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심었습니다 / 서안나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0/11/16 [10:23]

새를 심었습니다 / 서안나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11/16 [10:23] | 조회수 : 131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새를 심었습니다

          서안나

  새를 받았지요 택배로. 뿌리에 흙이 묻어있었어요.

  은행을 지나고 김밥천국을 지나고 데빌 피시방을 지나 나에게 도착한 새입니다.

  새가 아니라고 말해도 새입니다.

  설명서를 읽었죠.

  새, 이것은 명사, 물렁거리거나 잘 깨지는 것, 씨앗이 단단한 것, 비정규직 냄새가 나는 것, 유목형입니다.

  갓 배달된 1년생 새를 심었어요. 무채색의 새는 어둡습니다. 검은 것들은 어둠을 치는 기분입니다. 새는 나쁜 계절 쪽으로 한 뼘씩 자라고. 종이 인형처럼 잘 찢어집니다. 고독한 비행의 예감 같은 것이 따라왔습니다.

  새를 심었지요 오렌지 맛이 나는 새를요. 이따금 새는 시들다 화들짝 살아납니다. 새를 오래 들여다보면 싹이 돋는 을 닮았습니다.

  일주일에 물을 두 번 주었지요. 새의 눈동자가 조금 썩었어요. 얼굴을 매일 떨어뜨립니다. 새의 그늘이 깊어집니다. 실직의 징조입니다. 새를 두드리면 상자와 고양이와 단추와 감정노동자가 있습니다. 나는 겨울이 온다. 살아야겠다고 이력서의 필체로 수첩에 적었습니다

   은 당신을 쳐서 내가 사는 오늘 저녁의 영광입니다. 동맹과 배반의 테이블에서 태어납니다. 내일은 새의 날개가 펼쳐지는 개화기입니다.

 

  빨리 죽는 것들은 빨리 죽어 오래 삽니다. 유목의 계절입니다.

 

《서안나 시인》  

1990년《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립스틱 발달사』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과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정의홍전집 12』가 있고 『전숙희 수필선집』이 있다.

 

 

 

 젊은 날 나는 항상 새가 되고 싶었다. 그건 척박한 현실을 뛰어넘고자 하는 나의 소망, 욕망이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나 아닌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새의 깃털 근처에도 못간 나는, 여전히 새를 꿈꾼다.(중년의 어느 날 아주 잠깐, 새가 된 듯한 착각에 이르른 적은 있다.)

 

 시인의 새는 내 젊은 날의 새와는 사뭇 다른 새이다. 시인의 새는 허공중을 나는 새가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모든 연약한 것들, 즉 우리들 자신이다.

 

 시인은 “뿌리에 흙이 묻”은 “새를 받았”다.(나도 몇 개인가의 식물을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한 적이 있다.) 그것은 그 푸름과 연약함으로 소중한 “새”다. “새, 이것은 명사, 물렁거리거나 잘 깨지는 것, 씨앗이 단단한 것, 비정규직 냄새가 나는 것, 유목형”이라고 “설명서”엔 적혀있다.

 

 우리들의 꿈은 잘 깨지는 것이어서 비정규직 냄새가 나며, 또한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자생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은 유목형이다. 시인의 새는 “오래 들여다보면 싹이 돋는 을 닮았”다. 새를 두드리면 “상자와 고양이와 단추와 감정노동자가 있”다. 시인의 새는 “고독한 비행의 예감 같은 것이” 묻어있고, “눈동자가 조금 썩”어 있다. 은 “동맹과 배반의 테이블에서 태어”나지만, 시인은 의 비애를, 새의 비애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비애를 긍정한다.

 

 “빨리 죽는 것들은 빨리 죽어 오래 삽니다. 

 

 연약한 새인 우리들의 생명력은 갑()인 세상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강인한 생명력으로 “새의 날개가 펼쳐지는 개화기”인 내일을 살아내고 꿈꾸는 것이다.(홍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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