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선박사]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나벽솔기자 | 기사입력 2020/05/02 [22:15]

[윤명선박사]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나벽솔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5/02 [22:15] | 조회수 : 25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XVI.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천당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는 영원한 과제일 뿐 그 해답에 관하여는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상학적으로는 신은 믿는 자에게는 계시고, 안 믿는 자에게는 없다. 참된 신앙을 가지면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더 행복해진다. 종교는 신앙, 규범과 가르침의 세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는 개인들에게 신앙을 줌으로써 현세의 고난을 극복하고, 내세에 희망을 주는 순기능을 한다. 노년에는 영성이 발달하므로 쉽게 종교에 귀의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의 환경과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1) ‘신’은 믿는 자에게는 계시고, 안 믿는 자에게는 없다.

 

  신은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영원한 과제일 뿐 그 해결책에 관하여는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이란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하지만, 신이란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마음을 집중할 때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소리’ 또는‘침묵의 소리’라고도 한다. 현웅 스님은 하나님은 누구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의식을 만들어 그것을 가렸다고 한다.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무신론자들은 ‘인간이 신을 창조하였다’고 반박한다. 니체는 20세기의 관문에 서서 세계를 향하여 “신은 죽었다”고 외쳤으며, 이에 가세하여 소련의 우주조종사 가가린은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 후 “나는 신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신론의 배경에는 종교인들의 위선과 가식, 비윤리적 행동 등 종교에 대한 감정적 반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나 자신은 무신론자이지만, 사람들은 종교를 필요로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신은 사라졌다고 선언하면서 인간은 그 틈새를 ‘과학’으로 채우고자 한다. 이러한 무신론은 중세의 종교의 지배를 지나 근대 이후 개인의 지적 능력·오만함과 자유의지의 산물로써 나타난 경향이다(폴 비츠). 유신론자들은 신앙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신론은 신의 존재 여부는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이 물적 증거라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상학적으로는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는 계시고, 안 믿는 자에게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신성과 신은 반드시 있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무신론자이지만 최고의 지혜와 찬란한 아름다움을 스스로 나타내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함을 아는 것이 종교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 문제는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므로 논리적으로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현세의 고난과 죽음의 문제를 신에게 의탁함으로써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신을 대체하는 ‘초인’이 나타나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선언했다. 인간을 죽음과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는 절대자로서의 신이 죽었기 때문에 절대가치와 도덕이 무너져 인간은 길을 잃게 되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며, 삶의 의미를 이제는 하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자신이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때 신이 없는 세상에서 혼란과 허무를 극복할 수 있고,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낡은 가치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초인’이라고 불렀다.

 

  니체는 하늘 세계는 알 수 없으니 현실 세계에 충실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을 극복해가는 것을 인간의 과제로 보았다. 절대자로서의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초인은 곧 신이 된다고 했다. 초인의 개념을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신이 없는 세상 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실천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3) 노년에 ‘신앙’을 가지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 존재의 특징을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과 종교적 실존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미적 실존’은 일상적으로 의·식·주나 성 등의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윤리적 실존’이란 불안과 절망 속에서 고통스런 생활을 하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종교적 실존’은 신앙을 가지고 이들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그는 행복을 이처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인간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미적 실존을 넘어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일상 속에서 불안과 권태, 증오와 좌절 등을 겪으며 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간은 윤리적 실존으로서 불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앙심에 의존함으로써 결국은 종교적 실존으로 승화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신앙은 인간을 바꿀 수 있으며, 고해를 건너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준다고 한다. 그는 개신교 목사로서 체험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실존철학을 제공하고 있다.

  노년에는 영성()이 발달하므로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증가한다. ‘영성’이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철학적으로는 자기초월을 위한 정신적 능력을 말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초월자를 탐구하고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정신을 말한다.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에게는 IQEQ 외에 음악, 운동, 수학, 언어, 공간,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탐구 등에 관한 8가지 지능에 더하여 9번째 지능인 영성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종교적 영성은 인간을 구원의 세계로 인도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

  노년에는 영성이 발달하므로 신앙을 가지는 등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고, 죽음의 문제를 쉽게 해결함으로써 나름대로 행복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 축복이다. 노년에 신앙을 가지면 일반적으로 삶의 만족감과 자존감을 가지게 되고, 고난을 극복하는 에너지가 생기며,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많은 사회조사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영성은 개인의 정신과 태도에 따라 다르지만, 교육을 통해 심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영성은 자아완성의 큰 틀을 구성하게 되며, 말년을 아름답고 성스럽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되므로 노년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펜서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말씀을 굳게 믿으면 절대적 고독을 안겨주는 죽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투옥 생활을 회고하면서 “감옥아. 내 너를 축복하노라. 내 삶에 네가 있었음을 축복하노라. 감방의 썩어가는 밀짚 위에 누워 깨달았느니 인생의 목적은 번영이 아니라 영혼의 성숙에 있음이라.”라고 말했다.  이처럼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영성을 키우면 ‘종교적 행복’(5차원적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4) 종교의 본질은 ‘참 신앙’에 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참 신앙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은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원도 필요 없다. 복잡한 철학도 필요 없다. 우리 자신의 머리, 우리 자신의 가슴이 바로 우리의 사원이다. 나의 철학은 바로 따뜻함이다.”라고 달라이 라마는 설법하였다. 교회나 사찰, 의식이나 절차는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믿음이 그 본질이고, 다른 것은 이를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종교가 조직화되면 신앙의 생명력을 잃고 만다. 불교에서는 신은 자신의 마음에서 찾아야 하고, 마음밖에 있는 것은 모두 허상이라고 한다. 신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진리이다.

  법정 스님은 “신앙을 갖되,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종교는 교리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제도일 뿐, 교회나 사찰에서 나를 찾지 말라고 한다. 모든 종교의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규범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궁극적으로 자유함을 가져야 한다. 그때 사람들은 영적으로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함을 누림으로써 행복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지 성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지. 모든 종교는 하나로 뚫려 있지. 그게 통일이고, 그것이 하나님이고, 그렇게 하나로 뚫려 있는 것을 깨닫는 게 불()이여.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의식을 만들어 그것을 가렸어.(현웅 스님)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 종교가 된다. 그런데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극단적으로 자기들 교리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교조주의가 종교의 본질을 흐리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종교도 열린 자세로 유연성을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고, 관용의 정신으로 다른 종교를 대해야 한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거나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것은 안 된다. 누구에게나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여러 종교들은 공존해야 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가리는 종교인들이 사람들의 믿음을 잃게 만든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참된 신앙이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들은 살고 있다. 참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현세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5) 종교는 ‘신앙’, ‘규범’과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religion)란 용어는 라틴어 religion에서 유래하는 말로‘다시’(re)와 ‘결합하다’(ligion)의 합성어이다. , 절대자인 신을 세우고, 약자인 인간은 그를 믿고 의지하면서 교리를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것을 가르친다(기독교). 한자로 풀이하면 종교에 있어서 ‘종’()은 궁극적인 진리를, ‘교’()는 가르침을 의미하므로 종교란 궁극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불교).

 

  모든 종교는 세상에서 지켜야할 규범을 제시하고, 이를 생활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종교는 이처럼 가르침을 통해 신이나 진리를 깨닫고 믿으며, 교리를 지킬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나 사찰, 의식이나 절차는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신앙이 그 본질이고, 다른 것은 이를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이처럼 종교의 본질은 크게 신앙, 규범과 가르침의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누가 진정한 하나님이고 누가 천국으로 인도하는가에 관하여 종교들은 서로 자기 종교를 내세우고 있다.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진리는 하나이며, 현자들이 이를 여러 가지로 부른다.”고 했다. 그 의미는 절대자인 신은 하나인데, 인간들이 여러 가지 종교를 만들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법정 스님은 “신앙을 갖되,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자기 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지 말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우주에 관한 설명을 했고,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하였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고, 생명과 죽음에 대한 영감을 주는 등 종교는 설명·훈계·위로와 영감의 네 가지 기능을 해 왔다. 법정 스님은 종교의 본질은 ‘위로’에 있다고 본다. 간디는 참 종교는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종교는 현실도피라고 했다. 그때 사람들은 참된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함을 가짐으로써 종교적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6) 종교는 ‘마음의 평화’와 ‘죽음의 문제’를 풀어준다.

 

  종교는 개인들에게 신앙을 줌으로써 현세의 고난을 극복하고, 내세에 희망을 주는 순기능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상에서는 신앙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종교는 공통적으로 현세에서는 믿음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내세에는 구원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질병에 걸리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노년에는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신앙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절대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 특히 노년들은 비교적 낙천적이고, 특히 영적 경험을 한 사람들은 무신론자에 비해 더 행복감을 느낀다.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되면 건전한 생활을 하게 되고, 현세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종교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아니한 사람에 비해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40%나 낮고, 심장병 발병률은 20%나 적다고 한다.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생활의 기복이 안 생기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나아가 종교를 가지게 되면 실용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교회라는 조직체에 들어가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어 상호간에 위로하고 협조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정신적 보험’이라고 부른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리나 자선을 요구하는 불교 교리를 믿고 실천함으로써 공동체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이러한 믿음 때문에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행복으로 가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모든 종교는 이를 최고의 가치를 가진 ‘초월적 행복’이라고 부르면서 인간이 누리는 모든 행복은 이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7) 현대인은 ‘거짓 신’의 노예가 되고 있다.

 

 

  현대사회는 신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무신론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이래 과학과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고, 종교의 기능은 인간의 정신영역으로 축소되었다. 또한 종교의 탈을 쓰고 세상을 현혹시키는 미신·사이비 종교·유사 종교 등이 활개를 치고 있다. 나아가 돈·성·권력 등이 권력화 되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이들이 ‘거짓 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원하는 것은 모두 소유하려고 하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데, 이러한 탐욕을 기독교에서는 우상숭배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는 실체보다 우상이 더 많다고 니체는 지적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행복을 외부적 조건에서 찾음으로써 참된 행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년에게는 물질적 욕망을 덜어내고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짓 신’으로 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유명해진 현각 스님은 “화계사 국제선원을 해체시키고, 열린 그 자리를 기복종교로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 “기복종교=$(), 참 슬픈 일”이라고 했다.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돈이고, 돈이 종교를 지배한다면 ‘돈=최고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돈교’가 종교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돈을 믿는 신앙, 돈이 지배하는 종교: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거짓신은 어느덧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절대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돈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부자가 성공의 잣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돈에 취하게 되면 교회도 사찰도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거짓 신의 노예가 되어 행복이라는 방향타를 잃어버리고, 고해를 방황하고 있다. 돈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된 신앙으로 가는 길이요,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8) ‘도덕적 삶’이 참된 신앙의 길이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현대 종교가 금권만능주의로 흘러 부패했기 때문이다.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는 최근 펴낸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사’에서 “돈은 무서운 것이다. 돈에는 장사가 없다. 훈련을 받아놓지 않으면 거의 백발백중 돈에 무너진다.”고 했다. 오늘날 종교도 돈 때문에 넘어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의 부작용을 보면서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래서 ‘가나안’(거꾸로 읽으면 교회에 ‘안나가’임) 신도들을 양산하고 있다. 교인들은 교리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전도가 될 수 있다.

  교회나 사찰이 대형화되면서 전도나 봉사 등 종교의 근본적인 목적을 외면하고, 외형적이고 물량적인 발전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 원인은 인간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가 선악과로 유혹을 하니 이를 먹어버렸다. 그래서 인간은 탐욕이 생기고 이기적인 동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탐욕을 버리고 선한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도덕적인 삶이 참된 신앙의 길이고, 교회도 참된 신앙을 보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어느 스님은 “신도보다는 스님의 명분을 위해 불사, 불사를 위한 불사가 너무 많습니다. 불교가 신도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겁니다.”라고 진단한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참 종교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껍데기에 불과한 종교를 버려야 한다.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프랑스에서 온 한 패널’)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인 사랑과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 교리에 충실해야 한다. 신도들을 참된 신앙으로 무장시키고, 참된 신앙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말로써 종교를 전파하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효과적인 전도활동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삶이 최고의 길이며, 종교적 삶도 이 길로 가야 한다. 이성과 신앙이 생활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참된 종교가 탄생할 수 있다. 

 

(9)  천당은 살아서 자기 ‘가슴속’에 건설하는 것이다.

 

  지원 스님은 “마음이 열리면 천당도 보인다.”고 하였다. “구원의 길은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통해 있지 않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통하는 길이다. 자기에게만 신이 있으며, 거기에만 평화가 있다.(헤세)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고, 하늘이란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천국은 지금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일요일에 산에 가면서 내자(內子)에게 이런 말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하였다. “당신은 하나님 만나러 교회로 가고, 나는 하나님 만나러 산으로 간다네. 당신은 죽어서 천당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살아서 내 마음속에 천국을 건설하고 싶소.” 천당이 있는 곳이 다르고, 천국에 가는 길이 다르니, 그 갈림길에서 인간은 갈등을 일으키고 정신적 방황을 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어느 길로 갈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이 행복으로 가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인간을 위해 종교가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천당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자기 가슴속에 건설하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할 때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지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고, 영원한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너스 아이아라 법문집 중에 나오는 ‘예삐 바다’는 말한다.

 

지금 즉시

그대 내면세계로 들어가라

단 하루라도

행복한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인생이 되리라

 

어제보다 내일보다

더 소중한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들을

감사와 믿음으로 기쁘게 맞이하라

 

나 밖의 삶이 아닌

내 안의 삶으로 충만할 때

존재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리라

 

그대가 생각하고

그대가 상상하고 있는

 

천당과 지옥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이 현실에서

그대 의식 속에

충만한 기쁨과 행복이 가득 넘칠 때

바로 그곳이 천당이요

그대 의식이 고독하고 외로울 때

바로 그곳이 지옥이다

 

(10) 신도들이 신앙을 ‘생활화’해야 종교가 부흥한다.

 

  종교인들은 교리를 익히고 교리대로 사는 것이 참 신자이다. 그런데 종교에 따라 교리가 다르고, 같은 종교라도 교리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 구원으로 가는 길이 다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과 교감하는 방법으로는 기독교에서는 기도, 불교에서는 명상을 들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신과의 교류를 하는 방법도 있다. 신과 자신이 직접 교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교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교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는 참된 신앙을 가지고 교리를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지만, 신앙대로 살지 못하고 사회에 모범이 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에서는 신앙을 생활화하지 못하는 신도들을 가르켜 ‘선데이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일요일에는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도 하지만, 월요일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 신앙대로 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말씀대로 살아서 정직하고 깨끗하며 소금 역할을 함으로써 신용과 정직과 청결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향이 있다. 많은 종교인들이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종교를 불신하거나 신도들이 등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행복은 종교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고 있는 데서 나온다. 동남아시아는 종교박물관이라고 부를 만큼 불교·이슬람교·힌두교·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은 아주 흡사하다. 종교는 개인들에게 믿음을 줌으로써 현세의 고난을 극복하고, 내세의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욕망을 죄악시하고, 보시와 나눔을 근본 교리로 하는 종교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낙천적으로 항상 웃음을 띠며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다.

  덴마크 사람들은 교회 출석률이 3%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이 땅에서 소망이 거의 이루어졌으며, 믿음이 곧 생활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GDP가 세계 12위로써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교인들은 늘어나고 종교는 더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교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그들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기본가치가 무너지고 있으며, 금권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근본적으로 구조적 개혁 없이는 나라의 희망이 없다. 종교인들이라도 앞장서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헌신해야 하지 않을까?  

 

 

(11) 믿음으로 ‘봉사하고 사랑하며 나눠주는 것’이 참 믿음이다.

 

  개신교가 봉사로 하나가 될 것을 다짐하는 제3회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당신은 선한 사람입니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엑스포는 “믿음으로 행하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나눠주자”는 메시지를 내걸고 있다. “주여, 섬김의 은혜를 주옵소서! 한국 교회는 개별 교회 중심적이고 교단 이기적인 사회봉사를 넘어서 더욱 봉사의 일치를 추구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봉사로 하나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의 본질은 사랑과 자비에 있으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참 신앙이요 참된 종교이다. 이 길이 종교가 나아가야할 길임을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는 확인하고 있다.

  “이번 엑스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천의 장”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한국 교회가 섬김과 봉사를 통해 한 차원 높게 부흥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봉사 네트워크 구축,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 실천, 민족 ‧ 언어 ‧ 이념 ‧ 문화 ‧ 장소에 의한 차별 없는 섬김, 정부와 NGO의 협력,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약속하는 ‘한국 교회 디아코니아 비젼’을 선포하였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을 하고 많은 신도들을 양산했지만, 오늘날 세속적인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순수한 신앙 활동을 외면하고 대형 교회와 양적 확산을 지향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개신교가 그 동안 130년 간 사회봉사를 해왔다고 하지만, 말씀대로 하지 못하였고 너무 미약하였다.

  이제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가 되기를 결의한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요 앞으로 나아갈 지향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뜻이 깊다고 하겠다. 그래서 믿음과 선교에 치우치지 않고 말씀에 충실한 섬김과 나눔을 행하는 교회로 거듭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노년들이 앞장서서 봉사활동을 하면 개인적으로 행복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12) 교회는 ‘참된 진리와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로 참된 교리를 떠나 과오를 범해온 것이 사실이다. 김선주 목사는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이라는 책에서 한국 교회의 목사는 ‘영혼을 지배하는 권력자‘로, 교회는 ‘이념의 성전’으로, 설교는 ‘소비되는 권위의 상징’으로, 헌금은 ‘윤리를 망각한 영혼의 환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목사와 교회와 설교와 헌금이 말씀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너무도 생생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을 쓸 때는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폭탄선언을 했다고 한다. 교회는 이러한 지적을 되새기고 ‘참된 진리와 신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제 목사가 된 그는 교리대로 목회를 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예수처럼 살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헌금 많이 한다고 축복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경쟁적으로 하면서 세속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내가 위로해주고 치유해줄게, 오라”고 하는 것보다 “옆에 앉아 손잡고 들어주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신도들 옆에서 봉사하면서 말씀과 신앙으로 인도하는 참 목회를 하고 있다.

 

  말씀을 이해하고 전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신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교회도 살고, 신도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세속적인 교회의 대형화나 신도들의 양적 확대에만 골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참된 방법으로 전달함으로써 고해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13) 종교 간의 불신을 없애고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한다.

 

  종교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종교가 행복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불행을 낳기도 한다. 헌팅턴은 21세기를 ‘문명의 충돌’시대라고 했을 때 이는 곧 종교의 충돌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종교전쟁이 세상을 어지럽혀 왔다.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종파들이 자기 종교의 교리를 독단적으로 합리화시키면서 전쟁을 일으켜 왔다. 아직도 이슬람교의 수니파(근본주의)IS(이슬람국가)를 세우고 세계를 향하여 테러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이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종교는 배타적 관료주의에 빠지지 말고, 모든 종교에 관용적인‘열린 교회’가 되어야 한다.  

  21세기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 선언 - 21세기 아소카 선언’ 초안은 “종교인이 독선과 아집을 조장하고, 분쟁과 갈등을 일으켜 온 것을 반성합니다. 이웃 종교를 진정한 이웃으로 대하는 데 충분치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기 종교 교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고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태도가 종교간 분쟁을 일으킨다. 다른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종교 간의 평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불교 스님들은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종교 간의 공생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에 다양한 종교가 있다는 것은 그 바탕이 사랑과 자비이기 때문에 매우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무신론자도 종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종교나 교회는 변화되고 거듭나야 세계평화는 상존할 수 있다.

 

(14) 그래도 ‘참된 교회’와 ‘참된 사찰’은 있다.

 

  오늘날 교회나 사찰들이 대형건물을 짓고 돈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세상의 화살을 맞고 있다. 그래도 참된 교회와 참된 사찰은 있다. 사랑과 자비가 곧 신이요, 종교의 본질이라고 한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교회나 사찰이 참된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에 ‘연탄교회’가 생겼다. 낡은 전파사를 개조해 만든 교회라는 이름의 사랑방이다. 원주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밥상공동체. 연탄을 나눠주는 운동을 벌이던 허기복 목사가 서울로 와서 연탄은행을 열었다. 허 목사는 골목마다 누비고 다니며 안부를 묻고, 연탄을 들여놓고 쌀과 라면도 드리고, 노인들에게 희망을 나눠주며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면서 각박한 세상에 사랑을 전파시키고 있다. 참된 최고의 행복이 바로 이러한 사랑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그가 바로 참된 목자요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은 불광사의 창건 이유를 “스님뿐 아니라 종무원과 신도들의 건강과 노후를 책임지고, 나아가 송파구 전역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를 실현하는 사찰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기복 신앙에 빠져있던 불교를 개혁해서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사찰은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공동체이므로 ‘신행공동체’를 만들어 불교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송파노인전문요양센터’는 노인 일자리 카페, 치매지원센터, 복지센터, 요양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가 다 감당하기에는 능력의 한계가 있으므로 종교계가 이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노년에게 정신적 안정과 평화를 전하는 기능은 종교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다. 만년을 보다 행복하게 보내면서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베푸는 ‘자비’가 참된 종교정신이다. 노년에는 이러한 운동에 앞장서서 질 높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적 행복을 누리면서 자아를 완성하는 길이다. 종교가 이러한 횃불을 높이 들고 세상을 밝힐 때 세상은 희망을 찾고 밝아질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