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선박사]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20/04/12 [22:11]

[윤명선박사]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4/12 [22:11] | 조회수 : 74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XIII.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형태는 다양하다. 노년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사랑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사항하는 것이다. 신체기능의 약화로 에로스 사랑은 점차적으로 추구하지 않게 되고, 부부간에 친구처럼 정으로 살아가게 된다. 남은 감정을 다 사용하고 가야 하므로 환경적 변화와 함께 베풀며 살아가는 아가페 사랑으로 진화한다. 그렇지만 노년에도 사랑은 필요하며,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할 비밀병기이다. 나아가 사랑은 인간애로 승화되어야 한다.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부부간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따로 없다. 구원으로 가는 길은 사랑하는 마음에 있으므로 모든 것을 사랑하다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이 노년의 마지막 과제이다.

 

(1) 은퇴 후 부부 사이에 ‘개별성’과 ‘공동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의학의 발달과 경제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은퇴 이후 부부가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졌다. 적어도 30년 내외의 세월을 더 부부는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  핵가족제도로 바뀌면서 자식들은 결혼을 하면 분가를 해 나가고 가정은 이른바 ‘빈 둥우리’가 된다. 은퇴를 하게 되면 일로 맺은 인간관계는 모두 끊어진다. 남은 시간을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함께 지낼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서 노년에는 부부관계가 더 중요하게 된다. 이제야 인생의 최종적인 보루가 가족공동체이고, 그 중심에 부부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가능하고, 그 공간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은퇴 후 한 동안은 부부가 사이좋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부는 사소한 문제에도 의견이 다르고 합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주 충돌하게 된다. 각자가 일을 하고 저녁시간에만 함께 생활하는 경우에는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 부닥칠 일도 적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데,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심리적으로 지구력이나 인내심이 약해져 짜증이 나고,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고 심해지면 싸움으로 변한다. 미리 노후문제에 관하여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모든 문제를 상의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것은 힘들다. 부부가 원만하게 공생하기 위해서는 은퇴 후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계획표를 먼저 작성해야 한다. 어떻게 시간을 배분해야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며,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선택하고, 이들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시간 배분을 현명하게 합리적으로 하는 것이 노년의 행복한 인생을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날그날을 되는 대로 살아가면 언제라도 부딪칠 수 있으며,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면 몸과 마음의 에너지까지 말라간다. 남은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여 의미 있는 삶을 누리도록 계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은퇴 전에는 각 가정의 환경에 따라 가사문제를 결정했지만, 은퇴 후에는 부부가 함께 살면서 가사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전업주부의 경우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렸지만, 은퇴 후에는 함께 생활하므로 평등의식에서 동등하게 분담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성격을 가진 남편은 가사분담에 소극적일 수 있고, 심지어는 여전히 가사에 무관심할 수 있다. 성역할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사분담의 문제는 단순하게 노동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개인의 취향이나 능력에 따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노년의 첫 번째 과제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생활을 함으로써 경제문제를 풀어갈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주어진 경제능력과 조건에 맞추어 생활을 해야 하는데, 서로 취향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면 이를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 경제능력이 갖추어져 있고, 수입이 충분하다면 오순도순 생활계획을 짜면서 풀어갈 수 있겠지만. 또한 무엇을 할 것인가도 부부 사이에 의견이 다른 때 충돌이 생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성·성격·취향·신체 등의 차이로 생기는 경우에는 각자 다름을 인정하고 일정을 잘 조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독자적으로 생활하는 ‘개별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동성’을 잘 조정하고 조화시켜야 각자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를 만들 수 있다.

 

(2) 노년에도 부부간의 사랑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누구나 행복을 찾아 결혼은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연애는 사랑만으로 가능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어서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부부는 각기 배경이 다른 가정에서 성장했고, 성격에 차이가 있으며, 꿈이 다르고, 대화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가정의 평화를 누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좀처럼 풀기 힘든 난수표가 부부관계이다. 가정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메워가야 한다. 이제 노년기에 들어선 부부는 높은 산을 넘어 하산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산에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겨야 낙상할 수 있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중년 이후의 부부 유형으로 웬수 부부, 남남 부부, 친구 같은 부부, 애인 같은 부부, 간병인 부부 등을 열거하고 있다. 부부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그 방법에 따라 부부의 모습은 달라진다. 애인 같은 부부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노년들이 그렇게 살까? 많은 사람들이 웬수 부부·남남 부부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건강을 지켜 간병인 부부는 안 되는 것이 좋다. 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 같은 부부가 이상적인 형태로 노년에 지향해야할 모델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두 개체로써 ‘이심별체’(異心別體)이다. 마음도 다르고 몸도 별개이다. 가정에서 불행의 출발은 부부가 가면을 쓰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서 나오므로 ‘예의’라는 속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애인의 경우는 성격이 다른 것이 매력이 되지만, 부부 사이에는 성격이 달라서 싸움을 한다. 노년에는 서로 적응을 하고, 때로는 포기하기 때문에 이러한 덕목들이 지켜지는 경향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달려가면 가정이 파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개체로서 부부가 생각이나 의견을 맞춰갈 줄 모르면 가정은 싸움터가 변해버린다. 가정 안에서 부부는 함께 산다는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남성이 늙어서 필요한 다섯 가지는 아내, 집사람, 마누라, 애들 엄마, 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은퇴 이후에는 남성은 아내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내에 대하여 잘 하라는 이야기다. 은퇴 후에는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의견 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각자 전담 파트를 만들어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취미를 비롯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면 시간을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폭을 넓힐 수 있어 은퇴 이후에는 부부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부간에는 친밀감이 가정의 접착제 노릇을 한다. 부부는 독립된 인격체이므로 노년에도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다른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인정하고, 일정한 자유를 주며, 함께 있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서로 독자성을 존중해야 지속될 수 있다. 마주보지 말고 공동목표를 바라보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노년의 행복이다. 친구처럼. 인생의 끝자락까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과 사랑을 꾸려가는 것은 협업에 해당하므로 노년기에도 각자 소임을 다하면서 사랑을 가꾸기 위해 협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서로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

 

(3)  노년의 부부 사이도 사랑을 위한 ‘연료’는 필요하다.

 

  노년이 되어 일상 속에서 부부 사이에 권태를 느끼게 되면 인생이 지루해지고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노년의 사랑에도 이처럼‘쾌락적응현상’이 찾아온다. 노년에는 에로스 사랑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사랑은 스스로 타오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부부 사이에도 사랑을 태우기 위해서는 ‘연료’를 준비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이요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줄 때 행복은 솟아오른다. 그래서 사랑의 불을 지펴서 꺼지지 않게 관리함으로써 삶의 동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통의 창구와 사랑의 통로로서 대화가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선물을 하고, 이벤트를 만드는 것은 기본적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항상 감사하고 칭찬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 좋다. 음악 감상을 하러 음악실을 찾거나,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즐기거나, 박물관을 쫓아다니며 새로운 지식을 얻는 부부들은 행복하다. 즐거움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관심사를 넓히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그 분야는 무궁무진하므로 두 사람이 마음만 있으면 행복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래야 어느 하나에서 지루함을 느끼더라도 다른 대상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노년에는 취미와 여가 활동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특히 정신건강과 건전한 시간 보내기를 위해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부부가 함께 탱고를 추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데, 그들의 행복지수는 매우 높은 편이다. 평소 하던 취미가 있다면 계속 유지를 하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등산·스포츠·헬스·산책 등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40%). 다음으로 친구 모임, 동창회, 동호회 등의 교류(35%)와 영화·연극·TV 등을 관람(18%)하며 시간을 보낸다. 부부가 의견을 모아 선정해서 규칙적으로 하면 지속적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은 조건만 허락하면 견문도 넓히고 배움을 통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관계 위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 생산성이 있거나 보람을 느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좀 더 보람 있게 삶을 마감하려면 단순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전문성을 살리거나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년의 행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삶의 질을 높여가는 데서 찾을 수 있다.

 

(4) 노년에도 부부간에 ‘대화’는 활성화되어야 한다.

 

  니체는 결혼이란 ‘긴 대화’라고 말했다. 대화는 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사랑의 연료이다. 결혼생활은 대화로써 이루어지며, 대화의 기술을 잘 익혀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노년에는 부부만이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더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잘 안 되고 소통능력이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주된 원인이다. 노년이 되면 부부간의 대화는 더욱 줄어들고, 심지어는 단절되는 가정도 있다. 이것이 노년의 고독과 불행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조사한 ‘부부간 대화시간’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부부 간에 대화시간은 하루에 30분 이하가 가장 많고(38.4%), 그 다음으로 대화를 하다보면 싸우게 되므로 피한다는 답변(31.5%)이 나왔다. 대체로 남성들은 밖에서는 말을 잘하면서도 가정에서는 말을 잘 안 하며, 여성들은 잔소리를 함으로써 대화가 잘 안 된다. 배우자 사이에 대화가 안 되면 간극이 생기고, 집안은 절간으로 변하며, 가정에서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대화야말로 사랑의 기초이고,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는 통로이다. 부부간의 대화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말틴 부버는 “부부 사이에 대화는 ‘너와 나의 관계’, 즉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진정한 ‘우리’가 형성된다. 그런데 많은 가정에서는 부부 간에는 대화가 안 이루어지고, 자녀들을 통해 3각관계로 행해지고 있다.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분가해 나가고, 이제 두 부부만 살고 있는 환경에서는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직접 대화를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노년의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한 최대의 과제가 대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친구처럼 대화하라. 친구처럼 대화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우려 경청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대화의 목적이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있으므로 들어만 주어도 문제의 반은 해결된다. 그런데 남성은 화성, 여성은 금성에서 왔으므로 대화의 목적이 다르고, 소재와 방법이 다르니 대화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년이 되면 대화의 소재가 말라버리므로 공통관심사를 찾거나 같은 취미를 만들어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혀’를 통제하는 것이다. 혀는 잘만 쓰면 사랑의 병기가 되고, 잘못 쓰면 전쟁의 무기가 된다. 세치밖에 안 되는 자기 혀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화를 일으키고 불행을 불러온다. 부부 간의 싸움은 대체로 말조심을 하지 않음으로써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공연히 상대방을 자극하지 말고, 참고 또 참자. 가정이 절간으로 변할지라도 화가 났을 때 말조심하는 것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대화하는 기술을 연마하여 부부가 말의 성찬을 베풀면 행복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5) 부부 사이에도 ‘프라이버시’는 존중되어야 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일 뿐이다. 노년에도 상대방을 소유하고 지배하려고 시도하면 그 새는 공중에서 날기를 동경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한 마리 새와 같은 것: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놓아두라. 노년기에 들어선 부부 사이에도 독자성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서로‘프라이버시’는 존중해야 한다. 같은 집 안에서도 부부가 각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거나 서로 독자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공간에서 항상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실증이 나고 거리감은 깊어진다. 때로는 숨이 막힐 때도 있을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전연 다른 두 개체이므로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다른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 노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시인  칼릴 지브란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서로를 소유하고 속박하려는 것은 일종의 욕심으로 사랑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각자가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인정하고, 일정한 자유를 주며, 함께 있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도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62.5%의 배우자들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므로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더라도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것들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도 새삼 지켜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 지 조사를 했더니 카카오톡 메시지 25%, 비자금 20%, 몰래 산 물건 10%, 몰래 선 보증 5% 등의 순으로 나왔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노년의 외로움은 더욱 자랄 것이다.

  아내가 남편의 허락 없이 이메일을 보고 “잘 도착했어요?”라는 문자를 발견하고, 상대방 여성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낸 사건이 있다. 이에 대응하여 남편은 사생활 침해로 아내를 고소한 사건에서 법원은 이메일을 훔쳐보는 것은 사생활 침해로써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하였다. 이처럼 부부 사이의 프라이버시는 일종의 권리로써 법적으로 승인되었다. 부부간에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신뢰가 쌓이고 가정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부부를 남남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6) ‘맞춰가면서 살아야’ 가정을 지킬 수 있다.

 

  부부 간의 사랑이란 함께 공동목표를 바라보며 손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생택쥐베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연애시절에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마주 바라보지만, 결혼한 후에는 멀리 가기 위해 한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 걸어야 한다. 노년기에 들어서서도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 공동목표를 향하여 손잡고 걸어가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남녀 사이에는 뇌의 구조와 감정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과 같아서 보폭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의 목표는 원대하게 잡되, 부부는 몸과 마음을 합쳐 그곳에 도착하도록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헌신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가정이란 흔들리는 배와 같아서 부부 간의 갈등을 잘 풀어야 가정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남자가 은퇴를 하고 가정에만 머물게 되면 새로운 역할을 찾아서 해야 한다. 가사를 돕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취미를 만들며, 갈등을 안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황혼이혼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해야 한다.  

  2013년도 사법연감’에 의하면, 이혼 이유의 47.3%가 성격 차이라고 한다. 성격은 쉽사리 고칠 수 없으므로 가정이 평안하려면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맞춰가며 살아야 한다. 부부가 같이 늙어간다는 것은 닮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외관만이 아니라 생각이 닮아가야 한다. 자기주장을 끝까지 관철하려고 하면 충돌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습관화되면 가정은 전장으로 변한다. 이혼할 때 가장 흔히 하는 말이 “우리는 너무 달라”라는 말이다. 부부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맞춰가는 것: 이것이 결혼생활이 성공할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이다.

  노년에는 호르몬의 분비로 인해 성격의 변화가 생겨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는 자연현상이므로 그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부부 간에 생기는 갈등은 함께 사는 한 끝이 없다. 한 노년은 아내가 좀처럼 변하지 않자 자신이 아내에 맞춰가면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내가 변하는 것 보다 자신이 변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끝까지 인내하고 휴전상태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부부 간의 의무이고, 숙명이다.  “헛된 평생의 모든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전도서 99)고 솔로몬은 권고했다. 서로 다른 점을 맞춰가며 살아가는 것이 지속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7)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수적이다.

 

  결혼을 한 후 말다툼·비난·경멸함·무시함·과민한 대응 등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부부간에 갈등과 싸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을 잘 극복하지 못하면 전쟁으로 번져간다. 웨딩 케이크가 가장 위험한 음식물이라는 풍자가 회자되고 있다. 결혼을 하면 3주간 탐색을 하고, 3개월간 열렬하게 사랑하다가, 3년간 싸우고, 나머지 30년간 인내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이와 비슷하다.

  부부싸움은 소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은 치약을 위에서부터 짜고, 다른 사람은 밑에서부터 짜기 때문에 싸운다. 한 사람은 TV 프로그램을 계속 보려고 하는 데, 다른 사람은 그만 끄고 자자고 하면서 싸운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다른 점이 많으면 부부간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 원인은 멀리는 성격의 차이에서 나오지만, 가깝게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격은 변하기 어려운 법: 상대방의 성격을 고치려고 하면 가정이란 그릇을 깰 수 있으니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맞춰가며 사는 길밖에.

  영원한 휴전은 없다. 부부관계는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든 문제가 이성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욕망이 살아있고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언제나 전쟁은 재발한다. 그러므로 인내하지 못하면 가정은 파탄으로 달려간다. 그러니 결혼생활의 최선의 방법은 ‘휴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노년에는 특히 감정이 메말라버리고 다툼이 일상화되기 때문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인내심’이다. 참고 또 참고, 무기를 꺼내지 말고, 그냥 살아가는 것: 이것이 가정의 평화이고, 노년에 행복이 있다면 바로 이런 휴전상태다.

 

  화가 날 때 참고 또 참아야 된다. 참을 인자 세 개를 실천하는 곳에 비로소 가정의 평화가 올 수 있다. 내가 죽을 때 전쟁은 끝나고, 남녀가 함께 묻히는 공동묘지가 되어야 가정은 살아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부부싸움에서는 저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니체는 인생이란 ‘긴 인내’라고 말했다. 인내함으로써 가정의 평화가 올 수 있고, 행복이 깃들 수 있으니 인내야말로 결혼생활에 평화를 가져오는 명약이 아니겠는가? 인내는 손해가 아니라 이기는 방법이고,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그래, 참고 살자.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

 

(8) 노년의 사랑은 ‘아가페’로 승화되어야 한다.

 

  사랑은 연령대에 따라 그 결이 다르다. 젊었을 때에는 주로 에로스 사랑을 하다가 결혼을 한 후에는 사랑이 점차 정으로 변하고, 노년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아가페’로 승화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이타적 사랑에 있다. 노년에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애로 승화되어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인생의 비밀병기이며, 사랑하는 한 그 삶은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 자기가 죽거나 종교적인 사랑이 아닌 한. 노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매체가 바로 ‘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부 사이에 애(사랑)는 식어가고 정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내려오고 있다. ‘정=애정-애’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니체는 두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는 사랑을 ‘우정’에 가깝다고 하면서 부부 간에도 이러한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했다. 뜨거운 사랑은 쾌락적응현상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이고, 우정 같은 끈끈한 사랑이 변하지 않고 가정을 묶어주기 때문이다. 노년에는 부부 사이에 생활에 다양한 변화를 주면서 쾌락적응현상을 극복해야 하며, 취미활동을 함께 하는 등 동적인 변화를 줌으로써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동인이 친구처럼 대화하면서 일상을 사랑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가정이 핵가족으로 변하여 가족 간의 만남이 적어지고, 일을 하지 못해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노년에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부간의 대화와 사랑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노년에 필요한 자세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부부 간의 사랑의 본질은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아가페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본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자식의 부모사랑은 그 결이 다르다. 그 연장선상에서 가족과 이웃사람들을 사랑하고, 나라와 지역공동체를 사랑하면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 노년의 행복은 꽃을 피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모습은 에로스로부터 아가페로 승화되어 간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아가페’는 희생을 본질로 하는 초월적 사랑으로 이성적이고 영원하며 이타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아가페는 희생을 그 본질로 하고, 주는 것을 그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공동체적 행복을 누리게 된다. 노년에는 마음을 비우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성품이 형성되므로 아가페 사랑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년에는 아가페 사랑을 함으로써 사회에 귀감이 되고 마지막 행복을 누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돌봄이 필요할 때 그 역할은 결국 부부가 하는 것으로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요 최후의 책임이다.  

 

 

(9) 노년에도 ‘성생활’은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성욕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이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성욕을 먹고 입는 욕구, 부와 명예의 욕구와 함께 인간의 3대 욕구로 들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남녀 간의 사랑이란 아무리 별나라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더라도 그 본질은 성욕을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은 육체적 관계를 넘어 정신적 교류를 하는 것으로 부부 사이에 유대감을 강하게 만들고, 소외감을 극복하고 삶의 만족감을 주는 순기능을 한다. 그런데 노년의 성은 문화적 차이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아직도 금기사하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예전에는 성을 생식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정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성을 (성적) 쾌감을 느끼기 위한 유희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의 본질은 쌍방 간의 교감이고, 상대방이 이를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그 기능이 달려 있다. 노년에도 예외는 아니다. 노년의 성은 생리적인 만족감을 추구하기보다는 심리적인 만족감에서 찾는 것이다. 노년들은 충동이 아니라 마음에 이끌리는 감성적인 성의 성격이 강하다. 노년에는 성기능의 퇴화로 성교를 못하는 등 생리적인 기능은 퇴화하지만, 애무나 스킨십 등을 통해 교감을 하면서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노년에도 건전한 성생활을 통해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중요한 방법이다.

  2002년에 개봉한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노년의 성 문제를 제시하였다. 두 노인이 만나 사랑을 하고 성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노년의 성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문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반응은 ‘늙어서 주책’이라고 보는 부정적 시각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수긍하는 긍정적 입장이 많았다. 100세 시대에 들어와서 노년의 성 문제는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직까지는 자식들이나 사회적 이목이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노년들의 사랑이 추하다거나 비난받는 시대는 지나갔다. 노년에도 성을 통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노년의 로맨스의 합성어인 ()맨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혼자된 노년들은 새로운 사랑을 통해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성생활에 은퇴는 없다는 말을 서양학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이는 과학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현상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노년에는 분명히 성생활에 한계가 온다. 노년에도 건강이 허락하면 성생활은 계속할 수 있으며, 체질에 맞게 성을 누리면 오히려 건강에 좋다. 건강이 유지되면 성적 욕구는 계속 발동하지만, 노년에는 성생활의 강도와 빈도가 적어진다. 남성은 발기기능이 약해지고, 여성은 윤활액이 분비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남녀 공히 오르가즘을 느끼는 강도가 약해지고 그 횟수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성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년에는 성은 심리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성교의 방법은 다양하므로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성교보다 중요한 것이 애무다. 친밀감을 가지고 부드럽게 접촉해야 한다. 성교하기 전에 포옹·키스·접촉·마사지와 같은 전희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고, 성적 만족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교 후에도 바로 남남이 되지 말고 다정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노부부 사이에 성생활을 지속하면서 성적 쾌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결국 두 사람이 그 방법을 터득하고 알맞게 개발해야 한다. 방중술은 성적 수행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남녀 사이에 성기능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에 관한 의사소통을 통해 성생활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은퇴 후에는 여성의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그 역할도 평등관계로 바뀜에 따라 성적 관계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적 문제는 정신적 문제로써 성행위가 목적이 아니라 즐기는데 집중하라고 엘리스·하퍼는 권고한다.

  성생활에도 왕도는 없다. 서로 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협력한 길밖에는. 노년에도 성은 아름답고 건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상대방을 받아드리고 자존감을 세워주어야 한다. 노년의 성기능의 약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밀함이 노년의 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성적 만족은 성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년의 사랑은 육체보다는 그 존재를 사랑하는 데 특징이 있다. 불완전한 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뿐이다. 노년에도 건전한 성생활을 하면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 마지막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10)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따로 없다.

 

  파스칼이 연애감정은 언제든지 생겨난다고 한 것처럼 사랑에는 연령이 따로 없다. 노년에도 연애감정을 가지면 가슴이 뛰고 마음을 젊게 만든다. 루이 벵상 토마는 ‘사랑과 믿음과 유머’만이 노화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반드시 육체적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정신적 사랑에 머무를 수도 있다. 사랑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랑은 인생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느끼고 실천해야 하는 보물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평생 젊음을 유지하며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다.

  노년에는 사랑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생성되지 않으므로 뜨거운 사랑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은 지속된다. 이것이 노년의 사랑의 이율배반인가? 인생 100세 시대에 노년의 사랑은 금기시되고, 비난의 화살이 날아드는 시대는 지났다. 젊은 여자를 쫓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나이 값도 못하는 주책이라고 비난하자 그 노인은 “이것이 마음을 젊게 하는 묘약”이라고 대답했다(괴테). 사랑하는 감정은 영생하며, 사랑은 구원으로 가는 길이다. 죽을 때까지 이러한 감정을 간직하면서 사는 인생은 아름답고 풍성하지 아니한가?  

  어느 유명한 영화감독은 최근에 100번째 영화를 크랭크인하면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사랑 얘기를 할 때가 됐다”고 말했으며,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기자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서슴없이 ‘연애’라고 대답하였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이들의 말은 인간의 본성을 반증하는 것이고, 누구도 윤리의 잣대로 심판해서는 안 된다. 스탕달은 “연애에는 나이가 상관없다.”고 했다. 괴테의 마지막 사랑처럼 노년의 사랑은 실현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뿐,  누구나의 로망 아닌가?

  사랑의 감정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가장 신비스런 신의 선물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할 것이 남아 있는 자,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리라!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상관없다. 노년에도 사랑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젊은 여성의 체취는 노년에게는 불로초와 같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남성들에게 성적 판타지는 자신의 마지막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감정은 평생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낭만적인 인생이요, 지속적인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11) 사랑에도 ‘과유불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노년에도 열애가 가능할까? 노년에는 사랑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을까? 노년에 걸맞는 사랑이 따로 있는가? 그렇다면 사랑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사랑을 머리로 하는 것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랑을 한다.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면 이성이 마비되고, 감성의 포로가 된다. 사랑 중독자들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몸과 영혼을 파괴시키는 마약과도 같은 사랑을 한다. 이것은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일종의 ‘인공행복’이다.

  사랑은 뜨거울수록 좋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사랑이 어렵고 그 생명은 짧다. 루쿠레티우스는 사랑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을 더 많이 주므로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사랑이 뜨거울수록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열애를 선망하고 실천에 옮긴다. 그러나 노년에는 이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신체적 기능이 약화되기도 하였고, 노년에 대한 편견도 작용을 하며, 무엇보다 삶의 지혜가 이러한 사랑을 기피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년에는 가족의 부담이 있고, 사회적 비난이 두렵기 때문에 자제하는 경향도 있다. 노년에는 사랑도 관조하는 자세로 펼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으로 만족하면 평화스럽게 사랑을 누릴 수 있다.

  사랑이 다 타고 나면 재만 남는다. 노년에는 별로 탈 것도 없지만. 자신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사랑이 불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 열렬한 사랑일수록 그 그늘은 어둡고 길다. 그러므로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년의 사랑은 단순한 집착이거나 성적 욕망의 대상이어서는 안 되며, 두 마음이 하나로 결합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신적 사랑이 없는 불꽃은 육체적 관계일 뿐, 이를 사랑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노년의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만으로도 삶에 활력을 줄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불꽃을 피우기 위해 모든 시간과 정력을 바치는 것은 인생의 낭비요, 그 결과는 피폐한 기억과 후회만을 남긴다. 사랑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칙은 적용된다. 사랑도 과도하게 넘쳐서는 안 되고, 적정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두 사람 사이에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하고,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원사가 화단을 가꾸듯 많은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이 노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12) ‘불륜과 사랑 사이’에서 사람들은 방황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이성과의 섹스를 탐하는 경향이 있다. ‘불륜’이란 넓은 의미에서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말하는데, 좁은 의미로는 기혼자가 다른 이성과 성행위를 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는 일부일처제라는 제도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 제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노년에도 불륜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포털 사이트 애슐리 메디슨은 ‘인생은 짧다. 외도를 즐겨라,’라는 슬로건을 올려서 한때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외도를 하는 이유는 쾌락적응현상에서 오는 권태를 극복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남성들은 수컷 본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외도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가사노동 때문에 바람을 피운다는 프랑스의 한 사회조사가 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고, 종국에는 파멸을 자초하고 말므로 건전한 성생활을 누리는 것이 행복을 지키는 길이다.

 

  불륜하면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난다. 사진작가 킨 케이드(크린트 이스트우드)는 메디슨 카운티에 지붕이 있는 다리를 찍기 위해 갔다가 가정주부인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리프)를 만난다. 고독한 한 남자와 결혼 15년차로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한 여성이 만나 출장 간 남편이 돌아오기까지 3일간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뜨겁고 흡족했다. 킨 케이드는 떠나기 전날 함께 떠나자고 청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유부녀로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한다. 그는 그녀의 선택을 받아드리고 홀로 떠난다.

  이 영화 속에서 전개되는 두 사람의 진솔한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가 회자되는 이유는 가정과 사랑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일부일처제는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인된 제도로써 부부 사이의 성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독점성이 인정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과의 성행위는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비난을 받고, 나라에 따라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 왔다. 성생활에서도 쾌락의 쳇바퀴는 돌고 돈다. 성생활에 일정한 변화를 주면서 쾌락적응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건전한 성생활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자연으로서의 ‘사랑’: 불륜이란 이러한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현상이다. 그 계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헤매고 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속설이 규범과 현실의 간극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일부일처제라는 제도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본능의 교차로에서 신호등은 자신이 조절하지만, 법적·윤리적 심판이라는 적신호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낭만은 작품 속에서나 즐기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다.

 

(13) 결혼한 후에는 ‘운명’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현명하다.

 

  부부 사이도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든가 백년해로라는 말은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것일 뿐, 영원한 사랑이나 완전한 사랑은 없다. 노년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인생이고 부부 간의 사랑인가?’라는. 가능하면 인내하면서 함께 사는 것이 좋지만, 함께 사는 자체가 불행하다면 이혼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인생을 굳이 전쟁을 하면서 불행하게 살 필요가 있겠는가?

  부부 간의 관계가 끝나도 인생은, 아니 사랑은, 계속된다. 새로운 인생설계를 하고 재출발하여 다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혼은 쉽게 할 수 없고 부작용이 따르므로 현명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두뇌는 알지라도, 가슴은 감정적이어서 이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이것만 알고 실천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선택할 때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현명하게 선택해야 하지만, 결혼한 후에는 한 눈은 지그시 감고 나머지 한 눈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Roosevelt).

 

  톨스토이는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 결혼 상대방의 선택으로 이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결혼하기 전에 현명한 선택을 해야지 결혼한 후에는 잘잘못을 따져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가정의 갈등만 키울 뿐이다. 사소한 일로 이혼을 하게 되면 평생 후회를 한다. 이혼을 하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지만, 고독과 생활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결혼을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결정적인 사유가 없는 한. 이것은 운명론자가 아닌 현자의 길이다.

  백년해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든 노력과 지속적인 인내의 산물이다. 부부 사이의 싸움도 인내하지 않으면 가정이 파멸로 갈 수 있다. 가정의 평화는 인내의 산물이다. 계산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결혼방적식이다. 노년에는 일종의 체념이나 포기가 그 답일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 그냥 함께 가자고 결심하면 된다. 그리하여 하나로 영원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부부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불신자에 비해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14)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부부가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본의 아니게 혼자가 된다. 그러나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명령이요 자연법칙이니 어쩔 수 없다.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은 그대로 수용하면서 새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혼을 하게 되어도 혼자가 된다. 또한 자식이나 친구들마저 떠나버리면 이제 자신은 외톨박이가 된다. 혼자 사막을 걷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노년에는 어떻게 남은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혼자 산다는 것은 힘들고 불편하며 불행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남성들은 실제로 가정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많이 있다. 여성들도 경제적 문제가 준비되지 않았거나 남편이란 울타리가 무너짐에 따라 힘들 수 있다. 무엇보다 노년에는 자식들은 분가해버리고, 친구들도 점차 사라지며, 주변에 소통할 사람들이 없게 됨에 따라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된다. 만년에 가장 무서운 행복의 적이 ‘고독’ 나아가 ‘절대고독’으로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까지 걸리게 된다. 노년에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바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노년의 최대의 과제이다.

  도티 벌링턴은 많은 독신자들과 면담을 통해 조사를 하고 나서 독신자들이 뜻밖에도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들이 남긴 공통적인 메시지는 노년들이 반드시 참고하고 준비해야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우선 독신생활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새로 얻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일과 취미생활을 하면서 혼자인 것을 즐길 수 있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이왕이면 혼자인 것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마지막 과제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고독의 문제가 충분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적응할 시간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한다. 단독자로서 처해 있는 환경을 어느 정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정을 가꾸어야 한다. 특히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다고 일반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가슴이 뛰면 젊어지고 행복해질 테니까. 친구는 고해를 건너가는 과정에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취미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면서 몰입하게 되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나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노년에는 자신의 행복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수호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신앙을 가지고 영적 지도자를 만남으로써 문제해결을 하고 의지하며 자유함을 누리면 한 차원 높은 행복(종교적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15) 노년에도 ‘이혼’과 ‘재혼’의 문제는 일어난다.

 

  사랑은 이상적이지만, 결혼은 현실적이다. 결혼을 하고나면 그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게 결혼인가?’라는 의문이 곧 생긴다. 결혼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지키지 않으면 결혼생활은 부부가 한 울타리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이는 전쟁터로 변한다. “인간 세상은 이상과 현실이 함께 존재하면서 반드시 갈등이 발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파우스트) 그래서 부부 사이에도 사랑을 지향하지만, 갈등이 만연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그러므로 함께 할 수 있는 부부관계를 미리 협의하여 결정해 두고, 함께 사는 지혜와 기술을 익혀야 한다.

  노년에도 이혼과 재혼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사랑도 가정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개인의 행복이란 가치가 더 중요시되는 오늘날 노년에 들어와서 이혼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의견이 충돌하고 대화로 풀어가지 못해 황혼이혼이 늘어나고 있다. 이혼의 이유는 빈곤·갈등·폭력·외도·무관심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노년에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부인들의 남편의존도가 낮아졌고, 여성들이 결혼생활에서 잃어버린 상실감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며, 은퇴 후 이혼하면 퇴직금에서 많은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이유 등 그 이유가 다양해졌다.

  사별하거나 이혼함으로써 혼자가 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남성은 외롭고 생활이 불편하므로 재혼을 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노년에 재혼을 하는 이유는 성적 문제가 전부가 아니라 외로움의 해소, 심리적 긴밀감, 성적 문제의 해결, 경제적 문제, 자녀로부터의 독립 등 다양하다.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특히 노년에는,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노년에 재혼하는 것이 금기가 아니고, 결혼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최근 부모들의 재혼을 주선해주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 효도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재산을 둘러싸고 자식들과 불화가 생기고, 자식들이 상속문제로 인해 부모의 재혼을 반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의 행복보다 돈을 더 생각하는 물질지상주의적 세태가 노년들을 슬프게 만든다.

  가능하면 인내하면서 함께 사는 것이 좋지만, 함께 사는 자체가 불행하다면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이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혼자가 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함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한번뿐인 인생, 불행을 털고 마지막 단계에서라도 행복을 누리다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식들의 반대로 재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 동거를 선택할 수 있다. 서양처럼. 여기에는 법적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쉽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혼이나 재혼 뒤에 천국이 기다리고 있지 않으므로 현명하게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이제 노년기의 이혼과 재혼 문제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을 환영하는 노년문화를 형성해가야 한다.  

 

 

(16) ‘졸혼’이라는 새로운 부부관계가 등장하다.

 

  노년에도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이상적인 형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는데, 그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졸혼’(卒婚)이다. 일본에서 먼저 새로운 결혼생활의 형태로 졸혼이 등장하였다. 부부가 결혼상태는 유지하면서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부부로서의 의무는 벗어나면서 이혼이라는 짐은 막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에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펴낸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이란 “오랜 결혼 생활을 지속해온 부부가 결혼의 의무에서 벗어나 각자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랜즈’나 MBC 예능 ‘미래일기’ 등이 방영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이제 노년들이 모여 앉아 벌이는 이야기의 밥상 위에 졸혼이라는 메뉴가 올라와 있다. 결혼제도도 세태가 변함에 따라 이처럼 변화하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졸혼의 선호도는 여성은 63%, 남성은 54%로 많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되고 있고, 여성들의 선호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황혼이혼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67.8%나 된다. 개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으며, 자녀들과의 법적 문제도 생기지 않는 장점이 있다. 결혼의 틀은 유지하되 각자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졸혼을 하려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홀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며, 식사나 청소 등 집안 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혼자 살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언젠가는 누구라도 혼자 될 수 있기 때문에 노년의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 과제이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충분한 준비를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는 것: 결혼풍속도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해가고 있는데, 그 목적은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니 큰 틀에서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써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17) ‘괴테의 경험’은 모든 노년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괴테의 인생에서  ‘마지막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신과의 약속을 한다. 파우스트에게 쾌락적인 삶을 선사하고 영혼을 넘겨받기로. 청년이 된 파우스트는 순수한 처녀 그레트헨을 만나 세속을 방황한다. 음탕한 애욕과 숭고한 선 사이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 늙은이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복락사회를 건설하고 인류에게 공헌을 한다. 괴테는 사람의 마음을 청량하게 만들고 자애롭게 만드는 것은 결국 ‘여성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여성적인 것이 마지막 길을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괴테는 74세에 19세 처녀를 사랑하였다. 그 이름은 ‘올리케’. 처음에는 애착, 나중에는 집착이었다. 마침내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괴테가 노망에 걸린 줄 알고 슬퍼했고, 주변 사람들은 접근 못하도록 경고했다. 그는 메피스토와 약속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외치며 쓰러진다. 하늘의 은총을 받은 속죄의 여인 그레트헨의 사랑이 그를 구원한다. 긴 방황을 해온 파우스트는 천사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천상으로 올라간다.

  이런 사랑이 이루어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과 에너지를 가지고 살았으므로 그의 인생은 항상 젊음을 추구하였고, 또한 아름다운 삶을 누렸다고 말할 수 있지 아니할까?   이러한 실연의 아픔이 ‘마리엔바트의 비가’라는 명작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쓰고 나서야 사랑의 광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그 대상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재생산하면서 사는 것은 젊음을 누리고 아름다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쾌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형석 교수도 한 강연에서 젊은 여성을 보면 가슴이 뛴다는 심정을 고백하면서 청강하는 사람들을 웃겼다. 가슴이 뛰는 한 인생을 젊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 어떤 보약보다 더 효능이 있지 아니 한가? 사랑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랑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인생의 한 과정이며,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사랑의 골짜기를 헤매면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다. 사랑하는 시간은 영원한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유행가 가사가 노년들을 잠시나마 위로해준다. 마지막까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것은 인생을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비방이다.  

 

(18) 소설 ‘은교’를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영화 ‘은교’를 보러 갔다. 주인공인 70세 시인 이적요는 자기 집 테라스에서 잠들어 있는 여고 2년생인 은교를 보았다. 그 여학생이 숨 쉴 때마다 불끈거리는 상반신을 보면서 그의 가슴에는 화살이 꽂혔다. 생동하는 그 젊음을 내려다보면서 잠복해 있던 본능이 되살아나고, 잔잔하던 마음의 평화가 깨져버린다. 그것이 노시인에게는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녀가 돌아간 후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수놓고 있고, 남성은 늘어져 있었다. ! 육체는 풀과 같은 것! 늙는다는 것은 피해갈 수 없다. 마음과 몸이 일치하지 않는 것: 이것이 노년의 최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아직 불꽃같은 에너지가 남아 있음을 한 순간 느낀다. 시인은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라고 선언한다.

  은교를 만난 후 그는 한때는 욕망의 대상으로 보았고, 한때는 자기 청춘의 마지막 보상으로 보았다고 실토한다. 그리하여 본능을 따라 가려던 자기의 이기주의적 범죄에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 그러면서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고, 노인의 욕망도 자연일 뿐 범죄나 기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방황을 하면서 그의 감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열일곱, 네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를 사랑했다”고 시인 이적요는 유서에서 고백한다. 시인의 마지막 사랑: 육체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사랑했고, 그 순간은 행복했었다.  모든 사랑은 무죄다. 이와 같은 사랑을 단순한 윤리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 일이다.

 

 

(19) 영화 ‘45년 후’가 첫사랑의 추억을 되살려준다.

 

  ‘첫사랑’은 누구나의 로망이다.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고작해야 90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는 사랑이 맹목적이고 사랑의 경험이 없으므로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불장난이라고 폄하한다. 첫사랑에 관한 스토리를 음미하기 위해 영화 ‘45년 후’를 보러 갔다. 결혼 45주년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던 케이트와 제프 부부에게 남편 첫사랑의 시신이 알프스에서 발견되었다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그녀의 죽음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상기하면서 케이트는 과거의 추억에 빠진다. 첫사랑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는 남편을 본 아내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남편에게 묻는다. “만약 첫사랑이 죽지 않았다면 그녀와 결혼을 했을 것인가?”라고. 남편의 답은 ‘에스’였다. 그녀는 ‘당신에게 나는 누구였나요’라는 생각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옛이야기에 민감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첫사랑 소식에 흔들리는 남편을 보며 불안한 아내: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첫사랑이란 여전히 미묘한 감정임을 알 수 있다.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남기고,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둔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인에게 자신이 첫사랑이길 바라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자신이 마지막 사랑이길 바란다.”고 한다(오스카 와일드). 그래서 노년에도 첫사랑을 둘러싸고 부부 사이에는 갈등 아닌 갈등이 생긴다. 마지막 파티에서 남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I love you!"를 고백했고, 아내는 받아드렸다. 추억은 추억일 뿐, 현재의 사랑에 충실한 것이 더 현명한 생각이 아닐까?

 

(20) ‘구원으로 가는 길’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 그것은 ‘사랑’이다. 노년에도 마지막 소망은 바로 사랑에 있다. 인생의 마지막 기간을 사랑하다 가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이다. 로렌스는 “가장 훌륭한 사랑은 시간의 벽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지속적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은 영원한 것이며(셰익스피어), 구원으로 가는 길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행복은 최고조에 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을 하면 천국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는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생각이 떠오른다. ‘괴테는 사랑을 쫓아 방황해 왔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갈구했으며, 천사들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 세상을 떠난 그 과정이 바로 구원을 추구해온 과정이었음을.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구원을 찾아 걸어가는 과정이다. 노년이란 시기는 마지막으로 이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다. 구원을 통해 인생을 마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구원을 받고, 결국은 천국에 이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천상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요, 그 길이 구원의 길임을 괴테의 명작‘파우스트’는 역설하고 있다. 참된 사랑은 천국으로 가는 구원의 길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마르마르 해협을 따라 거닐면서 다리까지 내려와 있는 하늘을 처다 보며 깨닫게 되었다. 구원이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솟아난다는 것을! 이처럼 사랑의 골짜기를 헤매면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요, 그곳에 행복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노년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랑을 하면서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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