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선박사]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이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방 식이다.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 2020/01/05 [16:17]

[윤명선박사]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이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방 식이다.

정유진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20/01/05 [16:17] | 조회수 : 82

 

▲     ©한국예술문화타임즈

 

14)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이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방 식이다.

 

 

행복의 본질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역사적으로 쾌락주의와 도덕주의가 대립되어 왔다. 고대 에피쿠로스에서 비롯하여 근세 벤담의 공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쾌락주의는 쾌락이야말로 행복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한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 행복의 목표이고, 국가정책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쾌락주의자들은 강변한다. 진화론에서는 행복이란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서은국). 인간은 동물적 존재로써 본능에 따라 살아가며, 행복이란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진화론). 그래서 인간은 먹기 위해 살고, 먹는 것에서 느끼는 쾌감이 행복이라고 한다.

인간도 동물적 존재로써 먹고 마시는 등 생존을 위한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쾌락)이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쾌락이 행복한 삶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써 진화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등 쾌락 이상의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도덕주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삶은 일시적인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덕성을 갖춘 인격의 완성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누려야 한다고 말했으며(에우다이모니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덕목으로 용기, 관용, 자존, 친밀, 재치, 정의, 절제, 희망, 은유, 정직, 양심, 고결 등 12가지를 들고 있다. 이러한 시민의 덕목을 갖춘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비결이라고 했다.

인간은 즐거움을 누리며 살되 쾌락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이성적 존재로서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소냐 류보머스키는 행복은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느낄 때 가장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머리로 느끼는 행복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성적 만족이고, ‘가슴으로 느끼는 행복은 일상적으로 즐겁게 산다는 감성적 만족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감정에 기초한 행복(헤도니아)을 부정하지는 않고, 양자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였다. 스티븐 칸 과 크리스틴 비트라노 교수는 행복의 기준으로 쾌락인가 아니면 선인가라는 단선형적 접근 방법을 배제하고, 쾌락주의의 즐거움과 도덕주의의 도덕성의 조화를 요구하면서 그 실천방법으로 선하게 살자. 그리고 즐기자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쾌락만을 추구하면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도덕만을 주장하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복은 허상이 된다. 이들 두 요소 사이에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져 최적상태를 이룰 때 행복은 최대치를 누릴 수 있으며, 이것이 최상의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그런데 쾌락은 육체의 감각을 통해 얻고, 덕성은 정신의 노력으로 생기므로 양자의 균형과 조화는 건전한 인격형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자아완성이 행복의 궁극적 목표이다.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는 개인에게 달려 있지만, 노년이야말로 자신의 이상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마지막 행복을 누려야 한다.

 

(15) 행복은 의미 있는 삶을 통한자아실현을 궁극적 목 표로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은 동물적 존재로써 생존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진화하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간. 빅터 프랭클은 본능은 유전자를 통해 전달되고, 가치는 전통을 통해 이어가지만, 의미는 개인적인 발견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의미란 개인이 독자적으로 좋은 삶을 추구하는 가치를 말한다. 그래서 의미란 개념은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행복과 관련해서는 자신만의 의미를 가지는 개별적인 성격을 가진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시기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목표이론이 더 적합하지만, 노년기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적응이론이 더 와 닿는다.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을 유일한 행복의 조건으로 주장하지만, 도덕주의에서는 쾌락은 타락하기 쉽고, 반사회적 경향을 띄게 된다고 경계한다(세네카). 도덕주의의 입장에서는 인생이란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 의미 있는 삶’(=인간답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과정이며, 인생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자아실현에 있다고 한다. 자아실현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이 바라는 형상의 자신이 되는 것이고(자아상의 구축),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답게살아가는 것(정체성의 확립)을 말한다. 노년은 자아완성을 추구하는 시기로 이러한 과정에서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본다.

자아실현이란 공동체가치를 추구하면서 인격을 갖춘 존재로 성장하는 삶을 말한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요, 인생이란 여정의 목적지는 자기 자신이다. 융은 자기 자신’, 성 바울은 내면적 인간’, 뒤르크하임은 본질적 존재라고 불렀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자신을 합리화해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이를 실현해가는 과정이 인생이고, 이에 충실할 때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긍심을 키우고 독자성을 확립하면서 성장을 해가는 과정이 노년의 행복이요 성공한 인생이다.

스페인의 작가 파울루 코엘료는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연금술사에서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자네가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명구를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평범한 양치기 소년인 주인공 산티아고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가면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을 실현하기 위해 찾아 나서지만 여러 가지 난관들이 가로막고 있다. 그 때 연금술사가 나타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고 권고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보물이 있고, 마음은 끝내 자아를 실현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자아의 실현을 이루는 것이다.

자아란 일종의 관념이지 실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어떠한 삶을 추구하는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구체적인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 이선 매머핸은 행복의 본질을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 것, 타인의 웰빙에 기여하는 것과 함께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덕성을 쌓고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행복모델이다. 그러므로 노년들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아의 완성을 향하여 계속 정진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는 길이다.

 

(16) ‘너 자신을 알아라.’: 이것이 의미 있는 인생의 출발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아라.’는 말이 실은 탈레스의 말이다. 이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자신을 성찰하라는 덕목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무엇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인간은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성찰하는 인간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성찰하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가 노년에는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니체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 여러 형태로 자유를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 자신을 옥죄고 있는 여러 가지 가치의 줄: 인간은 이런 장벽들을 넘어서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고, 자기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원동력을 그는 힘의 의지라고 부르면서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의지라고 했는데, 이를 권력의지라고 불렀다. 그 실천적 의미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기만의 길을 만들고 그 길로 걸어가면 된다. 주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자아완성을 이루는 것이 최종적인 성공의 종착점이다.

인간의 실천적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으며, 가장 추상적인 답변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노년에도 이러한 질문은 필수적으로 제기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꿈은 무엇이고, 무슨 일을 선택할 것인가? 건강상태는 어떤가? 재정 상태는 어떠하며, 재취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창법을 할 것인가? 가정문제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디서 살 것인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이들 문제를 고려해서 자신의 노년을 설계하고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굳은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철저하게 노력하면서 마지막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삶을 성찰하면서 얻는 이해는 그 자체로 삶에 스며들고 삶의 경로를 좌우한다. 성찰된 삶을 사는 것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결국 의미 있는 삶이란 자신이 만든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 인생을 말한다. 인간은 성찰을 하면서 살고, 그 가운데 온전한 인간(=자아)으로 성숙하고 성장해 간다. 인생은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진실되게 살고, 아름답게 살며, 보람 있게 사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아무런 구속이 없는 노년은 능히 이러한 삶을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성을 쌓을 수 있다.

 

 

(17) 행복은 긍정적 정서에서 오는 포괄적 개념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이란 여러 가지 긍정정서가 주는 부산물이라고 한다. 마틴 셀리그만은 행복의 다섯 가지 요소로서 긍정정서·몰입·관계·의미와 성취를 들고, 이러한 긍정정서의 포괄적 상태를 행복이라고 하는데, 각 요소의 첫 글자를 따서 페르마’(PERMA)라고 부른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긍정정서를 통해 인생을 즐기는 즐거운 삶’, 삶의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몰입하는 삶’, 타인과 함께 하는 좋은 삶’,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의미 있는 삶과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전념하는성취하는 삶이라고 한다. 학자들에 따라 다른 요소들을 들기도 있지만, 이들 긍정정서가 곧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셀리그만은 행복을 만드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후 행복공식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H=S+C+V. H(happiness)는 행복의 수준, S(setpoint)는 행복의 설정 값, C(circumstance)는 삶의 상황·조건, V(voluntary action)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발적 행동을 의미한다. 행복의 수준은 일정한 환경과 조건에서 얼마나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삶의 조건은 개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행복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발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과제다. 결국 행복은 자발적 행동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은 개인이 바꿀 수 없으므로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스스로 행복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노년의 경우도 그렇다. 노년이 되면 우울한 감정이 자라고, 내향적 성격이 증가하며, 의존성이 높아지고, 과거지향적이 되며, 성 역할의 변화가 생기고, 소심해지거나 고집이 생긴다. 이러한 심리적 변화와 나빠진 환경에서도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복역량을 높여야 하므로 개인적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혜기술을 쌓아야 한다. 이러한 역량은 일종의 습관으로 형성되고, 연습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긍정적 사고를 하도록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조건이 갖추어지더라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었는데, 사람들이 게을러짐에 따라 천사들은 이를 회수해서 각자의 가슴속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밖에서 행복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저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다니지만, 사람들은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행복은 자신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진정한 행복은 찾아온다. 그러므로 지금 이곳에서 만족하면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현자이다.

 

 

(18)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생활방식에서 온다.

 

행복 치유의 저자들인 댄 베이커와 캐머런 스타우스는 행복은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고 생활방식이라고 한다. 행복을 누리는 것은 삶의 방식이고 일종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것은 행복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즐거움·만족 등의 주관적 심리상태이고, 생활양식은 지속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우리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위대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행복을 지속적으로 느끼려면 단순한 일회성 행복감이 아니라 행복을 계속적으로 느끼는 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학습장이다. 부정적 정서를 극복하고 긍정적 정서를 누림으로써 행복은 다가온다. ‘행복 치유는 꾸준한 노력과 쉬지 않는 학습을 통해서 행복을 만들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피오나 로바즈는 일상에서 건강·베품·여가·즐거움 등 행복한 습관을 만들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방식을 이어가면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노년에는 젊었을 때의 사고와 생활양식을 바꿔야 한다. 주어진 환경과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노년의 행복이다. 그런데 습관은 중독성이 있어 고치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뇌의 신호를 자제하도록 노력하고, 반복되는 행동을 바꾸도록 하여야 하며,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순간적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항상 행복감을 느끼는 습관을 키워야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노년의 경우에도 긍정적인 정서를 누리는 생활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함으로써 지속적인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길이다.

 

(19) 행복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상대적 개념이다

 

행복한 감정은 다양하고 복잡하므로 누구에게나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이 따로 있다.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각자가 원하고 느끼는 행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학자들도 착안하는 관점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개념을 내놓고 있다. 특히 노년에는 자신만이 추구하는 행복이 따로 있다. 극적으로 사람에 따라 추구하는 행복이 다른 이유는 인생의 목표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누구나 추구하지만, 그 내용이 다르므로 행복의 개념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도록 일률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다의적 개념이고, ‘복합적 개념이며, ‘상대적 개념이다. 마이클 폴리는 행복의 부조리란 그것이 규정될 수 없고, 성취되지도 않으리라는 데 있다고 했다. 그래서 승려가 된 과학자 마티외 리카트는 수천 개의 행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행복의 개념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탈 벤 호번 교수는 행복에 관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행복의종전 선언문을 내놓기도 하였다. 더구나 칸트는 행복이란 개념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상상의 개념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심리학자와 행복학자들은 행복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하지만, 행복은 주관적인 심리상태로써 과학만으로는 규명할 수 없다. 그러니 가능한 한 과학적으로 행복을 규명하고 체계화시키되, 도덕이나 종교적 요소처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을 종합해서 행복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구성해야 행복의 전체적 모습을 볼 수 있다. ‘행복의 5층집은 바로 이러한 행복의 모습을 체계화한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단편적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처럼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므로 그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행복의 유형은 인구수만큼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복의 개념을 일률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으며, 행복의 정답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노년에는 특히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찾고, 스스로 힐링 할 수 있는 행복지도를 만들어 추구하는 것이 마지막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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