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소식]뼛속까지 詩로 똘똘 뭉쳐진 이생진 시인(1929~ )의 '무연고'를 읽어

12월 13일 (목) 5시-7시 광화문 교보문고 배움(02 397 3416)

박산시인 | 기사입력 2018/12/06 [23:28]

[문단소식]뼛속까지 詩로 똘똘 뭉쳐진 이생진 시인(1929~ )의 '무연고'를 읽어

12월 13일 (목) 5시-7시 광화문 교보문고 배움(02 397 3416)

박산시인 | 기사입력시간 : 2018/12/06 [23:28] | 조회수 : 180

 

▲     ©한명희

 



 
결론부터 언급하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  
 
나이듦에 우선 연상되어지는 질병→ 병원→ 요양원 등으로 이어지는 
통상적 인식의 숙명적이고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따듯한 시선으로 일상을 받아들이면서 써 내려 간 
담담하고 쉬운 언어들의 문장으로 
긍정의 詩情을 경험하게 만드는 시집 '무연고'는 
아흔을 살고 있는 시인의 수묵 담채화 같은 일기로 
건강한 90을 살고 싶거나 
코앞에 다가온 90을 대비하거나, 
20에 70을 혹은 40에 50을 더해 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뼛속까지 詩로 똘똘 뭉쳐진 이생진 시인(1929~ )의 '무연고'를 읽어 
삶의 혜안을 터득하는 당위성을 느끼게 만드는 시집이다. 
 
대한민국 시인들이 가장 존경한다 하고,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다 하고, 
文界(文系)에서는 무림의 도장을 홀로 지키는 재야의 고수라고도 지칭되는 이생진 시인을, 
지근거리 후학의 입장에서는 
시집을 읽으며 J. 버나드 쇼가 남긴 말이 생각났다, 
'나이 드니까 안 노는 게 아니다. 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다'. 
구순의 이생진 시인에게 논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죽장에 도포를 입고 삿갓을 쓰고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방랑 시인 김병연을 연기하고, 
떨리는 손으로 큰 붓을 쥐고 벽면 크기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이중섭과 놀다가 
고흐의 영혼에 들어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를 읊조리고 'The music die!…….' 
이 가사에 이르러 숨을 고르다가, 
돌연 굴건제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요령을 들고 나타나 땡그랑 땡그랑 흔들며 
황진이의 혼을 하늘로 보내고는 
훨훨 구름을 타고 제주 구좌로 날아가 
4.3 다랑쉬굴의 떠도는 영혼들과 다랑쉬 하늘 우러러 슬프게 놀다가 
성산포 오정개 해안 당신의 시비 거리에 이르러서는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의 시심으로 
'저 섬에서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한 달만 살자' 
牛島를 보고 노는 실천적 시인, 
이런 시인이 세계 어느 나라에 또 존재할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 한다. 
하긴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노인들이 홧김에 "빨리 죽어야지!" 하는 자조적인 말은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과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과 더불어 대표적인 3대 거짓말이다. 
 
여기저기서 백세시대라고 외친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의학 발달이 가져 온 현세에서 
발로 시를 쓰는 이생진 시인이 
백세시대를 실현하고 있는 아흔 살의 일기를 시로 썼다. 
 
진정 90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老小를 불문하고 
이 시집 '무연고'를 읽으며 
미래의 타임머신에 승선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흔을 산 시인에게 고독은 밥이고 소리 없는 전쟁이다. 
때론 白壽하고 먼저 떠나신 절친 황금찬 시인을 불러 
"저는 포기해야 겠습니다" 하고 투정을 부리다가도 
송해 오빠 노래방에서는 
이혜리가 부르는 트로트 '아이 좋아라'를 따라 부른다. 
 
90을 살려면 약이 필수다. 
전립선 피부병에 친해진 약 이름을 열거 하다가 
아내 치매 간병에 지쳐있는 홍해리 시인과 
아내를 보낸 지 얼만 안 된 시인은 거리에서 껴안고 울었다. 
 
삼각산 머리에 눈이 덮이고 내 머리엔 시가 덮이고……. 
말라버린 백일홍 꽃대를 어루만지며. 
 
설날 아침 아버지 어머니 무덤 앞에서, 
지난 추석 입주한 아내의 ‘영혼의 소리’라도 혹여 들어볼까 귀를 기울이지만 
흰 눈에 덮인 무덤은 소리가 없다. 
 
때론 트럼프처럼 세 번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하지만, 
평생을 지켜온 하루 4km 걷기, 시 5편 이상 읽고 한 편 쓰기, 책과 자연 사랑하기, 
조금 먹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80년 전 초등학생시절 결심했던 생활신조를 지켜나가면서 
유치하지만 기쁘다고 자신을 칭찬한다. 
 
치매 아내 간병으로 눈물이 많아진 시인이 아내를 보내고 난 후, 
밤늦게 걸려온 안부 전화 역시 십여 년을 아내 치매 간병한다는 이의 힘들다는 전화에 또 눈물을 흘린다. 
아내 없이 사는 삶에 자신의 죽음이 느껴지지만 시 쓰기만큼은 양보가 없고 
우이천 넘어 북한산을 바라보며 
‘겨울 눈 덮고 벌렁벌렁 숨을 쉰다 구름이 마른기침을 하며 넘어 간다’ 
구름이 무슨 마른기침을 하나 그저 슬며시 넘어가지 
올봄에도 저 산을 보기를 간절히 기원하자 산이 돌아서며 눈물을 흘린다. 
 
시인에게 시는 생활이고 생명이다. 
그리고 삶의 놀이다. 
서울 한복판 꽁꽁 언 빙판에서 
우이도 돈목 모래밭이나 자월도 모래밭을 그리워한다. 
모래밭은 미끄러져도 위험하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자기만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고독을 찾아 
밥처럼 씹으며 엄청난 분량의 독서를 소화내면서도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중
 ‘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읊조리면서 
자신이 벅찬 인생을 살고 있음에 만족하는 슬기로움의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돈 없이도 갔었던 어린 시절의 서점을 
'밥 먹으러 서점에 갔다' 표현하는 시인에게, 
서점의 책은 밥이었다. 
 
고독을 밥처럼 씹는 시인에게도 
간혹 이즘에는 거만을 내 세울 때가 있다. 
공자 노자 맹자 손자 순자 장자 주자 한비자, 이 이름들을 열거하면서 
"니들이 90을 살아 봤어. 난 90을 산 生子야" 하며 시를 쓰는 행복을 ‘특혜’라 여긴다.  
 
90살 시인에게도 유혹은 참을 수 없는 선동이다. 
시도 사랑도 외출도 그렇다. 
교직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정년을 마친 시인은 아직도 영어 공부 중이고 
섬 여행에서 얻은 피부병 보웬병도 나이 듦의 진행이 느리다니 여유롭기조차 여기고, 
둘레길 걷다 안면 익힌 갑장을 목욕탕에서 만나 불알친구 되어 나눈 짧은 대화 끝에, 
늙은 몸에 때를 닦아도 나오는 핑계에 기대 있다가 허무를 느낀다. 
 
나이 어린 의사가 명령조로 타이르듯 하는 진료가 섭섭하다가도 
나이 90에는 구름과 친해지는 모양이다, 
죽음은 구름에 실릴 만큼 가볍다고 자위하기도 하고, 
오늘이 토요일인 줄 모르면 내일은 더욱 캄캄한 일요일임을 잊었어도 고맙게 여겨야지 
하루하루가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날품팔이 같은 오늘이지만 고맙다고 하더니, 
흐린 날에는 누군가 유쾌한 사람이 카톡으로 톡! 하고 건드려 주었으면 좋겠다며 
그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아무에게도 소식 없음에 
목욕탕 천정에서 톡! 떨어지는 물방울에 급속히 고독으로 빠져들다가 
종국에는 스스로 자신의 고독을 질병인가 범죄인가 진단하다가 혼동하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일이 일생의 업인 시인에게도 따르는 알바 시인 초설이나 
도예가 한갑수 같은 예술인들과 대화하는 걸 즐긴다, 
'그래 그때 갈게' 하기도 하고 내 방에서 갑수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일기 쓴다는 구실로 시를 쓴다.  
아내가 없으니 간섭이 없다 낙원이다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내가 姙婦였으면 낙태했을 거다’ 
낙원이 슬픈 낙원도 있다. 
 
취미로 먼 섬 자갈밭에서 침묵에 잠긴 돌을 깨워 배낭에 가둬 가져왔는데 
아파트 13층 베란다에 50년째 가둬두고 있으니 양심에 부친다. 
나는 화장하면 재가 되는데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돌에 원망 들을 일이 안타깝다가도 
카르페 디엠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 만난 사람이 고맙고 
오늘 살아 있는 것이 고맙고 오늘 자는 잠이 고맙고 시가 쏟아지는 것도 고맙다 카르페 디엠!.  
 
시가 풍작이다. 
바퀴벌레만큼이나 내가 나를 무관심하고 있을 때에도 
시는 나를 무관심하지 않았으니까,
 ‘콩은 찬물을 마시며 밤을 지새우며 나는 고독을 마시며 별을 보네’ 
어딘지 모르게 40년 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내음이 나서 
시인의 회귀 아니 회춘을 느끼게 한다, 
벤치에 걸터앉은 햇살을 만지는 작금의 시인의 일상에서 역설로 행복이 보인다. 
 
짧은 2월처럼 아흔의 청춘을 보내는 시인이, 
철원 오대미로 압력솥 버튼을 눌러 지은 밥을 씹듯이 
시도 씹어야 맛이 난다는 시인의 강조에 싱긋이 웃음이 나온다. 
 
남에 무덤 앞에 서 있으면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병 같기도 하고 
고독한 산 자 같게도 느껴지는 애매함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공평함에 큰소리도 쳐 보고 
무덤의 크기를 논리적 실제 평수로 측정하고는 
아무 대답도 없음에 그저 침묵할 뿐인데 
오래된 공동묘지 잊힌 묘의 사용료 미납에 대한 무연고 처리 공고, 
죽어서도 서러움에 왠지 민망함을 이기지 못해 
슬며시 일어서는 미안함 아니 각박한 세상의 당연한 이치를 시인은 아파한다. 
 
시집 '무연고'를 읽으면서
 '나도 아흔을 살아야지 아흔을 살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아흔을 살고 싶은 사람은 꼭 이 시집을 밥처럼 씹으며 읽어야 한다.
(2018/12 박산)

 

 

P.S: 12월 13일 (목) 5시-7시 광화문 교보문고 배움(02 397 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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