 너도 할 수 없을 거라고 할 수도 없고요. 너는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읏쌰읏쌰 해줘야 할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스스로의 절망을 토로한 시입니다.

 붉은 흙이라는 건 희생과 상실이지요. 누군가의 희생과 상실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검은 나무라면 생명이 아니라 죽음 아닐까 싶었어요. 엄지라면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가장 소중한 것, 그런 느낌입니다. 아기들이 엄지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게 아주 소중하고 맛있는 것만 같아서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할 말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는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이들이며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요. 버려지는 아이들은 또 어떻고요. 우리는 왜 이토록 잔인한 걸까요.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걸까요. 어른이 사라진 시대의 어른이라는 게 부끄럽습니다. 아파트 어느 층에선가 아이가 울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길게 우는 일이 생기면 신고하려고 했는데 아직 그런 적은 없어서 다행이고요.

 

 

이 꽃은 지지 않는 거짓말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네

 

금간 알을 달고 앉은 새는 마리아를 보네

줄지 않는 젖병 식어 굳는 분유

부서진 채 굳어 썩는 새의 알

 

오래전에 이미 깨진 것들

 

그것은 그의 얼굴 눈동자 웃는 입모양 다정한 말

그를 안던 마리아의 둥근 가슴과 팔

마리아의 자궁 속 젖병 속

더께 진 새의 날개 얽은 눈동자에도 있던 것

 

오래전에 깨져 버린 것들로 가득한 방

 

  지나간 일은 그냥 가지 않지 끝장나 깨질 때까지 기를 쓰고 매달려 있지 마리아, 아침은 없어 내일은 더 없어 휘영청 달빛 아래 누웠구나 아기 인형을 안고 인조견 원앙금침 위로 밤새도록 피어 있구나 이 꽃은 지지 않는 거짓말 이곳은 보증금 이백에 월세 이십 그나마 내일은 사라져버릴 방

 

오래전에 깨져버린 것들로 가득해 터질 것 같은 마리아의 방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요설투로 내뱉어지는 말의 급물살 속에서 우리는 먼저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강렬하고 현란한 이미지들과 그로테스크하며 잔혹한 상징들에 주목하게 된다. 시어들 간의 비약, 사유들 간의 비약도 그의 시가 내장하고 있는 이 지난하고 비루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을 선뜻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집은 오히려 꿈의 언어를 분석하듯이 접근해야 한다.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해설, 윤지영 시인)

 

: 첫 시집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김박 : ‘온통 빨강이라니’는「리얼리티 드라마 촬영기」라는 제 시 속에 등장하는 문구인데요. 그 시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예언자 라스푸틴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떠돌이 수도자였어요. 당당한 말투와 기이한 이론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농민들에게 인기를 얻었고요. 정숙을 중요하게 여기던 그 시대의 여인들에게 인기몰이를 합니다. 유명인사가 되어 소문이 퍼져나가다가 황제 가족의 애완견을 치료했고, 그 다음에는 황태자의 혈우병을 호전시킨 일로 신임을 얻었다고 해요. 정말 치료를 한 건지 치료하는 척 사기를 친 건지 알 수 없지만요. 이후로 비선실세가 되어 국정을 제멋대로 휘두르다가 제정 러시아의 몰락에 일조한 사람이라고 알려졌지요. 그 사람의 남성이 엄청나게 커서 수많은 여인들이 줄을 서서 그리워했다고 하고요. 러시아의 박물관에 그의 남성을 전시한 곳도 있더라고요.

 

 마음먹고 속이는 사람에게 속지 않기란 어려운 것 같아요. ‘확증편향’ 때문일까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이요. 선거철마다 말도 안 되는 후보자들이 출마를 하지요. 그들 입장에서는 꼭 당선이 될 것 같았을 거예요. 속고 속이다가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고 또 속아 넘어가곤 하니까요. 자신에 대해 가장 모르는 것도 같고요.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인 것도 같아요.  

 ‘온통 빨강이라니’에서의 빨강은 죽음이고 삶입니다. 가장 불온하지만 가장 뜨겁기도 하고요. 감탄이기도 하고 탄식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우리는 삶을 실감하잖아요. 누군가의 사고에서 우리의 안전을 실감하고요. 온통 빨강이라는 것은 죽음 앞의 우리들의 삶을 의미합니다. 자명한 죽음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렇게 살아서 애를 쓴다는 게 갸륵하잖아요.

 

             

더없이 아름다운 시대

 

꿈꾸는 것은 모두의 운명

가죽은 붉은 피와 살점의 시대를

유리는 반짝이는 모래알의 시대를 꿈꾸고 있다

 

신발은 피 흐르는 발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검정 구두 속은 온통 붉은색

다물지 않는 입에 신문지를 박아버렸다

얼마나 피를 빨아댔는지 퉁퉁 불어

살짝 눌러도 붉은 물이 흐를 것 같았다

 

유리도 오래도록 꿈을 꿨겠지

테이블로 바뀌어서 버틸 적에

창으로 드는 햇살에 감질내며

 

바닷물 대신 끈적한 차 얼룩 견뎌내며

때가 오면 다시 한 번 한 번만 더, 그랬겠지

 

그의 몸도 아기였던 때 큰 품에 안겨 안락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을 거야 이게 그 사건의 내막,

통유리 테이블에 올라갔다가

박살난 유리에 손과 발이 상한 일

 

유리는 해변을 향해 흘러가고

구두는 살점과 피 냄새에 취해 있고

그는 쇼파에 안겨 백 년 만의 오수를 즐기고 있다

더없이 아름다운 시대가 오기는 왔다

 

                    -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에서

 

 

어떤 식으로든 무엇에든 사로잡혔다. 그것은 초콜릿이었다가 옷이었다가 책이었다가 감정이었다가 상태가 되었다. 구체적인 것에서 그렇지 않은 쪽으로, 쉽고 간단한 것에서 그렇지 않은 쪽으로 옮아가는 이것은 중독의 스펙트럼 중 자외 (자외)일 것이다. 중독은 그것 하나에 전부를 거는 위태, 그것 외의 여지를 잃는 상실. 심정들 속에 있는 그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가장 원하는 것이 가장 더디게 온다면, 가장 원하는 것을 가장 원하지 않는 식으로 원하자는 멋대로의 술책을 내기도 했는데, 실은 이제 그것이어도 좋고 꼭 그것이 아니어도 좋고, 그때여도 좋고 꼭 그때가 아니어도 좋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 또한 느린 중독의 한 유형일 텐데, 당신은 어떤가.(시집『 중독 』, 시인의 말)

 

 

고수부지 언더그라운드

 

맹목이 아닌 적 있니 극단이 아닌 적 있니

부드러운 온몸을 뿔 삼아 직전(直前) 마다 뚫는구나, 이 지렁아

 

오늘 치 소임은 여기까지 

강하게 단단하게 한 치 더 키운 스펙은 고쳐 써넣는 일이니

이제 뒤끝 없는 방문을 걸어 잠글 차례

 

길고 음탕한 시를 읽기 시작이다

그것은 시간의 주름들로 지어졌으니

꿈에라도 다른 꿈 꾼 적 없는 순결한 물방울들의 기록과

흙덩이를 삼키고 낼 뿐인 진저리들의 이력이니

그걸 듣는 오늘의 인형은 착하기도 하지 졸지도 않고

진초록 서클렌즈에 매달린 눈알을 휘황한 척 켜둔 채

낙타털로 만든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덧칠하며

푸딩처럼 부드러운 속살을 친절히도 열어 보이니

큰물이나 나야 간신히 잠겨 물맛을 보는 목을 축이는

고수부지 한 뼘 땅바닥으로 어서 기어봐 핥아봐

지렁아, 이 말라 비틀어진

 

이따위 저따위는 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한다 해도

언더그라운드일 뿐이야 그래도 어쩌면 어쩌다

한판 뒤집히는 순간이 올지 몰라

그날이 오기까지 외로움에 지지 않기 위해

패배감 따위에는 더더욱 지지 않기 위해

일하고 그거하고 일하고 잠잔다, 꿈은

모르겠다

 

            - 시집『 중독 』중에서

 

 

: “이따위 저따위는 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한다 해도 / 언더그라운드일 뿐이야 그래도 어쩌면 어쩌다 / 한판 뒤집히는 순간이 올지 몰라 / 그날이 오기까지 외로움에 지지 않기 위해 / 일하고 그거하고 일하고 잠잔다, 꿈은 / 모르겠다” 첫 시집에서의 그 열망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김박 : 제가 언더그라운드니까요. 이쪽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이쪽 친구도 없었고, 이쪽 선생님도 없었고 해서 늘 혼자 땅 밑을 파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들이었어요. 이렇게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물어 볼 사람이 없었어요. 실수하고 실패하고  지금도 크게 나아진 건 없지만. 그래도 이젠 동인 시인들이 있어서 막막할 때는 두드릴 수 있어요. 서쪽 동인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되게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엄청 매력적이고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쪽을 생각하면 따뜻해져요.

 

 이 시에서의 언더그라운드는 제 자신에서 시작했지만 청춘들의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청춘들은 더 언더그라운드니까요. 고등학교 가고 대학교 가고 전공을 뭘 하고 인턴을 하고 교환학생을 가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스텝을 밟아서 애를 쓴 사람들도 탄탄대로는 아닌 것 같아요. 취업에 또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요. 먹고사는 일이 그렇게도 큰일이라는 걸 저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어요. 해도 해도 안 되는 삶,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애를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고통을 준다’ 는 말, 말도 안 되는 말 같아요. 견딜 수 없어서 사라지는 사람들에게는 발언권이 없으니까요. 견뎌낸 사람들만 남으니 고통스러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너무 견디기만 하다가는 지칠 텐데 그럴 때에도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타박하지 말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나쁜 생각 하지 말고요. 다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41

 

  무덤 위에서 해봤어? 등을 받쳐주는 둥근 체위 스커트 물들이는 풀빛 위로 해를 가리는 새떼들 위로 빠르게 그어지는 비행운 위로 너무 환해 볼 수 없는 햇무리 위로 뻥 뚫어진 허공 위로 하염없는 순간, 맞춤한 이 가봉으로 뭘 만들 수 있을까 모르지만 한 번의 이 옷을 나는 사랑해, 사랑해 헐떡이며 가윗밥을 넣었지 그게 아니라면 완만한 주검에 주름졌을 거야 바늘땀 사이 삭아가는 옷깃이 보였을 거야 심장에서 모든 게 생겨난다 했지 심장에 가닿는 핏줄, 핏줄에 이어지는 장기들, 싱싱한 이 심장을 네게 바칠까 해 그런데 심장은 어디서 오니 콧구멍에 마늘 박은 채 품은 어떻게 추니 뜨거운 키스가 어떻게 가능했건 거니 입술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시간, 출렁이는 무덤 위 우리라는 이 만우(萬愚)

 

                            - 시집『 중독 』중에서

 

                               

 : 시인님의 시들은 비명 같기도 하고 절규 같기도 하고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같기도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여 계속 읽고 싶어지는 시들입니다. 두 번째 시집도 그러합니다. “출렁이는 무덤 위 우리라는 이 만우(萬愚) 제가 생각할 때에 두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세계관으로의 변모가 엿보입니다.

 

김박 :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색즉시공 공즉시색까지 가지는 못했고 흉내만 내고 있지만요. 오늘 첫 번에 말씀 주신 제 시 ‘신라여관’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시가 이쪽으로 가다가 저쪽으로 가다가 해요. 어떨 때는 지혜로워지다가 어떨 때는 한없이 어리석어지네요. 시에도 삶에도 답이 없다는 게 답이니까 그런 것일까요. 이쪽에서 출렁 저쪽에서 출렁 아직도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 하다가 들끓다가 차갑게 얼어붙었다가 그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철이 아직 덜 든 것도 같은데 사실 철은 영원히 안 들고도 싶어요.

 

 그나저나 비명에 절규라니 첫 시집 내고서 들은 이야기가 그것이었어요. 무섭다고, 왜 그렇게 무서운 게 가득하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겁이 난다고 했어요. 그게 그 정도인가 흠.. 했지요. 뭘 또 무섭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시어들이 그런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 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제 본능이나 무의식 쪽이 그런 것일까요?  

 

 

 

 

나는 11월에 태어나

 

아빠의 엄마가 나를 낳으니 할머니가 내 엄마라면 아빠는 형

아빠 애인이 내 엄마라면 할머니는 내 할머니

할머니가 나를 낳아 친엄마라면 아빠 애인이 내 양엄마

머릿속 양 한 마리가 백 마리 백만 마리

냄새들이 부풀고 양털 뒤엉키면 풀어줄 거니 아니 잘라줄 거니

형이니까 형은 그후로도 오래오래 내 아빠니까 우린 패밀리니까

뒤로 할 때 아파도 좀 참아 아빠가 형이니까

키스할 때 더듬이 물지 않게 조심해

“들어간것은나온다” 아빠한테 배울 거는 그거 한 가지

그러니 어떤 체위도 겁먹지 않을게

우리의 가족애는 불도가니, 바닥만 남은 채 끓는 소릴 내지

언젠가 아빠가 내 애인이 되어주면

함께 우주의 무한을 향해 날아가면

분간이 가시넝쿨처럼 뒤엉킨다 해도

우리들은 분간할 수 없으니까 한 치의 오차도 없으니까

한 방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갈 때

더듬이들의 엉킨 춤은 끝도 없을 거야

나는 11월에 태어나 12월에 태어나

13월에 태어나

 

2010년 멕시코의 한 남자 동성연애자가 어머니의 배를 빌려 2세의 아버지가 되었다.

 

 

                       - 시집『 중독 』중에서

 

 :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시라는 생각입니다. 이 시의 탄생과정이 몹시 궁금합니다.

 

김박 : 선생님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주시네요. 이렇게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당 떨어졌겠어요. 커피 한 잔 더 하시지요. 좀 달콤하게요.

 이 시는 기사를 읽고 쓴 시입니다. , 주를 달았어요. 2010년에 멕시코의 남자 동성연애자가 어머니의 배를 빌려 2세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했어요. 지금은 더 많은 케이스가 있지요. 불임인 딸이 엄마의 몸을 빌어서 아이를 낳은 사례도 있고요. 그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가족의 탄생을 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쓸 때는 남자와 여자, 엄마와 아빠, 전통적인 성역할의 구분과 경계가 사라진다는 데에 초점을 두었어요. 이런 식으로 서로 뒤섞이다 보면 우리의 미래란 것도 분간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동물이나 벌레와도 유전자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잖아요. 함께 살며 서로 삼키고 스며드는 거죠. 가족이라는 개념이야 이미 무의미해졌지요. 결국에는 다들 독거인이 될 텐데요.

 

 

독순(讀脣)

 

웃는 척해봐 기쁜 척할게

우는 척해봐 슬픈 척할게

좋은 척해봐 즐거운 척할게

죽은 척해봐 죽는 척할게

 

조금만 더하면 서커스에도 나갈 거야

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번에 사라질 수 있을 거야

색종이 꽃송이들이 돌연(突然) 황홀할 거야

 

배달 치킨 한 박스에 닭 목이 왜 셋이지

닭인지 비둘기인지 어떻게 알아

부리로 변한 입술은 어떻게 읽지

 

박스 안에 대가리는 없다고 했잖아

 

진화에 대해 생각하는 척해봐

신화에 대해 생각하는 척해봐

 

삶의 진화는 죽음의 진화는

시작의 진화는 끝의 진화는

사랑의 진화는 이별의 진화는

신화와 순서만 바꾸는 거였니

 

말하지 마 생각하지 마

그냥 따라 해, 꼬꼬댁 구구

 

닭을 새라고 우기는 버릇 좀 고쳐

비둘기를 튀겨 먹는 식성 좀 고쳐

 

게임은 규칙이 중요해

게임은 순서가 중요해

 

다음은 네 차례야

대체 지금 뭐라는 거니

                        - 시집『 중독 』중에서 

 

 

웃는 척해봐 기쁜 척할게

우는 척해봐 슬픈 척할게

좋은 척해봐 즐거운 척할게

죽은 척해봐 죽는 척할게

: 첫 시집 해설을 쓰신 윤지영 시인께선 시인님의 세계관을 “척하기”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척을 하며 살고 있는지요. 이 시는 척하기가 오히려 진실이 되어버린 세상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김박 : 슬픈 마음으로 썼습니다. 불통의 삶에 대해서요. 서로를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혼자만의 말을 하는 사람들의 세상인 것 같아요. 다들 자기 생각에 빠져 있어요.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들이 드물지요. 그래서 상담을 하러 가고, 타로술사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잘 들어주는 사람이 그리워서요. 반대로 생각하면 제대로 온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다면 아주 큰일을 해주는 셈이겠지요.

 내가 아팠어, 하고 말할 때 최악의 대답은 나도 그렇게 아픈 적 있어,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아팠어, 하면 그랬구나 많이 아팠구나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알면서 그렇게 잘 못하곤 하니까요. 뭔가 대답을, 해결책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제대로 듣지도 않고 대답을 해버리기도 하고요. 한층 더하는 척하기로, 서로를 위해주는 척하는 거죠. 그게 진실이 된 세상, 맞아요. 제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연인들

 

  제 창자 안에 구겨져 소시지가 되는 돼지는 어때 사냥개를 어미라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는 어때 태양이 달려오는 데 8분이 걸리는 건, 당신 얼굴을 알아보는 데 0.05초 걸리는 건 어때 나는 당신에게 가고 당신은 당신에게 자꾸 가는 건 또 어때

 

  삼각형은 어때 내각의 합이 180도인 완전 삼각형, 평생 그걸 못 그리는 건 어때 우리가 그린 그 많은 삼각형들, 그렇게나 되고 싶던 근사(近似)한 것들은 어때 불완전한 고백들은 용서들은 희망들은 또 어때

 

  낙타를 사러 가는 건 어때 그곳에는 낙타를 칭하는 단어가 천 가지도 넘는다는데 그 많은 것들 중 단 하나로 당신이 당신의 낙타를 부를 때 내가 그걸 알아듣는 건 어때 낙타를 함께 타고 돌아오는 건, 둥근 낙타의 명랑한 등은 어때

 

  오 분 전의 당신과 오 분 후의 당신이 다르다는 건 어때 다르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건, 익숙해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건 어때 익숙한 노래는, 익숙한 연애는, 익숙한 만취는 어때, 닳고 닳은 몸에 몸을 들여 집이라 부르는 건 어때

 

  당신이라는 포즈는 어때 당신이라는 벼락은, 당신이라는 증후는 어때 당신이라는 태엽은 당신이라는 토핑은 당신이라는 핫도그는 어때 당신이라는 꽥꽥은 갈수록 사라지는 우리들은 빌어먹을 이 모든 비렁뱅이들은 또 어때

 

                           - 시집『 중독 』중에서 

 

 

 

 : 최승호 시인의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 에서처럼 세상의 민낯을 끔찍하게 때로는 발랄하고 경쾌하게 드러내 보이십니다. 어때 어때 되묻는 화법은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화법으로 읽으면 될까요? 연인들조차 “당신이라는 포즈”만 취하고 있는 것일까요? 진실한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척하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김박 : . 맞습니다. 이래도 되겠니, 이래도 괜찮겠니, 하며 되묻는 거요. 꼬집으면서 아프지, 아프지, 하고 묻는 거요. 관계의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의 허위, 믿는다는 말의 거짓, 같은 거요. 믿고 싶어서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고 있지 않다는 건 서로가 알고 있는 경우 처럼요.

 사랑이 힘들어서 너무 어려워서 그걸 꼭 갖고 싶고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요. 불가능한 일이라서 그렇게 원하는 건 아닐까요. 저는 사랑을 믿지 않는 쪽입니다. 사랑에 대해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는 것도 같아요.

 이 정도는 사랑이 아닐 거라고, 사랑은 뭔가 더 높고 완벽하고 엄청난 것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죠. 사랑이라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일 텐데요. 누가 누굴 사랑하겠어요. 저는 제 자신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걸요. 이제 작고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사랑, 이미 스며들어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랑, 아주 오래 거의 영원까지 가는 희미한 것이 사랑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요.  

 

 

빨강 인형은 인형을 안고

 

어리석음이 유행처럼 번질 때였지 아프간, 콩고

또 다른 어디선가 한때의 점령군들

증오와 애국심으로 빨간 인형을 만들었다 했어

제작법은 간단해서 소녀들을 잡아 힘을 합해

쩍쩍 갈라놓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풀숲에서 떠는 숨구멍마다 옹이가 되고

몸 위로 나무껍질 뒤덮이니 한 바람 지나는 사이

소녀였던 나무토막들 숲길을 뒹군다 했지

 

인형 귀는 나무 귀, 들을 수 없고

 

인형 눈은 나무 눈, 볼 수 없고

나무 심장은 전처럼 뛸 수 없다 했지

 

적군의 아이를 낳는 인형도 온통 뻥 뚫려버린 인형도

나무로 만든 팔다리로는 사라질 수 없다 했지

 

인형이 인형을 낳을 때 어린 젖을 물려야 하나

울기 전에 비닐봉지를 씌워야 하나

생각조차 멈춰버렸다 했지, 그땐 나무였으니

 

모두가 견뎌야 하는 지옥으로도 해는 날마다 떠올라서

아이는 인형을 안고 인형은 아이를 안고

순정하게 씻은 몸에 잘 마른 새 옷을 입고

부는 바람 말간 볕에 젖은 머리 말리고 있지

 

지금 이 순간 이토록 평화로우니 어딘가 어떤 거대한 손이 있어

빨간 인형과 인형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는 것만 같지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토록 살아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이, 영원히

너를 사랑해

 

                    - 시집『 중독 』중에서 

 

 

삶은 소년

 

사탕 항아리 속 어느 게 눈동자인지 알 수 있겠니

사탕은 없어요 눈동자도 없어 총알만 가득한걸요

 

한분에 반한다는 말을 모르니

한 방에 간다는 말은 알아요

 

 

우린 병아린데 왜 자꾸 삶은 달걀을 줘요?

목마른 거야말로 생생한 진실이야, 너도 목마르지?

목마르다는 걸 잊어버리면 해결 돼요

 

총알을 또 살 거예요, 이유는 없어

과잉이 문제지 슬픔도 기쁨도 너무 넘쳐

타이밍이 문제예요, 너무 익은 달걀이나 드세요

 

내일이 온전할 거라고 아무도 장담 못해

사랑 대신 수음을 택했어요

 

용서할 수 있겠니 너를 향해 총을 쏜 나를 말이야•

 

실낙원을 믿어요? 달걀보다 사과가 매력적이긴 하죠

 

물마른 강바닥에서 아가미를 떠는 물고기 꿈만 꿔요

 

얼룩말처럼 길들지 않는 아이야

그 바닥에서 이 바닥까지 한걸음에 뛰어봐

그건 얼룩말 얘기고요, 닭이라면 이런 식으로 뛰어내려요

 

우린 대중적인 햄버거를 먹고

대중가요 후렴구만 따라 부르죠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춰

 

총 쏘고 싶을 때 총을 쏠게요

 

Sonic Youth, <100%>

 

                       - 시집『 중독 』중에서 

               

 :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김박 :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없어서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희망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희망이 너무 없어서 더욱 희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절망이니 희망이니 그런 것들 다 관념이라는 거 알아요. 그게 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수준으로 생각하기까지는 까마득히 멀어요.

 희망이 잘 사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좀 절망적이지요. 연금으로 버텨야 하고 몸은 무거워지고 눈과 귀는 어두워지고 사랑할 사람들은 사라진다는 건데 그러다가 덜컥 죽어버린다는 건데 희망이 있을 리가 없지 않아요? 하지만 뭔가를 꿈꾸는 게 희망이라고 한다면,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는 게 희망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빨강의 이름으로

 

전쟁 중인 수용소 하늘에서

립스틱이 비처럼 쏟아졌다니

다 죽어가던 여인들이 살아났다니

밥도 아니고 옷도 아닌 그것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컴컴한 바닥

오물을 딛고 담요만 걸친 채로도

빨강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니

 

살기 위해 벌레를 잡아 삼키는 빨강과

핏기 가신 입술에 부들부들 바르는 빨강과

뭉개 바른 입술 벌린 채 눈 못 감는 빨강까지

 

입술이 입술인 것을 잊지 않을 때

심장이 심장인 것을 잊지 않을 때

지금은 지금인 것을 잊지 않는다

 

말없는 아가리를 열어젖혔다

주먹을 날려 터뜨렸다

손톱을 세워 발라냈다

 

생생한 것들이 피어났다

시간을 삼켜 거침없이 낳았다

 

지겨운 중음(中陰),

넌 끝이다

 

                    - 시집『 중독 』중에서 

 

 

 : 살아있다고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니므로, 우리 모두는 중음(中陰)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중독만이 빨강이라는 중독만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일까요?

 

김박 : 그렇다고 저는 생각해요. 뭔가 열중할 수 있는 것, 뭔가 소중한 것, 뭔가 바라는 것, 뭔가 추구하는 것이 있는 게 살아있다는 것 아닐까요. 그게 꼭 역동은 아니어서 잔잔히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있다면 그것도 살아있는 것 중 월등한 것 같고요. 작은 것이라도 품고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삶에 더 중독되고 싶어요.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중독

 

처음이라는

진짜라는 영원이라는

거짓이라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9회 말이라는 마지막이라는

역전이라는 희망이라는

중독, 이건 스도쿠 게임

한 칸에 하나씩의 수()만 쓸 수 있으니

물구나무 자세로 차가운 고요를 내쉬었다면

끓어오르는 치욕을 들이마실 순서

천국과 지옥을 함께 준대도 좋아,

좋아서 8자 춤을 춘 거라면

준비된 파국을 짓씹는 순서

 

하루 같은 일생을 살아왔다면

일생 같은 하루를 견딜 순서

 

이 완벽한 결함은 사랑할 수 밖에 없어 이토록 기이하게 허튼 짐승,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귀 기울여 들을수록 퇴화해가니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울고 조금 웃는다

 

                      - 시집『 중독 』중에서 

 

                         

그녀의 시에는 현전(現前)하는 존재들의 온갖 아이러니들이 갓 잡아온 생선처럼 펄떡거린다. 피 철철 흘리며 살아 몸 뒤트는 그것들은 대게 사회적 성적 약자로서의 여성들이다. 동성애자,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딸, 포로가 되어 적군의 아이를 낳은 여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된 여수() 등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소수자들, 시인은 그들이 차마 자신의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추하고 폭력적이며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하고 있다. 질서나 도덕 같은 것들은 애초부터 있었을 것 같지도 않은 곳, 시인은 그곳을 차라리 사나운 나무 인형 놀이마당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아빠 인형과 할머니 인형의 근친상간으로 낳은 나무 인형! 말 그대로 다만 사람의 형상에 불과한 존재, 거기는 내가 아빠 인형의 애인이 되어도 좋고, 형이라는 인형이 순식간에 아빠가 되어도 상관없는, 그의 말대로 ‘분간이 가시넝쿨처럼 뒤엉킨’ 이상한 세상. 그런 곳에서 사실, 사람인 내가 견디는 법은 매일 팔뚝에 칼금 하나씩 그으며 참은 것. 시인은 그럼에도 피와 침으로 범벅이 된 가족애만은 불도가니이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인형의 귀는 나무 귀 들을 수 없고, 인형의 눈은 나무 눈 볼 수 없고, 나무 심장은 처음부터 뛰지 않았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완벽한 결함은 사랑할 수 밖에 없잖아?’ 시집 전편을 관통하며 통통 튀는 그녀의 반어와 독설은 뻥 뚫린 바닥 위에 누운 채 가위눌린 형국인 존재들의 허를 슬쩍슬쩍 건드리며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처연함에 휩싸이게 한다.(이경림 시인)

 

 

당신의 적격

 

  당신이 당신을 당신의 당신에게 당신과 당신은 달라붙은 글자의 것, 말도 못하게 아름답고 말도 못하게 끔찍하지 말을 잘 못하는 나는 농담처럼 이런 사람이거나 농간처럼 저런 사람이거나 표정의 어투의 시시각각이 어지러워 시끄러워 그렇게나 말이 안 되는 말이라는 거니

  운명은 사소한 것들이 좌우하는지 사소한 것들이 그렇게나 중요한지 당신이 견디는지 당신을 견디는지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아득히 멀어 당신이 아닌 것도 같은데 견디고 있다고 말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사실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괜찮니 아니요 그렇다면 괜찮아요

 

  미안하다고 자꾸 그러면 미안해지지 웃고 있는데 웃으라고 그러면 울고 싶어요 그러면 뭐라고 해줄까 무슨 말을 듣고 싶니 당신은 누구신데 나를 압니까 당신 진짜 이름이 뭐요 당신이 아는 이름을 당신을 아는 이름을 정말로 안다고 말할 수 있겠소

 

                     -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 “당신은 누구신데 나를 압니까 당신 진짜 이름이 뭐요 당신이 아는 이름을 당신을 아는 이름을 정말로 안다고 말할 수 있겠소” 시인 김박은경과 생활인 김박은경은 누구일까요?

 

김박 : 시인 김박은경은 여전히 낯선 존재입니다. 영원히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해둘게요. 생활인 김박은경은 파닥파닥 하는 사람 같아요. 구태의연한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분야의 책, 처음 먹어 보는 음식, 처음 들어 보는 뮤지션, 듣도 보도 못 했던 이야기 같은 걸 좋아해요. 그런데 대면공포도 있고 대인공포도 있고 온갖 무용한 성격은 잔뜩 갖고 있어요.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가면 이틀 정도 끙끙 앓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아, 설 명절 잘 지내셨어요? 명절 어떻게 보내세요? 저는 차례나 제사 같은 것을 제 대에서 끝내겠다고 선언했었거든요. 그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단번에 할 수도 없고요.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하려고 해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작은 부분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정말 원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확신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용감하고 맹목적인 사람이 되려고 해요.  

 

 

다른 이야기

 

  불면이라고 하자 불멸이라고 했다 무섭다고 하자 무덥다고 했다 말에 말을 잇는데 말이 되지 않았다 시선이라고 하자 시신이라고 하자 마주보는 시신처럼 가능한 시선도 없이 떠다니는 웃음들 속삭임들, 아무도 없는데 떨어지는 책은 왜 자꾸 꺼지는 외등은 무슨 말을 해주려고 시계(視界)라고 하자 시계(時計)라고 한다 우리는 일치하는가, 아니 너무 많아 많은데 많아서 막막하지 시계는 죽어버렸어 광대하여 끝이 없거나 너머 저 너머에 또 너머가 있거나 너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 아니 우리는 서로의 이종, 다정을 잃었고 근친은 버렸고 고백은 무릎을 안고 우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과 생각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돌아가고 싶어 이미 돌아왔다는데 기억나지 않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데 분명한 건 분명한 게 없다는 것, 죽여버렸으면 죽어버렸으면 누가 누군가

 

 

                               -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세계를 부정하고 부정하며 다른 이야기를, 다른 세상을 꿈꾸시는 것 같아요. 진정한 시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죠. “분명한 건 분명한 게 없다는 것, 죽여버렸으면 죽어버렸으면 누가 누군가” 이 세상에서 단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님의 선택은 오직 단 하나, 시일까요? 저는 시 쓰겠다는 분이 있으면 말리고 싶어요. 그 길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임을 잘 아니까요. 매 초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 매 초 매 순간 의심하고 의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축복이자 시련일 것 같습니다.

 

김박 : 하하. 선생님 아마 시 쓰시기 전으로 돌아가신다고 해도 기어코 쓰실 걸요? 운명론이라고 하면 너무 커다란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 삶을 견디고 싶어서, 어떻게든 좋은 삶 쪽을 향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시 쓰기 아닐까 싶어요. 그럴 사람은 그렇게 한다는 거죠. 술로 푸는 사람도 있고 여행으로 푸는 사람도 있고 인내로 푸는 사람도 있겠지요. 글쓰기는 선방인 편이니까요. 부작용도 적고 비용도 안 들고요. 내상은 좀 심하겠지만요.

 선생님의 시 「금붕어」에서 ‘격하게 살아갈수록 격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하신 것 처럼요. 격하게 사는 사람이 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잖아요. 걷는 방식, 숨 쉬는 방식처럼 사는 것도 나름의 습관이니까요. 이러면 격하게 죽을 줄 알면서도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겠지요.

 마크 롤랜즈의『철학자와 늑대』가 생각납니다. 그는 늑대 개 브레닌을 키우는데요. 브레닌이 토끼 뒤를 몰래 쫓는 모습을 보면서 삶 속에서 감정이 아니라 토끼를 쫓아야 한다는 말을 해요. 여기서의 토끼는 행복을 의미하는 셈이지요.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나 행복한 순간은 즐거운 동시에 몹시 즐겁지 않다고요.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는 그의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토끼를 뒤쫓는 걸음들이 즐거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든 순간들이 나쁘지 않음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감정들이면 된다고요.

 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써질 때도 있고 안 써질 때도 있고, 이게 정녕 내가 쓴 것인가 싶을 때도 아주 가끔 있고, 노트북 화면이 종이라면 벅벅 찢어버렸을 최악의 것들이 엄청 있으니까요. 좋은 시가 써지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려고요.

 뭐든 너무 열심히 하지는 않을 셈입니다. 안달복달의 방식으로 오래 견딘 것 같아서요. 물론 시에 안달복달이라는 건 아니고요. 삶에 대해서요. 그냥 제 자신을 믿으면서 천천히 살고 싶어요. 세상에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하잖아요. 믿는다, 믿는다니까, 제 자신을 안아주면서요.  

 

 

 

언젠가 지금과 다른 생

 

  오래 앓아 지루해진 당신이 묻네, 언젠가 지금과 다른 생이 있겠냐고 강물은 당신 발목을 향해 흐르고 두 갈래로 갈라지고 파문은 당신으로부터, 흔들리던 것은 흔들리는 수밖에 흘러가던 것은 흘러가는 수밖에 지금 묻고 있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묻는 사람 지금 슬픈 사람은 언제까지나 슬픈 사람, 그 더운 이마에 얹으려고 강물에 손을 담그네 손을 따라 밀려오는 강물을 따라 번지는 빛을 따라 봄을 따라 참 아름다워서 죽기 좋은 날이라고 하겠지 병이 아닌 꿈이 없다고 독이 아닌 숨이 없다고 눈을 감은 채 하는 질문은 가만하고 부드럽고 실컷 어리석은 것, 어리광처럼 초록이 간지러운 강가에서 따뜻한 입김에 기대고 싶겠지만 아니요, 아닙니다

 

                        -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 시인님의 시 중에서 한결 읽기가 편안한 시입니다. 그나마 시인님 스스로를 덜 괴롭히는 시처럼 읽혀져요. “병이 아닌 꿈이 없다고 독이 아닌 숨이 없다고” “언젠가 지금과 다른 생”은 있을까요? 저는 제 현생의 삶이 전생의 삶인 듯 후생의 삶인 듯 느껴져요. 무언가 강력한 운명에 의해서 그 사람의 삶이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되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 점점 더 깊숙이 그 운명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블랙홀을 살아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김박 : 저는 「네 인생의 이야기」속 주인공 루이즈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테드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속의 단편이요. 루이즈는 언어학자고 남성 게리는 물리학자로 나오지요. 외계생명체 헵타포드가 지구로 옵니다. 그들의 언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흘러가는 선형적 흐름이 아니고 비선형적으로 그 모든 시대를 동시에 인식하는데요. 그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루이즈는 자신과 게리의 미래까지 알게 되잖아요. 둘 사이에 딸을 낳고 이혼을 하고 그 딸은 25살에 산악등반 중 추락사하게 되지요. 루이즈는 딸아이의 미래를 알면서 아이를 갖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가요? 밀어내며 빨려 들어갈 때도 있지만 기꺼이 걸어 들어가기도 하면서요. 저는 후자 쪽의 자세를 취하고 싶습니다.

 “전환적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지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경험이요.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결혼, 출산, 죽음 같은 일들이요. 우리는 영원을 모르니 우리의 일생이 가장 거대한 영원일 텐데요. 제 영원 속에 존재하는 전환적 경험들 덕분에 제가 조금 더 생생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못 속이는 이야기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벽에서 못이 떨어졌다면 돌이킬 수 없이 휘어져 있다면 못도 속도 휘어졌겠지 다정을 다 주면 다정을 잃게 된다 파고드는 아이를 안고 업다 굳어버린 지친 몸처럼 고스란히 운명의 각이 잡히게 된다 불안과 불신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낙관했겠지 무모하게 희망했겠지 기를 쓰며 휘둘렸겠지 아무것도 몰랐다면 우리는 없었겠지 검고 좁은 못 구멍의 전후로 영원토록 적나라한 미래라니 가능한 모든 차원으로 달라붙는 그것은 이종의 피 혹은 뼈, 가족 아니 가죽 달라붙어 거두고 가두니 안거나 안지 않거나 갈 수 없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 수 없다 문이 없다 찐득한 얼룩과 냄새가 왜겠니 더러운 게 아니라 가난한 거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없는 거야 알려주고 싶지 않아 주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고통일 거야 내일에게도, 가장 안쪽에 먼저 죽은 것이 있다 죽은 것으로 가득해 빈틈이 없다 더이상 살 수 있는 것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이 없다 구멍마다 외눈박이 아이들 서글픈 꿈들 믿을 수 없을 만치 작고 동그란 어깨의 형태 그럼에도 속절없이 다녀가다니 좁은 방 벽에 늘어가는 못 자국처럼 기웃기웃 안부라도 전하는 건가 빛을 향하는 것이 목숨을 거는 일이라 천지간 꽃향에 취해 걷다보면 널브러진 꽃가지들이 수습 못한 팔다리 같아 꽃을 잃은 나무마다 비틀거리는 여인 같아 으깨진 꽃물은 피눈물 같아 빈 벽의 빈 구멍들을 차마 볼 수 없는데

 

                         -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 세상은 못 속이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인님의 시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낱낱이 드러내어 읽는 내내 그 끔찍함에 혹은 그 적확함에 시인님의 고통이 제게 고스란히 건네져서 읽기에 두려움을 느낄 때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요? 세상과의 화해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겠지요?

 

김박 : 샤우나 샤피로는 ‘정신이 방황할 때 우리가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본다면 작가들은 불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혹은 그런 비판적인 경향을 갖고 있어서 작가가 되는 것도 같고요. 글로 풀어내지 못하면 견딜 수 없어서요.

 저는 글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못 됩니다. 글이 엄청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큰 위로가 된다, 큰 힘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위로와 힘은 시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읽고 느끼는 독자들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쓰는 시는 저를 위한 일이 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이 마음을 바꾼다고나 할까요.

 

 

 

 : 근래 시인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하고 있는 일이나 시인님의 취미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시인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문학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실까요?

 

김박 : 2월의 제 생일을 맞아 벼르던 일 두 가지를 했습니다. 십 년 넘은 일기들을 버렸고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아주 가벼워요. 좋아하는 일은 요가하기, 낯선 동네 돌아다니기, 책 산만하게 이것저것 읽는 거 좋아합니다. , 물구나무서기가 특기였는데 작년에 다치는 바람에 이제는 거꾸로 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내고 있어요. 사진 찍기도 좋아하고요. 뻔한 길을 돌아가는 거 좋아합니다. 출근할 때도 버스를 타고 가기도 하고 전철로 가기도 하고 한 정거장 먼저 내리기도 하고 더 가서 걸어가기도 하고 출근하기 전에 하루치 방황을 다 끝내버립니다. 그게 아주 즐거워요. 날마다 새로운 뭔가가 있거든요.

  영성 지도자인 람 다스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순간들도 우리의 뇌가 자라는 방식에, 나아가 우리의 삶이 돌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도요. 저도 그냥 순간순간을 잘 살아내고 싶어요. 계획은 비워두고 가볍게 가고 싶습니다.

 아, 그런데 요번 시집을 받고 아버지가 시가 너무 길다고, 읽기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좀 짧게 가야하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작은 삶과 작은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용감하고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미래의 저를 믿어주려고 해요. 저를 좀 사랑해주려고 해요. 18세기 랍비의 말씀을 외우면서요. “내가 넘어져야 한다면 넘어지게 하소서. 장차 내가 될 사람이 날 붙잡아 줄 테니”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혼자 읽고 혼자 쓰기는 하지만 누군가 고개를 끄덕여주면, 귀 기울여 들어주면 그렇게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특별한 행복이었어요. 뭔가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좋은 춤

 

  매혹을 따라 헤엄칠 거야 헤엄치면 지느러미가 생길 거야 달리면 다리가 생길 거야 노래하면 음성이 생길 거야 치마가 부풀어오르잖아 강해졌고 분명해졌지 멀리 갈 거고 돌아보지 않지 행복해도 미안하지는 않아

 

  간절히 부르지 쳐다보라고 애원하지 손을 잡아끌지 그래도 바라보지 않을 거야 먼지 같으니까 떠올리지도 않을 거야 지나갔으니까 없으니까 아니니까

 

 

  춤을 출 거야 둥글고 커다랗고 좋은 춤, 나의 사자가 사슴과 고양이가 생쥐와 종달새가 크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올거야 얼굴 속에 얼굴을 내밀고 음성 속의 음성을 내면서 발과 발이 날개와 날개가 뒤섞이면서 커다란 춤이 될 거야 조금씩 빨라질 거야 아무도 따라 할 수 없어 멈추게 할 수 없어 점점 빨라 그림자도 없어 투명할 거야

 

  빨아들일 거야 중심이 될 거야 궤도가 될 거야 괄호 안으로 괄호 밖으로 새로운 질문들이 떨어진다 해도 답은 변하지 않을 거야 달라졌으니까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까 아가들 소녀들 언니들 아가씨들 엄마 이모 고모 할머니들 이름 없이도 아이를 낳고 어르고 기르고 밥을 짓고 걸레를 빨고 계절마다 햇살을 썰어 말리는 그 자리를 둥글게 둥글게 돌 거야

 

  함께 부풀어 차오르고 넘치고 젖고 다시 마르도록 우리가 누군지 잊지 않을 거야 떠도는 바람은 떠돌게 하고 깨진 바람은 깨지게 하고 다음 스텝을 멈추지 않을 거야 밟는 곳마다 빛이 날 거야 가는 곳마다 빛이 될 거야 사랑하니까 그렇게나 사랑이니까

 

                         -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내가 꿈꾸었던 세상과 실제로 마주한 세상은 얼마나 달랐던가 나는 상심하였으며 그런 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손에 들려있었던 맥주 캔들. 취기가 올라옴과 동시에 한숨처럼, 차마 내뱉지 못한 말처럼 터져 나오던 울음...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또 하루가 지나갔다. 어김없이 내일이 오고 나는 아귀 같은 세상에서 회의하고 또 회의하며 도무지 섞일 수 없는 이방인처럼 박제되어갔다. 그런 젊은 날을 그런 중년을 나 또한 기꺼이 통과하였다.

 

 시인이여, 이제는 시인이 그만 아파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좋은 춤만 추기를, 조금 덜 예민하기를, 조금만 덜 이상하기를, 세상을 조금만 덜 사랑하기를, 조금만 더 자신을 사랑하기를, “언젠가 다른 생”을 시로서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시인이 조금만 더 행복하기를, 조금만 덜 자신을 괴롭히기를......

“떠도는 바람은 떠돌게 하고 깨진 바람은 깨지게 하고 / 다음 스텝을 멈추지 않을 거야 밟는 곳마다 빛이 날 거야 가는 곳마다 빛이 될 거야 사랑하니까 그렇게나 사랑이니까”

 진실로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시인이 “다음 스텝을 멈추지 않”는 한, 시인이 “밟는 곳마다 빛이 날” 것이며 시인이 “가는 곳마다” 스스로 “빛이 될” 것이다. “사랑하니까 그렇게나 사랑하니까”

 

 

삶에 고이는 흉측함을 가린 채 폭죽이 터지는 자리에만 시가 있는 게 아니다. 폭죽이 일그러뜨리는 밤하늘의 표정을 순정하게 마주하면서 쓰이는 시도 있기 때문이다. 백치의 가면을 일부러 순순히 쓴 채 우여곡절이라는 삶의 진실을 현명하게 견디면서 어떤 시인은 탄생한다. 오늘 우리가 만난 김박은경이 그렇다. (문학평론가 양경언)

 

 

《김박은경 시인》

2002년 《시와반시》「감전」외 4편으로 등단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중독』『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산문집 『홀림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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