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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서 봄 사이(김지헌)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21/02/18 [13:50]

겨울에서 봄 사이(김지헌)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1/02/18 [13:50] | 조회수 : 26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겨울에서 봄 사이(김지헌)

정원사가 나무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수인선 철로가 꼬리를 감춘 곳
마지막 열차가 멈추고
그 자리에 들어선 식물원에선
환상통을 앓는 버드나무가
자꾸만 철로가 사라진 방향으로
없는 팔을 흔들고 있다

식자공이 활자들을 꾹꾹 눌러 심듯
정원사들이 새 모종을 줄 맞춰 새기고 있다

버드나무가 속이 비어가는 동안
계절은 조용히 이동했고
낙엽을 태우듯 이미 나에게서 떠나
시렁에 얹어두었던 낡은 시들을 소각해버렸다
식물원 여기저기 잔가지들을 치우고

하드디스크의 어지러운 방들까지 정리하고 나니
어떤 뼈아픈 생 하나
자꾸만 팔이 길어지는 중인지
가지 끝 통점에 붉은 딱지가 앉았다
목련의 겨울눈도 정중하게 털모자를 벗었다
고요하던 식물원이 수런거린다
겨울 지나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심장을 가졌다』, (현대시학, 2020)

 


겨울도 봄도 아닌 요즈음 모든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싶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동면에 들었던 나도, 나의 시도 깨워서 수런수런 말을 걸고 싶습니다.

 


수인선 마지막 열차가 멈추고 그 자리에 들어선 식물원에서 환상통을 앓는 버드나무처럼

나의 시가 사라진 겨울에서 봄 사이, 시렁에 얹어두었던 낡은 시들을 버드나무 속 비우듯 정리하니 하드디스크의 어지러운 방들이 깨끗해졌습니다.


활자들을 꾹꾹 눌러 시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버드나무가 자꾸만 철로가 사라진 방향으로 없는 팔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나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던 시가 나의 통점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목련의 겨울눈도 털모자를 벗고, 고요하던 식물원이 수런거립니다. 겨울에 꼬리를 감추었던 나의 심장도 덩달아서 수런거리다가 겨울 지나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식물원의 정원사들이 새 모종을 줄 맞춰 새기고 있는 것처럼 어떤 뼈아픈 생 하나가 통점을 흔들어 시로 새기고 싶습니다.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글 : 박미산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박사졸업(문학박사)
-시집 『루낭의 지도』,『태양의 혀』,『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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