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의 시인, 이필 시인과의 인터뷰

내 나이 열여덟 살 때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 죽기를 소원하는 한 늙은 여자가 / 내 안에 홀연히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시「페르소나」中에서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 2020/01/16 [21:55]

페르소나의 시인, 이필 시인과의 인터뷰

내 나이 열여덟 살 때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 죽기를 소원하는 한 늙은 여자가 / 내 안에 홀연히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시「페르소나」中에서

홍수연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1/16 [21:55] | 조회수 : 615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내 나이 열여덟 살 때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 죽기를 소원하는 한 늙은 여자가 / 내 안에 홀연히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시「페르소나」에서

 

 

 

 대표시 모음》

 

지저귀는 기계들에게

 

 

이제 새는 흉내 낼 수 없다

비 그친 지붕 위로 날아오르며 지저귄다 해도

그것은 외로운 나무들의 짓인지도 몰라

오래전 나뭇잎의 이마가 떨어져 제 언어의 주인에게 돌아간 것처럼

어둠의 손잡이를 돌리며

새 부리에 다시 태엽을 감는 나무들

 

밤의 공중 기계들이 서서히 멈추고 있다

새의 울음으로

저녁의 뚫린 구멍을 붉게 메운다 새가 멈추고

더는 날지 못하리

 

 

울음을 드러내면

울음 속에 더 작은 울음의 부속과 장치가 있다

 

어쩌면 하늘의 다락방에는

단안경(單眼鏡)을 쓴 채 인상 찌푸리는

신이 있는지도 몰라

천사의 날개에 박힌 나사못을 조이며 중얼거릴지도 몰라

이렇게 멜로디 장치를 조여 놓으면

죽은 새들이 돌아올지도 몰라

 

신은 손에서 드라이버를 거두고 공중의 테를 덮는다

 

 

 

  코러스

 

 

  어떤 후렴은 구름과 동일 성분이라는 거

  흘러간 것들만을 모으던 기억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소녀 손이 미끄러져

  모래밭으로 떨어질 때

  그 순간,

  먼 미래가 밀려왔다 되돌아가는 느낌

  5초 뒤 나의 흥얼거리는 음역으로

  다시 떨어지는 음의 교란

 

  어쩌면 소녀가 내게 들려주려는 노래였을까

  삼십 년 전 허밍이

  이제야 창문에서 떨려온다

 

  라디오 잡음 속으로 빗줄기가 주파수를 맞추고

  노란 호박 안에 불을 켠 것 같은

  이름,

  5초 전 목소리와 5초 후 목소리가 다정하게 겹칠 때

  까만 겹눈의 시차를 생각한다

 

  몇 권의 책이 후두둑 책장에서 떨어지는 어느 오후

  빈자리에는 점과 선의 배열이 있다

  화음이 창밖 구름을 따라 전깃줄에 걸리는 순간

  여진처럼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페르소나

 

 

  내 나이 열여덟 살 때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죽기를 소원하는 한 늙은 여자가

  내 안에 홀연히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밤이 오면 나직한 기침이 늙은 여자의 심기를 살피며

  가만가만 책장을 되작이곤 했습니다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죽고 싶어 하는지

  물어볼 수도 쫓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몇 해를 앓다가 나는 점쟁이를 다시 찾아가

  그녀를 내보낼 비방을 얻어 왔습니다

  느릅나무 껍질을 욕조에 띄우고

  혈로 얼룩진 속옷가지 셋을 태우고

  마당 안쪽 동백나무 밑에 열쇠를 묻었습니다

  이듬해 붉은 꽃들이 가지에 들어섰습니다  

  햇살이 밀고 들어온 봉오리마다

  수많은 다른 시간대의 방이 열려 있었습니다

  나는 그 나무 아래를 한참 머물다가

  바닥이 파헤쳐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열쇠를 찾는 동안 나는 천천히 늙어갔고

  어느 날부터 한 젊은 여자가

  내 안에 틀어박혀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오면 한 번 더 뜨겁게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중얼거리는 여자,

  마지막 저녁놀이 스며들기 전

  그녀를 내보내야 합니다

 

 

 시인의 시 「페르소나」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아침이 오면 한 번 더 뜨겁게 /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중얼거리는 여자,” 긴 생머리, 우수에 찬 듯 깊고 신비스러운 눈매(김수영 시인을 연상시키는 반항적이고 비범한! 그 눈매에 한 번 베이면 홀린 듯 그의 나지막한 이야기에 몇 날인가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의 이필 시인을 만났다.

 

 

• 시 「페르소나」에서 시인은  “마지막 저녁놀이 스며들기 전 / 그녀를 내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악착같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싶습니다. 「페르소나」의 마지막 두 행은 어떤 의미이신지요? 혹은 “그녀”로 인하여 시인은 행복하신지요?

 

 

• 나이 든다는 건 늙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마음만은 젊은 ‘나’와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할 것이냐. 글쎄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동거처럼 이 새로운 자아는 불편한 파트너인 셈이죠. 한 공간 안에서 그 둘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갑니다. 수많은 생애사건을 통과하는 동안 서로를 교차하고 서로에게 속삭이며 서로를 꿈꾸고, 마침내 하나가 다른 하나를 떠나보낼 것입니다. 자아로부터의 추방, 혹은 이탈할 때 비로소 내적 성장, 성숙이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요.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고 하죠. 하지만 어쩌면 처방전이 필요한 질병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더 젊어 보이기 위해 늙음을 은폐하거나 위장하려고 하니까요. 나는 늦은 나이에 시 쓰기를 시작했고 내 안의 젊은 동거인이 마음에 들어요. 아직까지는요.

 

 

  빵공장의 비밀

 

 

  우리는 매일 빵공장에 간다

 

  영하 20도 냉장고 안에서 마스크를 끼고

  얼어붙지 않은 말들을 하느라

  입김을 다 써 버렸지

 

  컨베이어 벨트에 빵을 얹었는데

  우리는 뒤로 걷는 것 같았어, 다시 앞으로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지 갔던 곳을

  또 가야 했어 집과 공장 사이

 

  무얼 걸려 내려는 건데 그게 무엇인지

  아무 이유 없이 우리는 강박처럼 무얼 거르고

  벨트를 멈춰 세우고 다시 무얼 거르고

  벨트를 멈춰 세우고 다시 무얼 거르고

  몇몇은 그냥 제자리에 서서 왔다 갔다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했지

 

  체인점은 계속 계속 늘어났고

  크레인은 새벽마다 샌드위치 상자를 집어 올렸어

  탑차 안에 우리의 반죽은 살아 있고

  덜컹거릴 때마다

  채소가 칸칸이 정렬되었지

 

  굴뚝은 날이 갈수록 싱싱했는데

 

  금세 물러져서 씻는 방법을 몰라

 

  닥치는 대로 공업용 세제를 붓는 우리의 위생에 대해서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는데

  깨끗해지기 위해선 누구나 구별되어야 한다고

  몇몇이 위생모를 벗었어

 

  그래도 한동안 우리는 웅성거렸는데

 

  근대적 위생은 여러모로 공정한 것이어서

  조금씩 잠잠해 갔지

 

  창고를 나가기 전에

  갑자기 누군가 눈앞이 안 보인다고 말했어

  이물질은 밤새 우리 몸속을 쏘다니다가

  너무 환히 표백된 공장 정문 앞에서

  구호가 되었지

 

  잠시 캄캄했다가 밝아진 새벽

  아무 일 없다는 듯 둘레를 감춘 빵은

  유난히 둥글고 선명할 뿐인데

  빵공장 트럭들은 전국으로 돌았어

 

  여전히 우리는 매일 빵공장으로 간다

 

  계간 『문예바다』(2019년 가을호, 공모시)

 

 

• 시「빵공장의 비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빵공장의 비밀」은 생생한 묘사로 인하여 실제 빵공장에서 근무하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를 쓰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 친구가 제과 공장에 생산직으로 일했습니다. 영하의 냉장창고에서 채소를 씻어 조리실로 옮기는 일을 담당했지요. 그때 공장 파업에 대해서 약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채소에 흙 같은 게 조금이라도 묻어 있으면 식약처에서 판매 중지 명령을 내리는데 이물질 검출을 피하기 위해 공업용 세제를 썼다는 겁니다. 전해들은 이야기 외에도, 저는 시를 쓸 때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쓰는 편인데 묘사는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빵공장이 계속 돌아가는 ‘영업 비밀’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근대화가 가져온 위생과 가시성에 대한 강박. 자본의 벨트 위에서 이 강박증이 어떻게 위계의 물질적 기초를 확보하게 되는지를 말이죠. 뒤섞인 것, 이질적인 것, 비가시적인 것이 고르고 균일한 가시적인 것으로 바뀌어가기까지 말예요.

 

  

• 시인님에게 시란 어떤 의미인가요?

 

• 시인이 되는 것을 욕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문청이 아니었죠. 그러나 돌아보면 삶으로서의 저는 늘 시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 쓰기는 창작 행위인 동시에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죠. 충분히 몰입해서 쓴 시인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서둘러 문장을 봉합하지 않았는가? 자기 정서에 빠져 있지 않은가? 시적 체험이 관념에 기울지 않았는가? 나에게 시는 의미 이전에 끊임없는 내적 대면, 타협과의 싸움 같기도 합니다.

 

• 국내외 시인 중 영향을 받은 시인이 있다면요?

 

20대 초반에는 기형도에 경도되어 있었고 그 후 윤성택, 김행숙, 서대경의 시를 좋아했어요. 시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김록, 이승훈, 김구용 등 현대시에 끌렸지만 미학적 언술 방식에서 제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시인은 윤성택 선생님일 겁니다. 주체에서 객체로, 관념에서 인식으로 나아가는 시적 체험을 열어주셨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청각장애인 시인 일리야 카민스키, 아메리카 원주민 시인 조이 하조, 아일랜드 페미니스트 시인 이번 볼런트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인들을 접하며 시의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이었어요. 시는 의미를 찾기 전에 먼저 유희이겠죠. 최근 들어서는 미즈노 루리코의 동화적 상상력과 케이티 패리스의 모던 신화, 찰스 시믹의 시적 유머를 좋아합니다. 유희가 가진 해방의 힘을 믿습니다.

 

• 학창 시절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죠?

 

• 어떻게 하면 야간자율학습을 빠질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보냈죠.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성문종합영어》를 펴놓고 영어 지문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 공책에다 옮겨 적곤 했어요. 담임선생님에게 매번 지적을 받았죠. 입시 공부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며. 그러거나 말거나. 참고서는 입시를 앞둔 제게 허용된 유일한 ‘문학 텍스트’였으니까요. 지방 소도시에서 성장했고 이른바 참교육 1세대입니다. 직선제로 선출한 총학생회를 세웠고 연합 시위를 계획해 시내로 가두행진을 벌였죠. 국어 선생님이 수업 중 사복경찰에게 연행되었고, 혹독했죠. 3 시절에는 전체 수업 일수의 3분의 1을 채우지 못했어요. 가장 절친한 친구는 소용돌이에 쓸려 들어가 학교를 자퇴했고《수학정석》만 풀고 있던 저는 오래도록 죄책감에 시달렸죠. 동창을 만나도 학창 시절에 대해선 잘 꺼내지 않아요.

 

•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세계가 궁금합니다.

 

• 시적인 아름다움은 시 안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해서 시가 되지 않듯이, 시는 어쩌면 시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그리하여 시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계와의 낯선 접촉, 시가 없는 곳에서 문득 시적인 어떤 것을 발견하는, 경계에 갇히지 않은 장소와 이름으로 교류하고 체험하고 소통하고 싶습니다. 진짜 시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누구인지, 시적 체험을 통해 바깥의 목소리를 듣는 시도들을 계획 중입니다.

 

  

•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이란 영화가 있지요. 시인과 독자가 만난다는 건 어쩌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것 같은지도 모릅니다. 잘 모르는 약도를 손에 들고 지도에도 없는 길을 따라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문득, 낯선 표정의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기를 바랄게요.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나의 페르소나를 생각했다. 분명 나와 함께 했었던 젊고 아름다웠던 여인, 이제 그 여인은 나를 영영 떠나버린 것일까? 그 여인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옷고름 풀고 피 철철 흘리며 작두라도 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시도, 사랑도, 삶도 없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나지막하고 진중한 知性의 시인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이제 그는 내가 아껴 읽는 시인들의 목록에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다.

 머지않아 그의 페르소나는 그를 문단의 知性으로 우뚝 서게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필 시인》

197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016년 「봄의 대곡선」외 5편으로 《문학사상》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 ‘예버덩 문학의 집’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일상비평 웹진《쪽》과 여성생활미디어《핀치》에 ‘세계 여성 시인’을 번역, 소개하고 있으며 웹진《시인광장》편집위원으로서 ‘국내시 영역 시선’을 연재 중이다. 시작 활동으로는, 시작품 「코러스」가 푸른사상사에서 주관한 ‘2019 올해의 좋은 시’에 선정되어 앤솔로지로 출간되었다. 2019년《문예바다》가을호에「빵공장의 비밀」이 공모시에 선정되었다. 2019년 《황해문화》가을호에「여기, 저 멀리」외 2편이 공모시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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