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말의 파문, 조여드는 말”, 홍계숙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0/08/06 [23:23]

“출렁이는 말의 파문, 조여드는 말”, 홍계숙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8/06 [23:23] | 조회수 : 105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문단소식〕“출렁이는 말의 파문, 조여드는 말”, 홍계숙 시인과의 인터뷰

 

 

둘레를 흔드는 말이 있다 / 고요한 수면에 떨어진 첫 빗방울 / 둥근 물살이 놀란 호수를 가장자리로 몰고 간다 / 훌라후프처럼 허리를 휘감고 / 조여드는 말, / 수직이 수평에 꽂히는 순간 / 피어나는 파문은 소리의 바깥을 향해 내달리고 / 말의 둘레가 출렁인다

                                                   

                                               시인의 시「파문의 반지름」에서

 

 

 

 

 오래전부터 나는 시인을 미행하고 있었다. 처음 시인의 시를 접한 것은 마경덕 선생님의 블러그에 소개된 시인의 등단작이었다. 시인은 2017년도에 계간지『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인의 등단작을 읽으며 나는 그녀가 초등교사이며, 마경덕 선생님의 시 창작 교실 문하생으로 몇 년간 수학한 뒤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시와 반시』는 수많은 예비시인들이 꿈꾸는 선망의 등단지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나의 호기심은 시인이 현직 초등교사라는 것, 비교적 안정된 직업과 결혼생활을 영위해가던 시인으로 하여금 무엇이 그토록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하였는지, 시인의 등단소감을 떨리는 마음으로 읽으며 함께 공감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등단소감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시 쓰기의 신산함과 쓸쓸함이란, 늦가을 포도를 정처 없이 떠도는 상처 입은 낙엽처럼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 날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시인과 나는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시쳇말로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것을, 마음의 행로가 시인과 나를 단단히 동여매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시인과 나는 동성이지 않은가. 귀한 성씨라서 필시 동성동본임에 틀림없을 시인을 그 후 나는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한겨울을 가장 눈부시게 살다 가는 것이 눈사람이라면 여름을 가장 치열하게 살다 가는 것이 매미일 것이다. 수컷 매미의 울림판 위에 뜨겁던 8월이었다. 생일 바로 전날, 선물처럼 신인상 확정 소식을 들었다. 순간, 허물을 벗고 우화하는 매미처럼 내 등에 희망이라는 날개가 돋고 있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세상으로 향했던 시선을 자신에게 되돌릴 즈음 는 매미 노래처럼 내게 달려왔다. 이제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겠구나. 붙들고 울어야할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보였다. 세상에 모든 사물과 현상이 시제가 되어 나를 다시 재정립했다. 나는 아직 여름이고, 가슴이 이토록 뜨거운 것은 가을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 창작 수업 중 호된 합평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문우가 울먹울먹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왜 시를 쓰려 했을까요? 그 물음이 가슴 한가운데 박혀있다. 뒤늦게 를 다시 시작하고 한순간도 그것을 후회한 적 없지만 시를 쓰는 동안 그 물음은 안고 가려한다.>

 

 시인의 등단소감 일부를 발췌하여 옮겨보았다. 시인은 아직도 뜨거운 여름날의 매미처럼 세상과 자신을 향해 뜨겁게 울고 있다. 아직 그의 펜 끝은 데일 듯 시퍼렇다. 끊임없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쓰고 있는, 써야만 하는 시인의 시 속으로 나는 순교하듯 조심스레 그러나 늘 그렇듯 무모한 용감함으로 그의 시세계를 희미한 등불 하나에 의지한 채 미끄러져 들어가 보기로 한다.

 

 당신도 나도 시인도...

 

 “왜 시를 쓰려 했을까요?

 

 

 

《대표시 모음》

 

 

파문의 반지름

 

 

둘레를 흔드는 말이 있다

 

고요한 수면에 떨어진 첫 빗방울

둥근 물살이 놀란 호수를 가장자리로 몰고 간다

 

훌라후프처럼 허리를 휘감고

조여드는 말,

 

수직이 수평에 꽂히는 순간

피어나는 파문은 소리의 바깥을 향해 내달리고

말의 둘레가 출렁인다

 

지름의 길이와 소란한 둘레는 비례한다

 

 

실체 없는 폭로들

던진 돌이 날아와 퍼지는 파장, 그 안쪽은

고요하다

 

둘레에 도착한 직선의 반지름

깊이가 탈락되고 남은 넓이는 상처의 몫이다

 

그 많던 동그라미는 어디로 갔을까

 

둥근 하루가 반으로 접히고 파문이 가라앉은 후

나의 수면은 중심이 휘청거린다

 

막말의 둘레는 지름 곱하기 씁쓸함이다

 

 

 

오십견

 

 

  개 한 마리 키우실래요?

 

  죽기 살기로 부딪쳐 본 적 있나요 진퇴양난이 붉은 잇몸을 드러냈을 때 느닷없이 달려드는 개를 보았죠 죽어야 사는 여자, 그 영화 포스터가 걸린 담벼락에서

 

  여섯 살 때 친구에게 달려든 개가 내 심장을 삼켜버렸어요 고통을 물어뜯은 타액이 뚝뚝 떨어지던 나는 심장 한쪽이 없죠 개도 안 물어갈 심장이 남아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 가끔 비명이 빛보다 빠르죠 소리의 누런 이빨 사이로 시큰한 통증의 향내가 풍겨요 오른쪽 팔을 들어 올릴 때,

 

  오르막길일까요, 내리막길일까요

  외투의 중턱에 지퍼가 끼어 웃지도 울지도 못하네요

  오십의 안감을 꽉 물고서

 

  사육에도 내공이 필요해요 내공은 어깨 근육 속에 있죠 개가 짖을 때, 끼인 지퍼의 기분을 살짝 들어서 올려야 하듯

 

  오십은 개가 물어뜯기 좋은 나이

  놓치고 돌아온 무지개를 되돌아보는 나이

 

 

  개에 물린 날들이 견갑골에 기록된

 

  컹컹, 어깨 깊숙한 짐승의 울음을 꺼내야 해요

 

 

 

단추는 어디에 숨는가

 

 

  단추는 납작한 단서입니다

 

  언젠가부터 차를 마시면 사레가 들립니다

  찻잔 속 안부를 성급히 마시려 했기 때문일까요 기도로 들어선 불청객을 밀어내려 기침이 재채기로 바뀝니다

  재채기를 하는 날은 잠깐 나를 놓아버립니다

  단추가 물어옵니다

  놓아버린 것이

  나일까요 납작한 집착일까요

  실이 단추의 손을 놓았는지 단추가 실의 손을 놓았는지 손목은 알 수 없습니다 재채기는 옷소매로 가려야 하니까요

 

  단추는 구멍의 기록입니다

 

  단추가 달린 곳은 깊숙한 안쪽을 지녔습니다 궁금한 것은 대체로 깊숙하니까요

  순간 단추가 캄캄해집니다

  낙하의 속도까지 입술에 닿았지만 끝맛을 놓쳤습니다

  동그란 것은 굴러가기 유리합니다

  눈이 동그래지고

  조그맣게 몸을 말아 꼭꼭 숨어있던 저녁의 구멍을 떠올립니다

  매트 위를 두 번 연속으로 구르던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책상다리는 그의 행방을 알까요

  떨어진 단추는 천천히 술래가 되고 싶습니다

 

  실밥의 재채기를 귀에 꽂고

  떨어진 것은 더 둥글고 납작해집니다

 

  아무도 단추의 그 다음을 적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반갑습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가 봅니다. 이 말은 트롯 가수 영탁이 입버릇처럼 외는 말이기도 합니다. (웃음) 아이들 가르치시느라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는 어떤 결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악습에 대한 분노이든지 아니면 자신과의 또는 이상과의 불화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시인으로 완성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등단소감에서도 언급하셨듯이 시인님은 왜 시를 쓰려 하셨을까요?

 

 반갑습니다. 홍수연 시인님,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어요. 조용히 귀 기울였죠.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넌 누구니? 나는 나인데 말이야!’ 하고 말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선생님, 엄마와 아내, 한 집안의 맏며느리,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무엇’ 으로 살아왔었죠. 그 목소리를 듣게 된 이후로는 ‘내 안의 나’ 더 나아가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대부분의 사춘기가 그러하듯이 감수성이 예민했어요.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작은 언니가 미대를 가는 바람에 일찌감치 진로를 바꾸어 교대에 입학했어요. 결국 교대에서도 미술교육을 전공하게 되었고 4년 내내 열심히 그림을 그렸죠. 그때의 회화 작업은 시 쓰기에 도움이 되었어요. 교대 1학년 때 대학신문에 시 부문 당선이 되었던 이력이 있구요. 인간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발령과 동시에 교육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림과 시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어요. 하지만 담임을 맡은 아이들에게 매년 문집을 만들어주고 매일 아침 감동적인 수필이나 짧은 동화 한 편씩 꾸준히 읽어주었어요. 교직 20여 년 동안 학급문집을 만들어 왔는데 2012년 담임을 그만두고 영어교과 전담교사로 전향하면서 학급문집을 만들지 못하게 되자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때쯤 콩닥거리며 가 저에게로 왔어요. 모든 사물과 현상이 詩的인 것으로 다가왔고 시적 자아와 현실의 내가 하나로 승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어요.

 

 

 

뿔의 자리

 

 

1

싱크대 한켠,

요리에 쓰고 남은 무 반 토막

속살에 거뭇한 검버섯을 피우며

말라가는 대궁 끝에 푸른 뿔이 솟았다

뿔은 심장에서 먼 곳에 솟는다

무의 심장은 어디로 갔을까

무 끝에 돋아난 꼿꼿한 싹을 바라보며

내 심장을 더듬어본다

 

2

채널을 돌리니 들소와 사자의 격투가 한창이다

 

들소 무리 뒤를 공격한 사자, 순간

뒤돌아선 들소가 녀석을 뿔에 휘감아 내동댕이친다

간신히 다시 달려드는 사자를

맹렬한 뿔이 내던져버린다

저 뿔의 힘,

몸통에서 분리된 뿔의 당당함은

어느 뿌리에서 오는가

뿔의 각을 허물어 그 뿌리를 더듬는다

 

3

자신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적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뿔은 자란다

심장 근처에 모았던 손을 이마에 얹으니

내게도 들소의 뿔이 만져진다

뿔을 앞세운 성난 들소들이 내 이마 위를 내달린다

뿔로 인해 허물어진 수많은 꿈들이 이마에

실금을 풀어놓았다

 

4

메가케로스는 거대한 뿔을 가진 사슴,

위대한 뿔을 지녔지만 웅장하고 화려한 무게에 눌려

지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세상에는 제 지위만을 믿고 위용을 휘두르다 파멸한

메가케로스의 뿔이 얼마나 많은가

태양을 향한 뿔과 땅의 중심으로 뻗는 뿌리는

모두 불을 향해 달려간다

뿌리를 짓밟고 뿔을 쫓으며 달리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5

말라가는 무에서 들소의 뿔이 만져진다

마지막 한 방울 제 안의 물을 끌어와 싹을 틔우고

죽어가는 뿌리가 몸에서 절망을 분리하고 있다

뿔의 각을 해체하면 뿌리로 돌아가는지

물을 소진한 이마 위로 초승달이 뜬다

 

(계간『시와반시』2017년 신인상 당선작품)

 

 

2017년 당시 시인님의 등단작을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등단작 「뿔의 자리」에서 “자신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 적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뿔은 자”라고 “뿔로 인해 허물어진 수많은 꿈들이 이마에 실금을 풀어놓았다”고 언술하셨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 세상에 생명 있는 것으로 태어난 이상, 생명 있는 만물은 “뿌리로 돌아가”서야 “뿔의 각을 해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뿔의 각을” 잃어버리면 어쩔 수 없이 “뿌리로 돌아가”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육강식의 논리인 셈이죠. 저는 이 양육강식의 세상이 싫어 자의반 타의반 누군가를 애써 이기려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뿌리를 짓밟고 뿔을 쫓으며 달리던 사람들은 /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지금쯤 만화방창의 세월을 살고 있을 테지요. 시인님의 “뿔의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요?

 

 

 ‘뿔’이라는 시제를 받고 오랫동안 매만졌던 시편이에요. 30년 사회생활을 해 오면서 크고 작은 부당함을 경험했죠. 또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맏며느리의 자리는 어느 순간 궤도를 이탈하고 싶게 했어요. 뿔이 났던 거죠. 그러나 뿔을 세우고 누군가를 치받고 나면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어요. 뿔의 상처들이 이력으로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어요. 뿔과 심장의 거리는 멀고도 가까워요. 뿔의 힘! 몸통에서 분리된 뿔은 당당하죠. 그 당당함은 어느 뿌리에서 올까요? 뿌리에서 온 뿔도 결국은 뿌리로 돌아가는데요.

 

 

• 시인님의 시를 읽을 때면 행간이 깊고 그 여백이 주는 여운이 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시를 단아한 용모만큼이나 벼리어 쓰신다는 말씀일 수도 있는데요. 우문 같지만, 평소에 시 한 편을 쓰시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며, “출렁이는 말의 파문”의 시간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요?

 

 어떤 시인은 한 자리에서 뚝딱 시 한 편을 쓰신다고 들었는데요, 저의 경우, 시가 금방 뚝딱, 빚어지는 건 아니랍니다. 반짝이며 詩的인 것이 다가오면 붙잡아서 먼저 크로키를 해요. 그리고 조소나 조각을 하듯 오랫동안 매만져요. 언어를 매만지는 삶의 자투리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파문의 반지름」은 수학공식에 시어를 대입시킨 시편인데요, 학창시절 수학 과목을 좋아했는데 수학의 영역 중에서 도형 부분을 참 좋아했거든요. 말의 파문을 원의 지름과 반지름을 구하는 공식에 대입시키니 잘 맞아떨어지고 시가 빚어졌어요. 처음엔 감성적인 시를 많이 썼죠. 그땐 가슴에 피어오르는 것들을 여과 없이 받아 적었는데 이제는 시제를 가슴 속에 씨앗으로 심어놓고 기다려요. 물과 거름을 주고 적당한 햇살과 바람을 초대해서 정성껏 가꾸어요. 때로는 창작의 고통으로 몸부림을 칠 때도 있습니다.

 

 

 

모과의 건축학

 

 

봄이 푸른 모닥불을 지피면

잎새 사이 타닥타닥 피어나는 분홍꽃잎들

이때쯤 나무는 허공의 각도를 측량하고

집짓기를 서두른다

설계도면을 펼쳐 시작되는 공사

 

봄이 낙화한 자리에 풋 열매로 주춧돌을 놓고

나뭇가지 사이사이 창을 내고

따가운 햇살을 넉넉히 들여놓는다

천둥과 비바람의 외장재,

속으로 삭힌 시고 떫은 시간들과

기나긴 장마를 말려 빚은 내장재로

둥근 집을 완성하는 모과나무 건축가

가장 먼저인 것은 내부의 견고함이다

내벽에 조밀한 향기를 바를 때쯤

건축감리사인 가을이 다녀간다

예리한 눈길을 통과한 둥근 집

꼿꼿이 받아낸 고통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노란 벽에 배어난 땀방울 진득하다

계절의 모닥불이 사위어가면

 

찬바람이 바삐 가지를 드나들고

모과는 집 한 채 완성하고

, 나무를 떠나간다

 

(시집『모과의 건축학』책나무.2017)

 

 

• 시인님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저는「모과의 건축학」입니다. 이 시는 모과를 빌어 한 사람의 일생을 축약해놓은 시라고 생각됩니다. “찬바람이 바삐 가지를 드나들고 / 모과는 집 한 채 완성하고 / , 나무를 떠나간다” 종국엔 우리 모두 이렇게 떠날 터이지만, “집 한 채 완성하고” 떠나는 모과는 실로 일생을 잘 건축하고 건사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자서전적 인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 한 편을 쓰는 것도「모과의 건축학」에 비유할 수 있을텐데요. 종국에 시인님이 도달하고자 하는 시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시 쓰는 일’은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수록 무르익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내가 할 수 있을까’와 ‘나는 할 수 있어’ 사이를 ‘진자운동’하듯 흔들리며 창작의 길을 걷고 있어요. ‘시의 세계’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으나 저만의 시 세계를 향기롭고 단단하게 건축하고 싶어요. 종국에 저의 시가 도달할 세계가 저도 궁금해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시와 함께 놀고 싶습니다.

 

 

•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시가 한낱 음풍농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이제 낭만적 가난의 시대, 자발적 가난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행복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시를 접했을 때가 막 광주 사태를 겪은 후였고 그 당시 우리 모두는 시인이었습니다. 시인으로 살아가기가, 시인으로 살아남기가 힘든 현대를 살고 있는 시인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하여 주시겠습니까?

 

 

 맞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정말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고 있죠. 불황에 코로나19까지 겹쳐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시를 돌아볼 겨를이 없죠. 저의 경우도 밥벌이와 육아에 몰두하던 시기에 는 허세에 불과했거든요. 시는 현실감과는 온도차가 있으니까요. ‘밥’보다는 ‘간식’에 가깝죠. 현실보다는 이상에 더 가깝구요. 행동하는 젊음과는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영혼의 밥’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를 찾아올 거예요. 저의 시가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눈이 되었으면 좋겠고, 시를 통해 젊음에게도 위로를 주고 싶습니다.

 

 

피스타치오

 

 

아주 오래 전 연애,

벌어진 틈 사이

잘 구워진 슬픔은 담백한 맛일까

 

단단한 기쁨을 깨뜨리면 그 안에 쫀득한 귀엣말

사랑이 익으면 영원하리라 믿던

피스타치오,

저절로 벌어지는 소리를 줍던 달빛 아래

 

솔깃, 달의 솔기가 터지고

 

뭉친 먹구름을 빠져나온 아이가 어둠 속에서 손뼉을 치네

쏙 빠져나온 쭈글쭈글한 두려움,

 

자고 일어나 다시 깊게 잠들어버린 태아의 생애를 지나

하루 권장량의 허무와

허름한 강물 소리,

 

초록의 안쪽은 물기가 사라지고

말랑한 망각은 껍데기 속에서 빛을 바래, 꺼내지 못한 약속의 바깥은 쓸쓸해라

 

버려진 두 쪽의 결기,

온기마저 사라진

 

골목길 옛집을 돌아 나온 바람의 귀가 말라가네

오십천 버들가지 자꾸만 강물을 쓸어 넘기고 그녀의 껍데기도 점점 얇아지네

 

벌어지는 소리를 주우려 피스타치오가 익어가는

 

머나먼 사막 끝으로 술래잡기하듯

 

드문드문 눈발이 날리네

 

(시집『피스타치오』시와반시.2020)

 

 

2017년 첫 시집『모과의 건축학』에 이어 2020년 올해 두 번째 시집 『피스타치오』를 출간하셨습니다. 첫 시집과 비교하였을 때 변모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시집 『모과의 건축학』은 시를 쓰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던 출판사 사장님의 제안으로 출판되었어요. 일반적으로 등단을 하면 습작기의 시들은 모두 버리게 되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인데요, 등단 후 첫 시집은 문단과 독자를 향한 일종의 신고식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묶어놓았어요. ‘습작에서 등단까지’의 기록인데요, 저의 1시집은 부족하지만 시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줄 거라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음을 엿볼 수 있거든요. 저의 첫 시집을 읽으며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어’ 하는 자신감이 생길 거예요. 등단작 5편 중에서 1편을 2시집의 방향성을 위한 마중물로 남겨두었는데요,「미니멀 라이프」가 그것이랍니다.

  2시집인 『피스타치오』는 새로움을 쓰려고 했어요. 자연과 사물, 사회를 바라보는 저만의 눈이에요. 등단 후 문예지를 통해 3년간 발표한 40여 편의 시와 미발표작 20여 편으로 구성되었어요. 1시집에서 2시집으로의 변화는 우화의 과정과도 닮아있습니다.

 

 

• 시가 넋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시인이 자신의 감정에 빠져있으면 넋두리가 될 확률이 커진다고 해요. 그래서 시에는 ‘슬프다, 기쁘다, 안타깝다, 서럽다’와 같은 직접적인 감정은 배제하죠. 시인은 단지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주면 되지요. 글로 그린 이미지를 읽고 독자의 가슴에 시인이 의도하는 감정이 고인다면 그 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시인님의 ‛모과채널’(시인은 SNS를 통해서 많은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과채널’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는 자신의 경험만을 쓰려고 하다가는 언젠가는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는 뜻의 말씀이셨는데요. 마치 제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져서 뜨끔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상상력을 넓히기 위해서 예비시인들은 어떤 훈련을 해야만 할까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라야 독자적인 색채를 띤 시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만 시를 꺼내 쓴다면 언젠가는 고갈되겠죠. 어떤 시제를 마주해도 자유롭게 사유를 버무릴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독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료를 넣어주어야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이치라고 할까요. 여행과 독서를 통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깊은 사유를 통과해야 좋은 글이 되겠지요. 또한 검증된 좋은 시를 많이 읽어야 해요. 다른 시인의 시를 읽지 않고 내 시만을 읽어주길 바란다면 객관적으로 자신의 시를 바라볼 수 없게 되겠죠.

 

 

시가 세상에 나오면 그때부터는 독자의 것이라고 해요. 물론 좋은 시는 알려지게 마련이지만 또한 세상에 발표된 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한 편씩 좋은 시를 소개하여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2018년 카카오 스토리 모과채널을 개설했어요. 시를 쓰시는 분들과는 제가 공부한 시 창작 팁을 나누고 독자들께는 시안(詩眼)을 가꾸는데 도움이 되고자 함입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시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하여 주시겠습니까?

 

SNS 독자님들과 소통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분들도 잠재적인 작가라는 것이에요. 많은 관심분야 중에서 문학의 주변에 머무는 건 학창시절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에게 칭찬 받은 기억과 교내 글쓰기 행사에서 상장을 받아본 경험이라고 했어요. 읽어서 좋았던 기억이 글을 쓰고 받았던 칭찬의 기쁨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거죠. 좋은 시를 많이 읽고 느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를 쓰는 일에 닿게 되어요.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요, 그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문학에 있더라구요. 글을 읽거나 쓸 때 상처를 마주하게 되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가 이루어지거든요. 시를 쓰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독자님들도 시를 쓰는 일에 닿게 되길 바랄게요. ‘높은 가치는 고독하다’라는 말이 있죠. 그 말을 달리 표현하면 어떤 삶이든 ‘총량의 합은 같다,’인데요, 시를 쓰며 외로워질수록 문학의 높은 가치에 다가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연못 아래 깊은 방

 

 

  진흙 속 깊숙한 방,

  줄기로 누워있는

  열 개 남짓 터널을 지나면 그곳에 닿을 수 있어요

  연꽃의 꽃술을 열고 들어가

  꽃대를 지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수중터널을

  수직으로 더듬어 내려서요

 

  그 깊은 바닥에 눈을 감고 누우면 캄캄한 어둠의 나이까지 셀 수 있어요 물렁하고 걸쭉한 진흙 속을 헤집는 미꾸라지 소리, 진흙 방을 입질하는 가물치 소리, 늙은 비단잉어의 하품 소리, 물풀 사이 선녀붕어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 각시붕어가 수초 위에 알을 낳는 소리, 알을 부화시키는 수컷 버들붕어의 지느러미 날갯짓 소리, 비갠 하늘과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뭉게구름 떠가는 소리까지도 이곳에선 다 들을 수 있어요 공명 깊은 터널 속 밝은 귀를 품고 있는

 

  누군가 떨어뜨린 한숨으로 연근을 캐던 뻘 묻은 나이를 짐작하지만,

 

  볕이 닿지 않는 진흙 안쪽은 시들 일이 없죠

 

  연꽃이 피나 봐요

  캄캄한 방이 환해지고 있어요

 

 

 

 D시인으로부터 받은 시인의 시집 속엔 잘 말린 네잎클로버와 손수 쓴 “연못 아래 깊은 방”도 함께였다. 필체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던가. 이 말은 대체적으로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의 단아하고 향기 나는 필체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정갈하고 부지런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담임하고 있는 아이들은 필시 그가 건축한 “연못 아래 깊은 방”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영글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는 필시 좋은 교사,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동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화초처럼 곱게 성장하였을 것만 같은 이 단정한 시인은 “진흙 속 깊숙한 방, 줄기로 누워있”. 이 시인은 “열 개 남짓 터널을 지나면 그곳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곳은 “물렁하고 걸쭉한 진흙 속을 헤집는 미꾸라지 소리, 진흙 방을 입질하는 가물치 소리, 늙은 비단잉어의 하품 소리, 물풀 사이 선녀붕어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 각시붕어가 수초 위에 알을 낳는 소리, 알을 부화시키는 수컷 버들붕어의 지느러미 날갯짓 소리, 비갠 하늘과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뭉게구름 떠가는 소리까지도”, “다 들을 수 있”는 곳이며, “공명 깊은 터널 속 밝은 귀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인은 결코 “시들 일” 없이 그곳에 가 닿을 것이다. 그곳에서 “캄캄한 방이 환해지고”, 시인은 마침내 열락의 “연꽃” 한 송이 피워낼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쓰고 또 쓸 것이다. “출렁이는 말의 파문”을 벼리고 벼려, 끝끝내 “연못 아래 깊은 방”을 완성하고야 말 것이다. 시인의 앞으로의 향방이 더욱더 기대되는 연유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시인의 건필과 건강을 기원한다.

 

 

 

시인이 묻는다.

 

당신도 나도...

 

“왜 시를 쓰려 했을까요?

 

 

 

《홍계숙 시인》

2017년 『시와반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모과의 건축학』,『피스타치오』가 있다.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